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① 2018년의 박보검 사용법

2018.12.11
“청포도” tvN ‘남자친구’에서 차수현(송혜교)이 김진혁(박보검)에 대해 받은 인상이다. 차수현이 쿠바에서 김진혁을 처음 봤을 때 그는 아이와 함께 놀고 있었고, 오랫동안 사용한 카메라가 부숴졌을 때는새 카메라가 아닌 돈으로 살 수 없는 추억에 대해 말한다. 동화호텔 경영자 차수현이 자신의 부와 유명세만큼이나 여러 문제에 시달린다면, 그의 회사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김진혁은 청량한 과일처럼 그에게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기존의 많은 드라마에서 어리고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나이 많고 재력 있는 남자 주인공에게 짓던 표정이다.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범한 남자’라는 ‘남자친구’의 기획의도처럼, ‘남자친구’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여주던 남녀의 설정을 뒤집는다. 이 드라마가 박보검을 캐스팅했어야 할 이유다. 드라마 속에서 “청포도”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남자 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김진혁은 박보검이 대중 앞에서 보여준 이미지의 종합판 같다. 누군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여린 얼굴은 영화 ‘차이나타운’의 석현을 연상시키고, 자신의 일에는 열심이되 일상에서는 해맑고 순수한 모습은 tvN ‘응답하라 1988’의 최택과도 닮아 있다. 그리고 무심코 차수현의 손을 잡았다가도 곧바로 사과하거나 가방을 도난 당해 돈 한푼 없는 차수현에게 세심한 배려를 하며 기분을 풀어주는 모습은 JTBC ‘효리네 민박 2’에서 실제의 박보검이 보여준 모습과도 겹친다. 그는 ‘효리네 민박 2’에서 낯선 차를 운전할 윤아를 위해 미리 시동과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기도 했고, 게스트의 이름을 일일이 외웠다. 성인이 되고도 “아역배우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씨네 21)고 밝혔을 만큼 순수한 이미지에 리얼리티 쇼를 통해 성인 남자의 섬세한 배려를 더했다. 이 남성상의 의미는 ‘남자친구’ 시청률이 보여준다. ‘남자친구’ 1회 시청률은 8.7%(닐슨코리아 기준), 2회 10.3%를 기록했다. 2회만에 케이블 TV 시청률로는 대성공이라 할 수 있는 10%를 넘겼다. 1회에서 “청포도”같은 김진혁의 캐릭터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화제를 모은 뒤의 일이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서준희(정해인), ‘뷰티인사이드’의 류은호(안재현) 등 올해 드라마에는 세심한 성격의 연하 남자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이 흐름에서 박보검의 ‘남자친구’ 출연은 그 자체로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박보검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자신의 해맑은 얼굴 위에 지혜와 위엄을 더한 세자를 연기했다. 액션연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증명했다. 좀 더 액션이 많은, 영화계에서 많이 제작하는 남자 배우들 위주의 작품에 출연해 흥행을 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보검은 지금 인기 남자 배우들 중 자신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을 선택했고, 여성시청자들은 다시 한 번 그에게 반한다. ‘남자친구’에서 차수현은 기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처럼 능력과 재력을 갖췄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직면하는 문제에 시달린다. 바람을 피워 이혼한 전 남편 정우석(장승조)에게는 불륜이 오점이 아니지만, 이혼 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진혁과 라면을 먹었을 뿐인 차수현에게는 그마저도 구설수에 오른다. 아버지의 정치 생명을 위해 재혼하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쿠바에서 차수현은 하이힐을 잃어버리고, 다시 하이힐을 신었을 때는 발이 다쳐서 곤란해진다. 그때 김진혁은 자신도 신발을 벗으며 함께 맨발로 다니자고 권한다. 일을 할 때일수록 오히려 하이힐을 신고 있어야 하는 여성에게 하이힐을 벗어도 괜찮다고 하는 남자. 가난한 여자 주인공에게 하이힐을 사주는 남자 주인공이 수없이 등장한 뒤, 새로운 ‘남자친구’가 왔다. 박보검의 얼굴로.

다만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범한 남자’라는 ‘남자친구’의 기획의도에는 ‘가진 것 없는 남자가 높고 깊은 성 안에 갇힌 공주를 구해내는 이야기’가 함께 붙는다. 차수현은 망해가던 호텔을 살리고,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투자가 쉽지 않을 쿠바에도 호텔 사업을 펼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를 계속 소박한 일상을 그리워하고,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일탈을 꿈꾸는 것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기존 드라마에서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 어리고 가난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할 때, 남자의 선택은 재력과 권력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랑의 결론이 해피엔딩일 경우 남자가 자신의 재력을 유지한채 여자를 자신의 세계에 데려온다. 반면 ‘남자친구’에서 차수현이 10세 연하의 회사 신입사원을 사랑할 때는, 자신을 옥죄는 환경을 벗어나는 구원의 기회처럼 묘사된다. 차수현은 뛰어난 경영자이면서도 그가 이루고 싶은 목표나 성취감은 작품 안에서 잘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늘 김진혁으로 대표되는 소박하고 순수한 삶에 목말라한다. 그 결과 김진혁은 차수현과 비교해 지식, 경험, 재력 어느 하나 우위에 있지 않음에도 그에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김진혁은 차수현이 자신을 피하자 “발버둥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하고, 언제나 진심을 미덕으로 내세우는 그의 태도는 때로는 ‘맨스플레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협력업체 직원에게 만남을 강요했다는 루머에 휩싸인 차수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 자신이 열애설의 주인공임을 밝히는 그의 행동은 “당신을 혼자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지만, 동시에 차수현에게 감당해야 할 다음의 일은 고려하지않는 처사이기도 하다. 세상사에 지친 여성에게 순수하고 진심어린 삶의 태도를 가진 남자가 위안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여성에게 지금의 삶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까지 여자가 원하는 판타지일까. 또한 지금 여성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성이 여성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순수하고 어느 정도의 매너가 있는 남자일 뿐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과거의 재벌 후계자나 지금의 신입사원이나, 그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에는 여자에게 일정 이상의 욕망은 막는 듯한부분들이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는 더욱 박보검일 수 밖에 없다. 박보검이 그동안의 활동에서 보여준 모습은 드라마의 단점들을 가려준다. 김진혁이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박보검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신뢰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쿠바에서 아이와 손을 잡고 노는 모습을 통해 캐릭터의 순수한 성격을 설득할 수 있는 배우 자체가 박보검 외에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 ‘남자친구’를 더 잘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던 입장에서, 본인 스스로 매력적인 ‘남자친구’가 되겠다고 자처한 배우에게 부여할 수 있는 매력이 지금보다는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단적으로, 작품 속 김진혁의 모습이 ‘효리네 민박 2’의 박보검보다 더 성숙하고 세심한 캐릭터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이 ‘남자친구’가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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