‘더 팬’, 오디션 프로그램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9.01.07
SBS ‘K팝스타’의 박성훈 PD가 연출하는 SBS의 팬덤 서바이벌 ‘더 팬’에는 심사위원이 없다. ‘K팝스타’에서 심사위원이었던 유희열과 보아, 그리고 작사가 김이나와 과거 제작자로 활동했던 이상민은 이 프로그램에서 투표권을 가진 300명의 팬 중 한 명일 뿐이다. ‘팬 마스터’로서 네 사람은 투표에 앞서 무대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만, 지속적으로 그 발언들이 자신들의 ‘팬심’과 개인적인 취향임을 강조한다.

Mnet ‘슈퍼스타 K’나 SBS ‘K팝스타’였다면 참가자의 가창력이나 실력을 전문적으로 분석했을 팬 마스터들은 무대 밖의 요소나 참가자에게 받은 인상을 투표 기준으로 삼는다. 유희열은 1라운드에서 JYP 연습생 황예지에게 “무대가 끝나고 환한 불빛 아래에서 이야기하니까 좋았다”며 그의 퍼포먼스가 아닌 매력에 한 표를 줬고, 보아 역시 박정현의 추천으로 첫 무대를 선보인 유라에게 “퍼포먼스를 보고는 매력을 못 느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호기심이 생겼다”며 그의 팬이 되겠다고 말했다. 작사가이자 A&R로 활동하는 김이나는 참가자들의 자작곡 가사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보여주지만, 노희준과 송민재의 무대를 “고기 맛을 본 아기 사자”에 비유하거나 서예지의 무대에 “움짤을 만들어 저장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평하며 그가 가진 안목을 팬의 시선으로서 활용한다. 이전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평가 대상이 아니었던 부분들이나 인상 비평처럼 여겨졌을 발언들이, ‘더 팬’에서는 오히려 참가자의 매력을 폭넓게 살펴보는 요소로서 프로그램의 특색이 된다.

참가자의 이미지나 캐릭터 같은 요소들이 본격적인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는 건 주로 아이돌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뤄지던 일이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김소혜는 가창력이나 춤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가 아니었지만 점차 성장하는 모습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면 ‘더 팬’에는 임지민이나 황예지처럼 아이돌 연습생도 있지만, 카더가든이나 오왠처럼 이미 일부 대중들에게 알려진 참가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1라운드에서 최다 득표자가 된 비비는 음악성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하이힐을 벗을 정도의 자유로운 태도에 대해 호평을 받았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화제가 되며 누적 동영상 조회수 100만을 기록한 트웰브는 2라운드 무대에서 심사위원들에게 1라운드에서의 당돌한 태도가 사라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팬심’을 목적으로 내세우는 ‘더 팬’에서는 아이돌이 아닌 참가자에게도 ‘공기 반 소리 반’ 같은 가창력에 대한 평가보다 캐릭터와 무대 매너, 혹은 매력에 대한 분석이 주를 차지한다. 이는 대중을 끌어당기는 스타성이나 캐릭터가 아이돌뿐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요소라는 음악 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 혹은 인기를 얻은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정작 시장에서 반응을 얻지 못하곤 했다. 아이돌 그룹을 주로 제작하는 SM 엔터테인먼트는 ‘K 팝스타’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했음에도 우승자를 한 번도 캐스팅하지 않고 하차하기도 했었다. 시즌 3의 버나드박이나 시즌 4의 케이티 김은 우승 이후 소속사를 택했지만 아직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 ‘K 팝스타’에서 가창력과 실력을 분석하던 보아와 유희열은 ‘더 팬’에서 스타의 매력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스타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프로그램 시작 이전의 선발 과정에 그치면서, 정작 프로그램 내부에서 팬심을 표현하는 '팬 마스터'들의 역할은 애매해진다. 1라운드에서 팬 마스터 전원의 지지를 받은 카더가든이 탈락 후보가 됐을 때, 심사위원들은 “도대체 왜?”라며 팬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나마 유희열은 “사람들이 어떤 스타에게 빠지는 건 실력이 아니라 매력인 것 같다”는 유의미한 평가를 내놓았지만, 2라운드에서 카더가든이 거둔 반전의 승리가 이 평가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2라운드에서 훨씬 개선된 무대를 보여줬던 콕배스 역시 팬 마스터가 아닌 추천인 거미의 개인적인 선의와 트레이닝을 통해 성장했다.

과거와 달리 팬 마스터들은 심사가 아니라 취향을 표방하며 자유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참가자들을 트레이닝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늘어난 자유와 줄어든 책임만큼 그들의 발언이 갖는 무게도 줄었다. 김이나는 데뷔 전부터 관객의 환호성을 끌어내는 임지민에 대해 “아이돌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탑재했다”며 사람을 집중시키는 외모에 대한 견해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관점은 이 프로그램에서 한 명의 팬의 의견에 그치고, 관중의 반응을 해설하는 데에 쓰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현업 혹은 전직 종사자로서 보여주는 안목에도 불구하고, ‘팬심’ 혹은 ‘취향’이라는 명목에 갇힌 팬 마스터들의 발언은 대중의 관점으로 무대를 평하는 이상화나 박세리의 발언과 동등하게 놓이며 차별성을 잃는다. 보아는 가요계에서 유일무이하다 해도 좋을 경력을 가진 아티스트이기에 유라의 2라운드 무대 퍼포먼스에 대해 "성의가 없어 보인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할 수 있었다. 이후 유라는 1:1 대결에서 보다 적극적인 무대매너를 보여주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김이나로부터 “도발성을 봤다”는 평을 받으며 이미지에 대한 조언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아나 김이나가 참가자에게 매력을 그 이상 구체적으로 제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참가자 역시 조언에 대한 적극성을 표현하는 것 외에 자신의 이미지를 발전시키기는 어렵다. 대중적인 매력이라는 것 자체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 팬마스터가 할 수 있는 명확한 역할도 없다. 팬마스터의 발언은 심사인 것도, 심사가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다. 일각에서 투표 이전 팬 마스터들의 평에 "팬들의 평가에 영향을 준다"는 문제 제기가 존재하는 건 그들의 발언이 차지하는 위치가 애매하다는 방증이다.

‘K팝스타’는 참가자들을 적극적으로 트레이닝하고, 우승자에게 3대 기획사 중 한 곳을 선택하는 특전을 줬다. ‘슈퍼스타 K’ 또한 상금과 데뷔를 약속했다. 반면 ‘더 팬’은 우승자에게 팬클럽 창립금 1억원과 안마의자를 제공한다. 스타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거의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자신의 스타성을 발굴하거나 유지하는 것은 오롯이 그와 그가 속한 소속사의 몫이라는 의미다. ‘프로듀스 101’처럼 방송사가 아예 팀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타를 탄생시키기보다 출연자의 얼굴을 알린 뒤 나머지는 소속사와 대중에게 그 몫을 넘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출연자들에게 실력보다 매력을 강조하고, 시청자 투표 결과를 통해 매력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매력이 무엇인지, 매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면,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은 과연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팬’이 아직은 아쉬워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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