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먹방

2018.12.28
이영자는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예능인 중 한사람이었다. 지난 8년여 동안 진행한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통해 지난 22일 KBS ‘연예대상’의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오게 만든 프로그램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었다. 

이영자가 전국 휴게소들을 다니며 이른바 ‘먹방’을 하고, 맛있는 휴게소 음식을 소개하자 휴게소 매출이 대폭 오를 정도였다. 이영자의 ‘먹방’은 그를 비롯한 여성 예능인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 Olive ‘밥블레스유’로 이어졌고, 역시 방송에 나온 음식은 인기를 모았다. ‘먹방’이 한 예능인의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줬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걸그룹 마마의 화사가 지난 6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 곱창 ‘먹방’을 선보이자 곱창이 동이 났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포방터 시장’편에 등장한 돈가스 가게는 이런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백종원이 “우리나라 돈가스 끝판왕”이라고 평하며 치즈카츠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방송된 이후, 이 곳의 돈가스는 그 전 날 밤 가게 앞에 텐트를 치고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것이 됐다. 이제 ‘먹방’은 한 때의 방송 아이템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요소 중 하나가 됐고, 그 영향력은 방송을 넘어 요식업까지 흔들고 있다.

‘먹방’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음식이 폭발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흔했다. 다만 지금의 ‘먹방’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처음 인터넷 방송에서 ‘먹방’이 주목받기 시작할 때 ‘소통’은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키워드였다. 대부분의 ‘먹방’ BJ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구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기도 한다. 이 ‘먹방’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한 섭식행위로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이나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정서적 관계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TV는 ‘먹방’의 이런 특징을 보다 세련된 형식과 설득력있는 화자를 통해 전파한다. 그냥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영자가 스케줄을 소화하다 휴게소에서, 화사가 쉬는 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백종원이 식당을 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는다.

이 과정에서 TV의 ‘먹방’은 인터넷의 ‘먹방’과는 다른, 소위 ‘인싸템’을 만드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먹방’의 대상은 휴게소 음식처럼 대부분 시청자들이 접근하기 쉽다. 유명인의 추천은 음식 맛 이전에 한 번 쯤 그 음식을 먹어볼만한 계기가 된다. 여기에 SNS 문화는 인기 음식을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 수 있는 계기로도 만든다. 곱창이 한창 인기일 때는 SNS에 곱창 사진과 함께 ‘#곱창’, ‘#화사가_먹은_곱창집’같은 해시태그를 달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 될 수 있었다. 포방터 시장의 돈가스 집에 많은 유튜버들이 찾아와서 가게 주인이 실내 촬영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TV에 나온 음식점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유튜버들의 조회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된다. ‘먹방’이 인터넷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 문화가 TV를 통해 더욱 퍼지고, 그것이 다시 지금의 인터넷 문화에 영향을 준다. 지금 ‘먹방’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지극히 본능적인 열망인 동시에,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동시에 타인이 관심있어하는 것들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지금의 ‘먹방’은 단순히 누군가가 먹는 것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한국인이 타인과 상호반응하기 가장 쉬운 방송 형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9개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2018∼2022)’을 확정했다. 이 문서에서 ‘건강한 식품선택 환경 조성’을 위해 ‘폭식조장 미디어(TV, 인터넷방송 등)·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 한다는 내용이 논란이 됐다. 관계자가 ‘‘먹방’ 규제는 사실이 아니며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히며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반발했다. ‘먹방’이 단지 많이 먹는다는 것 이상의 다양한 맥락을 가진 시대에, ‘먹방’을 ‘폭식조장’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선이다. 화사가 혼자 간장게장과 김부각을 먹으며 휴일을 만끽하는 모습이 주는 정서적 포만감을 ‘폭식조장’이라 할 수는 없다. 일부 인터넷 방송이나 TV에서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거나, 혐오감을 조장하는 섭식행위를 하는 것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먹방’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유명한 ‘먹방’ BJ의 채널에서조차 지나친 폭식이나 가학적인 섭식행위를 경계하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먹방’은 비만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이 음식을 소비하는 어떤 태도에 가깝다. 2018년 TV 속의 ‘먹방’이 많고도 다양했던 이유다.

‘먹방’이 늘어나면서 등장한 여러 변화들은 음식과 사회에 대한 관점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12월 초부터 정규방송을 시작한 MBC ‘공복자들’은 ‘먹방’ 이전에 24시간 공복을 함으로써 오는 섭식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배고픔을 참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려는 시도가 조금은 불편하고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먹방’에서 비롯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먹방’으로 2018년의 누구보다 큰 영광을 누렸던 이영자는 얼마 전 JTBC ‘랜선라이프-크리에이터가 사는 법’에서 유투버 소프와 함께 ‘쿡방’과 ‘먹방’을 선보였다. 이처럼 지금의 ‘먹방’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식문화의 일부가 된 ‘먹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지금 방송과 한국인의 식문화 양쪽에서 중요하며, 주목해야할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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