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의 선택

2019.01.02
한 영화계 관계자가 배우 도경수에 대해 말했다. “을과 을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젊은 남자 배우다.” 그는 지금 영화계에서 “아주 흥미롭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가 실제로 어떤 성격을 지닌 사람이든 간에, 지금 영화와 드라마 관계자들이 그를 유달리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눈빛에 슬픔이 있고, 무게감이 있는 젊은 남성 배우.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장점들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 영화계에 반하는 이질적인 요소다.

그동안 도경수는 ‘카트’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아들로, ‘7호실’에서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푼돈을 벌며 살아가는 청년으로 출연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전문 배우’라는 농담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이제 그는 ‘스윙키즈’에 이르러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를 추는 북한군 병사가 되어 머리를 짧게 깎고 매사에 불퉁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소년을 연기한다.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 중 한 팀인 EXO의 멤버이면서 군인 연기를 하기 위해 짧은 머리를 겁내지 않고, 월드 투어를 돌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이면서 제대로 월급조차 받지 못하는 파트타이머 역할을 맡는다. tvN ‘백일의 낭군님’에서도 그가 맡은 율/원득은 기존의 남자 배우들이 맡은 역할과도 다소 차이가 있다. 도경수는 이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홍심(남지현)에게 생활력이 없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고, 연신 그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도경수가 선택한 역할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트’의 캐스팅에 관여한 영화계 관계자 A씨는 “영화 자체가 저예산이라서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 배우가 맡기를 원했다. 당연히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영화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배우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백일의 낭군님’을 제작한 스튜디오 드래곤의 소재현 기획PD는 “처음에는 캐스팅을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스윙키즈’를 찍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도경수가 단지 아이돌 출신이기에 겪는 일만은 아니다. 많은 20대, 30대 남성 배우들이 겪는 상황이다. 중년 남성 배우들의 티켓 파워를 신뢰하는 영화계의 경우 젊은 배우가 탭댄스를 추거나 첫사랑과 결국 헤어지는 잔잔한 멜로 드라마에 쉽게 투자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40대 이상의 중년 배우들이 위주가 된 시나리오는 대부분 흥행이 보장되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선뜻 나서는 편이다. 그 안에서 20대, 30대 청년 배우들은 그들의 후배나 부하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 보니 ‘충무로’로 대변되는 영화판에서 대부분의 젊은 남성 배우들은 소위 남성미를 강조하는 선배들의 뒤를 따라가기 바쁘다. 이에 대해 A씨는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영화계의 매너리즘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투자자들도 안정적인 곳을 찾고, 남성 배우를 캐스팅할 때 젊은 남성 배우들이 선배 남성 배우들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하는 의지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이 주연이 되는 작품들조차도 선배 남성 배우들이 만들어온 영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더불어 젊은 배우가 단독으로 극을 이끌어 가게 되면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안정적인 방향을 찾는 경우도 있다.

캐스팅 관계자 B씨는 도경수에 대해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지만 본인이 무게감 있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좋아했고, 그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그가 선택한 작품들이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장점은 지금 한국의 20대, 30대 남자 배우들이 출연하는 대부분의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 A씨가 도경수의 사례를 ‘도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A씨는 “실질적으로 ‘스윙키즈’ 정도의 예산을 감당할 만큼 도경수가 송강호, 하정우라는 배우에 비해 벅찬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갖고 있는 경력과 나이, 영화계에서의 인지도에 비하면 아직 단독 주연을 맡기에는 다소 벅차다는 뜻이다. 하지만 B씨는 “다른 남성 배우들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역할을 주로 맡으려고 하는데,사실 도경수는 신체적 장점보다 진중한 분위기가 장점인 배우이고 자신도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스윙키즈’의 경우에도 “춤도 춰야 하고 혼자 극을 이끌어간다는 무게감 때문에 다른 남성 배우들은 쉽게 선택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도경수의 선택이 한국 영화 산업에서 눈에 띄는 이유다.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모험적인 작품에서상업성은 물론 작품에 어울리는 이미지와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젊은 남자 배우가 많지 않다.

소재현 PD는 “남성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취향이 보다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서준처럼 남성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역할도 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도경수가 가진 연약해보이면서도 강단 있는 청년 이미지도 큰 호응을 얻는다.”고 말한다. B씨는 “‘스윙키즈’를 보면 도경수가 꼭 남성적인 이미지를 대변하지 않더라도, 20대 청년의 고뇌를 연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가 됐다는 게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더 다양한 남성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B씨는 “모든 배우들에게는 각자의 개성이 있고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스윙키즈’의 도경수나 ‘아이 캔 스피크’의 이제훈, ‘너의 결혼식’의 김영광, ‘남자친구’의 박보검이 보여준 선택은 젊은 남성 배우들에게 도전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제 관객들은 색다르고 신선한 작품과 캐릭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조금씩 바뀐 tvN ‘남자친구’, 여성이 원톱 주연인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미쓰백’, 여러 명의 커플이 나와서 성별에 관계없이 배우들의 조화를 보여준 ‘완벽한 타인’ 등 올해 대중은 과거와는 또다른 신선한 작품들에 관심을 가졌다. 올해 작품은 아니지만 남성 투톱의 작품일지라도, 우정만을 강조하거나 공조수사의 차원에서 벗어난 ‘불한당’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들은 남성 배우들이 무조건 멋있고, 여성을 구해주는 정의로운 역할로 나오는 작품들이 아니다. 지금, 한국 남성 배우들에게는 이제훈, 도경수, 박보검, 임시완처럼 선택할 기회가 있다. “젊은 남성 배우들은 젊은 여성 배우들에 비해 분명히 기회가 많다. 그런데 여전히 대부분이 ‘그들(선배 남성 배우들)만의 리그’에 편입되고 싶어 한다.” B씨의 말에 따르면 기회를 어떻게 쓸 것인지는 배우 개인의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당연히 자신의 신체적 장점과 멋진 모습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택할 수도 있고,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여기에 부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 택하는 일이 남은 것은 확실하다. 도경수의 선택이 갖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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