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품격’으로 보는 김순옥 ‘막장드라마’의 법칙

2019.01.03
SBS ‘황후의 품격’은 2018년에도 ‘대한제국’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다. 황족이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악인들과 이를 탐하는 세력들이 뒤엉키고, 이들에게 상처 입은 주인공들은 감히 황실을 부숴버릴 각오로 맞선다. 그야말로 복수를 위해 꾸며진 판타지에 가까운 무대에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김순옥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황후의 품격’ 속 막장의 법칙을 모아봤다.

주인공은 보기 드문 순정파다

‘황후의 품격’의 주인공 오써니(장나라)는 황제 이혁(신성록)의 자칭 ‘덕후’다. 어린 시절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에 배우의 길을 선택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이혁의 사진을 정성스럽게 스크랩하고 황실 행사에서 그와 만나기 위해 수십 통의 편지를 써서 보낼 정도. 하지만 태후 강씨(신은경)의 계략에 의해 황후가 된 이후 오써니는 이혁과 그의 애인 민유라(이엘리야)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다. 천우빈(최진혁)의 도움으로 마침내 진실을 확인하지만, 그 직후에도 이혁에게 매달리며 “제가 뭘 봤든 뭘 들었든 지금 폐하가 아니라고 하면 그렇기 믿을게요”라고 말한다. 오써니는 결국 황실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남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천우빈은 오써니보다 더한 순정파다. 과거 그는 고아인 민유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모자라, 민유라가 낳은 아이 나동식(오한결)을 자신의 동생으로 거두기까지 한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야망으로 가득 찬 민유라의 배신과 어머니(황영희)의 죽음이다. 온 마음을 바쳐 사랑했던 만큼 복수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악인은 지독하지만 우스운 모습이다
황제 이혁은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수하 마필주(윤주만)를 시켜 공식 석상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던진 기자를 폭행하고, 주사로 몸에 칩을 삽입해 그를 감시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나왕식의 어머니를 차로 친 후 도로에 유기해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을 추격하는 나왕식을 죽이려고 한다. 이처럼 이혁은 철저한 악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향락을 즐기기 위해 자신의 방에 어울리지도 않는 중세시대 갑옷으로 은폐한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았으며, 눈에 띄게 화려한 옷차림에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허술한 가면을 쓰고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이혁은 민유라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태후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거나 민유라, 천우빈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왕은 역시 왕게임이지”라고 말하는 등 헛웃음 나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악녀로 묘사되는 민유라와 태후 역시 심심치 않게 허술하거나 우스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모습은 김순옥 작가의 다른 작품 MBC ‘내 딸, 금사월’에서 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던 강만후(손창민)을 떠올리게 한다. 악역이지만 보는 이에게 스트레스보다는 묘하게 웃음을 주는 캐릭터인 것이다.

깜짝 놀랄 메이크오버가 있다
‘황후의 품격’에서 나왕식은 놀랄 만한 메이크오버를 보여준다. 애인이었던 민유라에게 배신당하고 이혁에 의해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은 그는 황실 경호원이 되기 위해 140kg의 거구에서 근육질의 꽃미남, 천우빈으로 거듭난다. 그가 우연히 만난 생명의 은인이자, 운명적이게도 황실에 원한을 품고 있던 변선생(김명수)에게 무술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는 ‘eye of the tiger’가 bgm이(으로) 흐르고, 마침내 나왕식에서 천우빈으로 다시 태어난 그가 홀로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예 배우가 바뀌면서 외형적으로나마 아무도 나왕식을 못 알아보는 설정에 개연성이 생긴 것이다. 김순옥 작가의 과거 작품 SBS ‘아내의 유혹’에서는 구은재(장서희)가 점을 찍고 민소희로 변신했으며, ‘내 딸, 금사월’에서 신득예(전인화)는 가발과 안경만으로 남편 강만후를 속이기도 했다.

심의에 걸릴 만큼 자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황후의 품격’은 첫 회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될 만큼 문제가 될 만한 장면으로 가득했다. 나왕식의 애인인 민유라가 황제 이혁과 바람을 피우고, 나왕식의 어머니는 욕조 속에 알몸으로 들어가 있는 두 사람을 목격한다. 황제의 두 얼굴을 알리겠다는 나왕식의 어머니를 저지하기 위해 민유라는 돌로 그를 내려치고, 비틀거리며 도로로 도망친 나왕식의 어머니를 차로 친 이혁은 그를 싣고 줄행랑을 친다. 이 모든 일들이 한 회만에 벌어졌다. 이후에도 ‘황후의 품격’은 자극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특히 태후와 민유라가 이혁을 두고 벌이는 전쟁은 무척이나 극단적인데, 이혁과 민유라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태후가 귤을 까먹으면서 훔쳐보고 이를 눈치챈 민유라가 모든 카메라를 부수며 마지막으로 그와 눈을 마주치는 식이다. 심지어 태후는 민유라를 잡아와 그 위에 시멘트를 부었지만, 태왕태후(박원숙)에게 종아리를 맞는 정도로 일단락됐다. 그 외에도 오써니와 이혁이 병풍을 사이에 두고 마사지를 받을 때 민유라가 몰래 이혁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 등은 ‘공중파 드라마 심의기준’을 확인하고 싶게끔 만든다.

주인공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황후의 품격’에서 오써니는 황후가 되어 황실에 입성한 첫날부터 죽을 고비를 넘긴다. 왜 신부가 그렇게 등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를 태운 화려한 꽃가마가 하늘 높이 올라간 후 누군가의 수작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울며 불며 겨우 꽃가마에 매달려 있던 오써니는 천우빈에 의해 목숨은 건지지만, 기절한 채로 에어백에 떨어지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깨어난 오써니는 죽을 뻔했다는 위기의식보다는 ‘결혼식 사진이 죄다 굴욕사진’, ‘폐하가 보면 안 되는데’라며 눈물짓는다. 그 후에도 오써니는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맞이한다. 이혁과 민유라와의 관계를 밝히려다가 절벽에서 밀려 떨어지기도 하고, 겨우 살아나 궁으로 다시 들어간 후에도 경호대장에게 쫓기지만 천우빈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온다. 이는 또 다른 주인공인 나왕식도 마찬가지다. 이혁에 의해 머리에 총을 맞고 바다에 빠지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채로 변대장에게 발견됐다. 천우빈이 된 후에도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마필주, 경호대장 등 악인들에게 시달리지만 언제나 살아남아 궁으로 돌아온다. 김순옥 작가는 주인공을 자주 죽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지만, 결코 죽이지는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주인공이 흑화한다
오써니는 이혁과 민유라가 크루즈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후 조금씩 달라진다. 물론 이혁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고 결심했지만, 민유라까지 용서할 수는 없었던 그는 셋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말로써 민유라를 응징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저 자신을 반성했을 같아요”라는 말에는 “도둑들은 늘 자신의 도덕성이 바닥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문단속을 하지 않은 주인을 탓하죠”라고 받아치고, 자신의 국을 이혁에게 건네주려는 민유라를 막아서며 “아무리 가까이서 모셔도 니 거 내 거는 가려먹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자신의 등 너머로 이혁과 민유라가 손을 마주잡는 것을 알면서도 남몰래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다. 오써니의 진정한 반격이 시작되는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던 태왕태후가 사망하고 그를 죽였다는 누명을 간신히 벗으면서부터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혁과 이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이를 악물고 “장난해? 약속이 틀리잖아”라고 속삭이는 이혁을 가볍게 무시하며 “사랑해요. 폐하”라고 미소 짓는 오써니의 복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비로소’ 본론에 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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