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여자들의 인피니티 워

2018.12.24
JTBC ‘SKY 캐슬’에서 대한민국 상위 0.1%의 소수 엘리트들만이 모여 사는 주택 SKY 캐슬의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건 다섯 명의 여성들이다. 명문대를 꿈꾸는 아이들의 치열한 입시 경쟁이나 주남대학교 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남성들의 서열다툼 뒤에는 최고의 가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처럼 치열하다. ‘SKY 캐슬’을 이끄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싸우는 법을 살펴봤다.

한서진, “이 구역의 아가X 파이터는 나야”

공격력: ★★★★★
수비력: ★★★★☆
필살기: 상황맞춤형 연기

오드리 햅번을 연상시키는 쇼트컷과 고급스러운 복장, 나긋나긋한 말투.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 와이프고, 전교 1등짜리 딸을 둔 엄마”로서 “세상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 할” 여자. 하지만 한서진(염정아)은 그런 모습과는 달리 “아갈XX를 확 찢어버릴라!”라는 거친 욕설을 입에 올리는 습관을 가졌다. 알코올 중독자인 도축업자 딸로 살던 과거의 본명 ‘곽미향’을 숨기고, 딸들에게 그 수치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한서진에게는 당당함 뒤에 감춰진 절박함이 있다. 평소의 한서진은 자신의 교육 방식에 대해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는 이수임(이태란)에게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맞받아치고, “라인에 한번 들어가는 건 태산같은 시간이 걸리지만 미끄러지는 건 찰나”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던 진진희(오나라)를 굴복시킬 만큼 말솜씨를 자랑한다. 반면 불리한 상황에서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을 정도로 태세 전환이 빠르다. 자신이 해고했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시어머니 윤 여사(정애리)의 독설 앞에서 입을 다무는 그의 모습은 그 당당하던 한서진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원하는 바를 이룬 후 뒤돌자마자 눈물을 닦아내거나, 미소를 짓다가도 몇 초 사이에 표정이 바뀌는 한서진은 왠지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이길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김주영, SKY캐슬의 저승사자

공격력: ★★★★★
수비력: ★★★★★
필살기: 밀당(과 잘생김)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차가운 눈빛과 감정없는 말투, 흐트러짐 없는 쪽머리와 검은 정장. 'SKY 캐슬'에서 김주영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입시 컨설팅을 맡았던 영재 가족의 비극을 듣고 “넌 선생이 아니라 살인교사범”이라 말하는 한서진의 모욕에도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하고, 복수심을 품은 영재 부자가 칼이나 총을 들고 찾아와도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다 쪽머리를 풀어내리고 생각에 잠긴 장면에서는 ‘잘생김’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합격 100%를 이뤄낸 입시 코디네이터답게, 김주영은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뜻대로 이끄는 '밀당(밀고 당기기)'에 뛰어나다. 한서진이 다시 찾아와 딸을 맡아 줄 것을 부탁하자, “만에 하나 (영재 가족처럼) 그런 일이 생겨도 다 감수하시겠다는 뜻입니까?”라고 몰아붙인 후 씩 웃는 김주영의 모습은 저승사자 같은 섬뜩한 아우라를 보여줬다. 반면 자신을 지키려다 박영재의 칼에 대신 찔린 한서진에게 겉옷을 벗어 덮어주는 다정함은 로맨스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한서진을 두고 “내 말을 안 들어?”라며 파르르 떨던 김주영은 결국 한서진의 딸 강예서(김혜윤)가 싫어하는 친구이며, 한서진의 남편 강준상(정준호)의 숨겨진 딸이기도 한 김혜나(김보라)를 한서진의 집으로 들이도록 유도했다. 전교 1등을 줄곧 차지하는 강예서의 열등감을 끊임없이 자극하거나, 한서진의 과거를 듣고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는 김주영의 모습은 그가 입시 성공의 유혹과 집안의 파멸을 동시에 품은 '입시계의 사이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한서진도 만만찮은 상대이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뜻대로 그를 움직이는 김주영이 한 걸음 더 앞서나가는 듯하다.

이수임, 참을 수 없는 오지랖

공격력: ★★★★☆
수비력: ★★★☆☆
필살기: “곽미향.”

