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힙합│① 한국 힙합은 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가

2018.11.27
힙합이 태어난 곳은 파티장이었으나 자란 곳은 인종차별의 현장이었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중심에서 ‘흑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외친 소울에 이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힙합이 저항음악의 자릴 대신해왔다. 래퍼들에게 최대의 적은 인종차별을 일삼는 백인들과 그러한 환경을 만든 시스템이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메타포와 비속어를 장전하고 사회의 썩은 곳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비단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 래퍼들에게 최대의 적은 무엇일까? 일단 부당한 사회나 시스템은 아니다. 근 몇 년 사이를 살펴보자면, 그들의 주 타깃은 ‘페미니스트/페미니즘’을 향해 있는 듯하다.

물론, 래퍼들이 직접적으로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의 래퍼는 페미니스트를 적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사와 발언의 기저에 여성 혐오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며, 이것이 결국 페미니즘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꽤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많은 이를 경악하게 한 산이의 ‘FEMINIST’ 논란은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비록 그는 여성 혐오나 안티페미니즘 곡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레퍼런스로 삼은 것이 확실해 보이는 조이너 루카스(Joyner Lucas)의 ‘I’m Not Racist’(각각 백인과 흑인 입장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붓는 컨셉트를 통해 갈등의 해결을 모색한 명곡이다)와 달리 한쪽 입장만 전달하는 데 그친 것, 그리고 해명문에서조차 ‘올바른 페미니즘’을 규정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한계만 재차 확인케 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 힙합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FEMINIST’에 드러난 정서는 현재 한국 힙합을 향유하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심지어 처음엔 1990년대 우익 측에서 나온 야만적이고 몰역사적인 용어 ‘페미나치’를 차용하던 것에서 이제는 페미니스트 자체를 비하 용어로 사용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블랙넛은 ‘Part. 2’란 곡에서 ‘페미니스트의 왕언니’라는 표현을, 빌 스택스(Bill Stax aka 바스코)는 ‘마이크 스웨거’ 프리스타일에서 ‘그래 넌 페미고 오늘을 계기로 남친 데리고 꺼져줘’란 가사를 썼다. 래퍼들뿐만 아니라 힙합 팬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부정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부류가 많아졌다. 물론 이들이 비난하는 ‘페미니스트’엔 ‘올바르지 않은’, ‘급진적인’, ‘가짜’, ‘유익하지 않은’ 등의 함의가 있다. 그럼에도 남성우월주의에 기반을 두고 기준을 정하여 왈가왈부하는 행위에서 오는 모순과 그에 따른 비판을 피해갈 순 없다. 무엇보다 아티스트까지 나서서 페미니스트 자체를 비하 용어로 사용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독보적이어서 뜨악하다.

최초 한국 래퍼들의 가사에 내재된 여성 혐오는 미국 힙합이 국내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뿌리 깊은 여성 혐오 가사는 서두에서 언급한 저항음악으로서의 힙합이 지닌 가치와 극단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건 수많은 래퍼가 수십 년 동안 여성 비하 가사를 써왔음에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혐오하는 건 여성이 아니라 ‘혐오할 만한 짓을 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즉, ‘개년(Bitch)이니까 개년이라고 부른다’라는 논리다. 돈만 보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비난하는 일명 ‘골드 디거(Gold Digger)’ 서사와 외모를 잘 가꾸고 남자에게 순종적인 여성상을 찬송하는 내용들이 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미국 힙합의 정서는 한국 힙합에도 이식되어, 전자는 ‘김치녀’, ‘된장녀’, ‘꽃뱀’ 서사로, 후자는 ‘(바람직하지 않은) 페미니스트’ 서사로 확장되었다. 힙합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마초성이 고스란히 옮겨온 결과다.

하지만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힙합의 근간이 되어온 남성성은 극심한 인종 차별과 적자생존의 현실 속에서 형성되었다. 빈민가의 많은 젊은 흑인 남성들은 아버지가 가출하거나 폭력에 의해 사망한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범죄 조직에 속할 수밖에 없었고, 남성성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이었다. 종종 래퍼들의 가사에서 발견되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 및 책임의식과, 사회 진출이 가로막힌 현실에서 비롯된 패배주의의 분노가 약자를 향하면서 형성된 여성 혐오 사이의 괴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무엇보다 흑인 남성들에게 흑인 여성은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젊은 남성과 여성은 본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경쟁 구도를 이룬다.

한국의 남성들은 대부분 부모의 비호 아래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대학 진학이란 비슷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 후, 사회에 진출한다. 본인에게 매겨지는 물리적인 몸값은 물론, 다른 이와의 격차를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즈음(20대 초중반)이다. 실질적으로 남녀차별을 의식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남녀임금격차 문제를 들 수 있다. 매년 OECD 최하위라는 보도가 나오지만, 30대 후반을 기점으로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현실을 경험할 수 없는 이 시기의 남성들, 구체적으론 여성과 비슷하게 벌거나 덜 버는 시기의 남성들에게 ‘차별’이란 단어는 그저 배부른 푸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현재 그들이 주장하는 역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이 실은 남성들이 구축한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에도 언제나 총구가 시스템이 아닌 여성을 향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하물며 20대는 물론,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 전인 10대 청소년들 또한 주를 이루는 힙합 씬은 어떠하겠는가.

이상의 현실이 작금의 한국 힙합에서 부각되는 남성성과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면,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을 향한 조롱과 분노로 귀결된다. 오늘날 많은 한국 래퍼들의 역할이 온라인 남초 사이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확성기와도 같아서다.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 못지않게 언제나 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강한 주관을 바탕으로 담론을 주도해온 미국의 래퍼들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경향이 교포 출신 래퍼들의 결과물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는 점은 흥미롭다. 산이의 “FEMINIST”가 발표되자마자 남초 집단에서 보인 폭발적인 반응이 이를 잘 대변한다. 

한국 래퍼들이 구축한 남성성은 남자로 살아오면서, 혹은 남자 어른을 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아이돌을 제외하면 가장 어린 나이대의 아티스트와 팬이 분포했음에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오랜 통념이나 여성을 특정 프레임 안에서 대상화하는 행위가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특히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선 심한 경우 ‘일베’ 수준의 대화가 오가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힙합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 일베 회원이 많아서일 수도, 실제로 일베를 즐겨 찾진 않지만 또래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것이 일베의 언어인지 모르고 습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일베의 논리를 펴고, 일베의 언어로 얘기하는 힙합 팬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런 그들이 일베를 혐오하고 일베와 비교되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며 ‘올바른 페미니즘’을 역설한다. 정말로 쓴 아이러니다. ‘힙합 팬의 절반 이상이 실은 래퍼 지망생’이란 속설이 있을 정도로 팬과 아티스트의 경계가 희미해진 현실 속에서 힙합 팬들은 그렇게 래퍼가 되고, 거대한 아이러니의 굴레는 계속된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 힙합이 가까운 시일 안에 바뀔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애초부터 안티-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즉 언제든 ‘올바른 페미니즘’을 지지해줄 용의가 있다는 대다수의 래퍼와 팬들에겐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라건대, 정말로 힙합을 사랑하고 발전을 원한다면, 세상의 흐름에 좀 더 신중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느끼고 변화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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