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유행프로그램’은 정말 '최신'인가

2018.11.23
‘최신 유행 코드를 다양한 코너에 담아 시청자를 핵인싸로 만들어주고야 마는’. XtvN ‘최신유행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다. 최신 유행을 보여준다는 프로그램 취지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은 최근 가장 첨예한 소재인 젠더 문제를 일부 재현한다. 채널A의 ‘하트 시그널’을 패러디한 코너 ‘허트 시그널’은 ‘잘생긴 남자가 이상형이다’라는 오마이걸 지호를 훈계하는 권혁수의 모습에 ‘맨스플레인’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군무새(군대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복학생)’ 패러디에서는 ‘여성들도 군대를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복학생을 지목해 ‘군무목 여혐과’, ‘군무새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과’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여성이나 다문화가정, 비만인이나 성소수자를 주로 웃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한국의 개그 풍토에서 이처럼 다수에 속할 법한 남성을 풍자하는 장면은 흔치 않았다.

다만 ‘최신유행프로그램’은 특별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에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그저 최근의 정서를 기준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희화화한다. 이 프로그램은 낮은 질의 옷을 팔면서도 카드 결제나 환불 등의 절차를 제공하지 않는 SNS 마켓 셀러를 풍자하고,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는 ‘힙스터’들을 마약 대신 미숫가루를 흡입하는 모습으로 그리며 가짜 마약으로 논란이 됐던 실재 연예인을 패러디한다. 심지어 뉴욕에서 온 흑인 ‘김요한’의 시선을 빌려 한국 문화 전반을 비꼬기도 한다. 웃음의 대상에는 남성도, 여성도, 연예인도, 한국인도 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인싸’, 즉 주류의 영역에 있거나 ‘인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군무새’ 패러디 역시 맨스플레인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담았다기보다 복학한 뒤에도 군대 경험을 주류로 규정하고 이를 내세우는 이들을 풍자한 것에 가깝다. ‘최신유행프로그램’은 트위터 및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문법을 빌려와 구사하며 ‘보다 보면 핵인싸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싸’와 ‘아싸’를 나누는 사회적 기준 그 자체를 비웃는다. ‘인싸’가 되고 싶어 ‘인싸 학원’까지 등록하는 ‘아싸’들도, 톰과 제리 스텝을 SNS에 인증하는 ‘인싸’들의 문화도 이 프로그램 안에서는 모두 웃음의 대상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가리지 않고 깐다’고 할 수 있다.

‘최신유행프로그램’의 한계는 여기서 비롯된다. ‘최신유행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대상들은 각자 평등한 위치에 있지 않은데, 이 프로그램은 그들을 ‘가리지 않고 까는’ 방식을 취하면서 약자들마저 동일한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싸에서 인싸 되기 프로젝트’ 에피소드는 유행을 주도하는 ‘인싸’ 문화를 어설프게 따르는 권혁수의 모습을 ‘끔찍한 혼종’이라 비하하며 마무리됐다. ‘군무새’ 에피소드에서 홧김에 ‘된장녀, 김치녀’를 입에 올린 권혁수는 친구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이 프로그램의 다른 코너인 ‘허트 시그널’은 그런 발언과 다름없는 관점으로 여성을 묘사한다. 이 코너에서 이세영은 부유한 남성을 통해 신용불량자 상태를 탈출하려는 인물로 등장하며 “월급은 내가 받을게, 출근은 누가 할래?” 같은 발언을 내뱉는다. 또한 모든 여성 출연자들은 뛰어난 외모를 가진 남성을 두고 경쟁하며 기싸움을 벌이거나, 서로를 깎아내리는 이른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의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된다. ‘기승전 대한민국 만세’로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이해하는 김요한은 어눌한 한국말과 어리숙한 행동을 통해 마치 정신 연령이 낮은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최신유행프로그램’은 프로그램에서 비꼬았던 ‘어설픈 아싸’들처럼 사회적 흐름을 쫓다 마는 ‘혼종’이 된다. 주류와 비주류의 구도를 비트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비주류에 속한 이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혐’과 ‘맨스플레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도 여성혐오적인 장면들을 노출하며,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비웃기 위해 외국인(공교롭게도 흑인이다)을 희화화한다. 그리고 이를 ‘웅앵웅 초키포키’ 같은 최신의 유행어와 문법으로 묘사하며 ‘최신 유행’이라 포장한다. 물론 ‘군무새’ 에피소드처럼 몇몇 사회적 흐름을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일부 대중의 공감이나 지지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순간적인 유행의 일부로서 사회적 이슈를 차용할 뿐, 왜 그것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제작진이 ‘군무새’ 에피소드에만 유일하게 ‘몇몇 소수의 (복학생의) 모습’을 풍자했다는 자막을 단 것은 흥미롭다. 다른 이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는 없었던 설명이다. 여성혐오를 차용해 풍자하면서도, 정작 풍자 대상을 약자처럼 보호하는 것이다. ‘최신유행프로그램’에는 최근 한국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쟁점 또는 인권 감수성이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을 소화하는 방식은 시대의 변화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 ‘인싸’가 되기 위해 애쓰는 ‘아싸’의 모습이란 사실 ‘최신유행프로그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글. 김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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