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유재석의 자리는 어디인가

2018.12.26
유재석은 올해 지난 10여년 사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 KBS ‘해피투게더 4’, 시즌 2를 마친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등 기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이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JTBC ‘요즘 애들’에도 나섰다. 파일럿 프로그램 SBS ‘미추리 8-1000’도 있었다. 그러나 상업적인 결과는 좋지 않았다. MBC ‘나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tvN ‘알쓸신잡’과 ‘신서유기’. 또는 송은이가 유튜브와 방송사를 오가며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들. 올해 화제를 모은 이 프로그램들 사이에 유재석의 이름은 없다.

유재석을 ‘유느님’으로 불리게 만든 MBC ‘무한도전’의 종영은 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무한도전’을 끝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전성시대는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은 관찰 예능이고,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요식업 프렌차이즈 경영자인 백종원이 자신이 하는 식당 컨설팅을 TV로 옮겨왔다. ‘알쓸신잡’, 또는 아이유부터 이국종 교수까지 초대하는 KBS ‘대화의 희열’은 예능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의 어느 사이쯤 있다. 반면 유재석은 여전히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중심을 두고 있다. ‘런닝맨’, ‘범인은 바로 너!’, ‘미추리 8-1000’의 내용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결국 유재석의 주도 하에 연예인이 주어진 문제를 풀거나 경쟁하는 것은 같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그는 가운데에 서서 출연자들의 발언들을 정리하는 메인 MC 역할을 한다.

‘신서유기’에서 강호동은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처럼 여행하고, 먹고, 웃긴다. 다만 그는 더 이상 ‘1박 2일’시절처럼 가운데 서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 ‘신서유기’는 누구도 멘트를 정리하지 않은 채 각자 즉흥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제작진은 이런 광경들을 그대로 찍은 뒤 입맛에 맞게 편집한다. 그만큼 과거보다 정제되지 않고, 더 빠르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나온다. ‘신서유기’가 10-20대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리얼버라이어티 쇼의 형식을 유튜브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강호동은 ‘신서유기’를 거쳐 같은 제작진과 tvN ‘강식당’에서 쉼 없이 식당 일을 하다 지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의 가운데에 서서 분위기를 주도할 때는 보여주지 못한 순간이었다. 그는 결국 리얼리티 쇼의 시대에 적응했다.

유재석이 강호동과 같은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MC로서 출연자들을 조율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이 능력으로 같은 그림을 그리는데 머물러 있다. 유재석은 올해 내내 ‘런닝맨’에서 이광수를 놀리고 괴롭히는 역할을 했다. ‘미추리 8-1000’에서는 손담비를 집중적으로 놀렸다. MC로서 진행 권한을 가진 그가 다른 출연자의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쉽게 웃음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무한도전’에서도 박명수나 정준하에게 하던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미 종영했다. ‘대한민국 평균이하’로 불리던 시절 자신보다 나이 많은 출연자를 놀리던 유재석과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된 지금 10여살 차이나는 출연자를 놀릴 때의 분위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미추리 8-1000’에서 그는 다른 출연자들처럼 미션을 풀지 않는다. 미션을 제시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MC역할에 집중한다. 누구나 그가 최고의 MC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상황을 장악하고 여러 출연자들을 놀릴수록, 그는 점점 쇼의 플레이어들과 분리된 채 상황을 정리하는 감독이 된다.

전현무는 지난 21일 MBC ‘나혼자 산다’에서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패러디하며 화제가 됐다. 그의 퍼포먼스를 편집한 동영상은 네이버 TV 캐스트에서 하루만에 5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는 ‘나혼자 산다’의 스튜디오 촬영분에서 사실상 MC 역할을 하며 멘트를 정리한다. 하지만 ‘나혼자 산다’를 통해 종종 일상을 공개하고, 다른 출연자들과 몇 년 동안 만들어낸 서사를 통해 분장과 패러디를 활용한 코미디를 보여줄 수도 있다. ‘나혼자 산다’는 MC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전현무가 출연자들의 모임인 무지개클럽 회장의 자격으로 진행을 이끈다. 올해는 회장직을 두고 투표를 벌이며 출연자마다 다른 방식의 진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나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박나래는 올해 MBC ‘방송 연예 대상’의 유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출연자들이 모여 있을 때 전현무와 함께 진행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언행으로 웃음을 일으키는 역할도 동시에 한다. 화사, 정려원 등 ‘나혼자 산다’의 게스트를 만나면서 고정 출연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운데 서서 멘트를 주도하는 중년 남자 MC대신 상황에 따라 다양한 롤플레이어를 자처하는 여자 예능인이 주목 받았다. ‘무한도전’ 종영 이후의 세계다.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이영자가 출연 중인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의 출연자들은 스튜디오 녹화시 동그란 탁자에 둘러 앉아 각자의 멘트를 쏟아낸다. 이영자의 또다른 화제작 Olive ‘밥 블레스 유’는 다섯 명의 출연자가 음식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웃기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누군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대신, 이야기의 맥락이 쌓여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무한 뉴스’ 같은 코너를 통해 다른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거론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냈다. 서로 친한 출연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카메라 바깥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은 당시에는 신선해 보였다.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는 ‘밥 블레스 유’는 출연자의 사생활을 자신이 어느 정도 원하는 선만 보여줄 수 있다. 이영자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매니저와 함께 스케줄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예인 활동 이외의 사생활은 공개하지 않는다. 요즘 예능인에게 요구되는 기술과 역할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와 그만큼 달라졌다.

유재석은 ‘요즘애들’에서 요즘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MC로서 멘트를 주도한다. 슬기, 한현민, 김하온 등 젊은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역시 중년 남자인 안정환을 옆에 두고 서로 젊은 세대에 대해 모르는 것을 놀릴수록, 정작 젊은 출연자들의 멘트는 줄어든다. 물론 그는 늘 그렇듯 다른 출연자들이 멘트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다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MC의 개념과 역할 자체가 바뀌고 있다. 유재석은 넷플릭스를 통해 새로운 플랫폼에 진출했고, 처음으로 tvN에 출연했다. 그의 경력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요구되는 시대의 변화는 플랫폼이나 프로그램의 포맷이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의 변화다. 비슷한 나이대의 놀리기 좋은 중년 남자와 10년 이상 경력차이 나는 다수의 출연자들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며 ‘배려’할 것인가. 아니면 각자 할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경력의 출연자들 중 한 명으로서 함께 대화할 것인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올해 유재석의 신작 중 유일하게 그의 다른 모습을 끌어냈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연예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만난다. MC로서 그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는 구성이지만,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일반인의 언행은 어떤 상황이든 웃음을 끌어내는 유재석의 진행 능력을 새삼 돋보이게 만든다. 유재석이 함께 출연하는 조세호에게 직장 상사처럼 권위적으로 굴고, 조세호는 그것을 눈치껏 받아치며 놀리는 구도 역시 새로웠다. 유재석이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보여준 감각을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무한도전’은 종영했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예능 프로그램의 풍경도 조금씩은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시대에 최고였던 사람은 새로운 업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더 이상 가운데에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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