와인 파티를 즐기던 SKY 캐슬의 엄마들에게 선지국을 대접하고, 이사떡은 비닐에 싼 상태로 내밀며, 우수한 성적을 가진 아들 황우주(찬희)에 대해 “수학과외 하나 빼고는 안 시켜봤다”고 말하는 악의 없는 캐릭터. 소탈하고 예의바른 동화작가 이수임은 허영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SKY 캐슬과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수임은 SKY캐슬의 독서 스터디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며 “이거 완전 코미디네”라 말하며 스터디가 해체되는 계기를 제공하고, 한서진이나 진진희의 으름장에도 SKY캐슬의 아이들을 만나며 관계를 형성한다. 정의 실현을 넘어 오지랖으로 보일 정도로 적극적인 이수임의 행동은 한서진으로부터 "댁의 아들이나 신경쓰세요. 제발 오지랖 떨지 말고”라는 면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만, 그에게는 과거 입시 경쟁 속에서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목숨을 끊은 제자 연두를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이제 그는 작가로서 영재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 위해 김주영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고, 한서진에게 “너. 코디받던 거 왜 관뒀었니? 너도 태블릿 PC 내용 읽고 겁났지?”라며 그의 치부를 찌르는 등 만만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수임은 천하무적으로 보이는 한서진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필살기를 가졌다. “곽미향”. 그리고 한서진에게 “나 건들지 마. 너, 나 못이겨”라고 선언한 이수임은 결국 SKY 캐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서진의 과거를 폭로하는 한 방을 보여줬다. 연두의 과외 선생님으로 가장한 김주영의 계락에 넘어갈 정도의 순수함이 이수임의 약점이지만, 아직까지는 그가 가진 오지랖과 행동력을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노승혜, 우아한 팩트폭격기

공격력: ★★★☆☆
수비력: ★★★★☆
필살기: 매운맛 컵라면

항상 단정한 블라우스와 롱스커트를 입고, 조곤조곤하게 말하며 미소를 띄는 노승혜(윤세아)는 눈 속에서 아이들과 천진하게 뛰어놀아도 괴리감이 없을 만큼 순수하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은근히 말에 뼈를 품는다. 이사 떡을 내미는 이수임의 까만 손톱을 진진희가 흉보자 “화초 만지는 사람한테 흔하게 생기는 흙때예요. 사람 성의를…… 이건 아니지 싶네요.”라고 말해 그를 무안하게 하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이수임의 발언에 화가 난 한서진과 진진희에게 “그래도 할 말 없죠. 그렇게 안 시켰는데도 수석했으니까.”라며 ‘팩트 폭행’을 시전한다. 노승혜는 한서진이나 진진희처럼 노골적으로 욕망을 보여주지도, 이수임처럼 SKY 캐슬의 문화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지도 않지만 자신의 몫을 조용히 찾는다. 한서진이 주최한 영재의 서울대 의대 합격 축하 파티에서 VIP석에 천연덕스럽게 앉고, 김주영의 해고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그는 SKY 캐슬에서 유일하게 이수임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서진의 과거를 듣고도 유일하게 그에게 동정을 표할 만큼 나름의 도덕적 기준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교육 앞에서 절박해지는 노승혜의 모습에는 남편 차민혁(김병철)의 교육 방식에 대한 고민이 숨겨져 있다. 노승혜는 아이들에게 공포를 주는 차민혁의 독서실 구조를 몰래 바꾸고, 그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저녁 식사로 내놓으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신용카드를 잘리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자 그는 컵라면을 내놓으며 말한다. “도무지 주부를 존중할 줄 모르니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정성껏 차린 저녁을 먹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것부터 깨닫게 해주려고요.” 항상 품위를 지키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서재로 컵라면을 가져다주겠다며 “오늘은 매운맛이에요”라는 명언을 남긴 그 역시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진진희, 껌 좀 씹어봤지만 허술한 언니

공격력: ★★★☆☆
수비력: ★★★☆☆
필살기: 눈치게임

‘청담동 핫팬츠 성깔’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여자.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적나라한 표정과 털털한 말투를 가진 그는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강남일대 주름잡던 일진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이수임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머리 박치기까지 시전하다 공사소리에 놀라버릴 만큼 허술하기도 하다. 그런 그의 허술함을 보완하는 건 남다르게 빠른 눈치다. 전교 1등 딸을 둔 한서진을 롤모델로 삼아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그는 매번 SKY 캐슬의 다른 엄마들 앞에서 한서진을 추켜올리며 비위를 맞추고, 김주영에게 입시 컨설팅을 받기로 한 한서진에게 “예서 대학 보내고 나면 그 코디 나한테 토스해주는 거다?”라며 자신의 몫을 챙길 줄도 안다. 한서진의 말에 따라 노승혜에게 '이수임이 독서 스터디에 들어오면 다 그만둘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다가도, “물론 제 생각은 조금 다르다”며 여지를 남겨두는 그의 모습은 남다른 눈치와 줄타기를 보여준다. 평소 한서진과 손발이 척척맞지만, 완전히 한서진의 편만도 아니다. 남편 우양우(조재윤)가 한서진의 남편 강준상 대신 이수임의 남편 황치영(최원영)에게 디스크 수술을 받기로 하며 한서진과 불편한 상황에 놓이자, 진진희는 “요즘은 환자들도 의료쇼핑하는 세상이야,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라인에서 미끄러지는 건 찰나’라는 한서진의 경고를 듣자마자 바로 “언니 안녕히 주무십시오! 푹 주무십시오 언니!”라며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한서진의 과거가 드러나자마자 바로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한서진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이유다. 거칠지만 치밀하지 못한 진진희는 다섯 명의 여성들 중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욕망과 도덕적 가치가 충돌하는 SKY 캐슬에서 혼란을 느끼는 스스로에 대해 “엄마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라며 아들 우수한(이유진)에게 미안해하는 그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이직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