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2018, 노랫말로 본 여성 뮤지션

2018.12.24

오마이걸 ‘비밀정원’
‘이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 아직은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 나의 비밀정원’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나쯤 품고 있는 ‘비밀정원’이 있다. 품은 사람의 마음마다 각양각색의 모양일 것이 분명한 그 정원은 그것이 ‘소녀’의 것이 되는 순간 늘 ‘줄 듯 말 듯’한 모습만 띄었다. ‘비밀정원’은 내내 밖에만 손잡이가 달린 것처럼 굴던 그 비밀 공간의 안쪽에서 벌컥 열린 문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나조차도 아직 알 수 없지만 몰래 소중한 이를 초대하는 작고 귀한 마음. 역시나 알 수는 없지만 그 정원은 분명 멋지고 놀랍게 성장할 것이다.

(여자)아이들 ‘LATATA’
‘어둠 속 Red light 시선은 Left right / 불 위를 걷나 / 시작의 점화 가까이 온다 / 누가 뭐 겁나’

올해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주목 받은 신인은 다름 아닌 (여자)아이들이었다. 한국, 태국, 대만, 중국 등 다국적으로 구성된 여섯 멤버들은 이 곡이 데뷔곡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그 가운데 작사/작곡은 물론 빈틈없는 보컬 어레인징까지 멋지게 해 낸 리더 전소연이 있다. 두려움 없이 카메라를 노려보며 서늘하게 읊조리는 ‘누가 뭐 겁나?’는 세상에 처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이 앙팡 테리블의 묵직한 출사표에 다름없다.

슬릭 ‘36.7’
‘어떤 수식어 따위도 붙이지 않은 그대로의 날 봐 / 그대로 나 그 누구의 딸 / 그 누구의 반 어 누구의 누구도 아닌 / 그저 하나의 나’

표현과 형식의 틀이 넓어 자유롭게 자신을 이야기하기 더없이 좋은 장르인 힙합이 유독 여성에게 높은 장벽을 가지고 있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슬릭의 ‘36.7’엔 ‘낭떠러지 앞까지 다다른 기분’에 ‘몇 분에 한 번씩 겁을 집어 삼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딸’ 또는 ‘그 누구의 반’이 아닌 ‘그저 하나의 나’이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말을 옮기는 한 래퍼의 다짐이 가득하다. 그리고 수백 번을 곱씹다 뱉었을 그 다짐들은 같은 하늘 아래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 속에 반복 중인 바로 그것이다.

선미 ‘Black Pearl’
‘그저 예뻐라 예뻐라 / 그저 곱구나 곱구나 / 그저 빛이나 빛이나 / 이리 얼룩져버린 게’

여성으로 26년 그리고 아이돌로 11년. 선미가 걸어온 길은 그대로 한국에서 젊은 여성이 걷게 되는 축복이자 고통의 총체다. 크고 작은 부침 아래 순탄하기만 할 리 없는 그 여정의 도중 그가 여전히 빛나는 모습으로 부르는 ‘Black Pearl’은 우리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무척 특별한 감상을 전한다. 예쁘다, 곱다, 빛난다는 닳고 닳은 찬사 속에서 평생 까만 빛만을 모아온 누군가의 심연. 그룹 멤버에서 솔로로, 아이돌에서 싱어송라이터로의 변신을 꾀하는 선미의 지금에 가장 유효한(어울리는) BGM이다.

핫펠트(예은) ‘위로가 돼요(Pluhmm)’
‘혹시 말랑자두 좋아해요?’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 여성의 성적 욕망은 대개 타의에 의해 재단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조신’하고 나에게만은 ‘개방’적인 여성을 원한다는 이들이 나누는 가벼운 대화 속 여성의 몸과 욕망은 늘 꽃이 되었고 복숭아가 되었다. 노래 ‘위로가 돼요’에서 핫펠트는 마음에 둔 상대에게 ‘혹시 말랑자두 좋아해요?’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여성의 욕망을 선명히 드러낸 노래가 부쩍 많아진 올 한해, 가장 명확하고 세련된 동시에 사랑스러운 곡이었음에 틀림없다.

김사월 ‘엉엉’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나와 함께 있어줄 순 없어 /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밖은 너무 추워 나는 엉엉엉 울어’

당장 손이 곱을 것처럼 추운 겨울 날,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길바닥에서 울어 버린 경험, 의외로 흔하다. 그때마다 돌아왔던 건 ‘여자는 알 수 없는 생물이다’ 혹은 ‘금성에서 왔다’는 그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변명들이었다. ‘엉엉’은 그렇게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눈물 방울처럼 엉엉 쏟아 붓는 곡이다. 나는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는데. ‘김사월’이기에 가능한 구질구질한 사랑의 현장 스케치다.

소녀시대-OH!GG ‘쉼표
‘내 맘 속의 첫 쉼표 / 완벽한 세상 비록 아닐지라도 / 여유 속에 삶은 달라져 첫 시도’

이 노래는 얼핏 평범한 힐링송으로 들릴 수 있지만, 소녀시대가 불렀기에 특별해진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문직으로 일하며 내놓는 결과물마다 대중의 엄중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이들이 처음으로 ‘또 다른 나의 챕터’를 꿈꾸며 ‘천천히 느리게 가겠다’고 하모니를 맞춘다. 잠깐의 휴식과 인생 2막을 꿈꾸는 동시대인으로서 알 수 없는 동지의식이 샘솟는다. 멤버 모두가 소녀시대라는 간판이 아닌 스스로의 이름으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고 있는 지금이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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