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채식인의 일상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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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방송된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면서, 나는 여러 번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다. 이번 방송 출연자 중 채식인이 있었다. 호주에서 온 케이틀린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오기 전에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남기’라고 검색해봤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비빔밥이 나왔다고 한다. 케이틀린과 가족들은 실제로 한국에 오자마자 비빔밥 맛집으로 향했다.

출연자들은 비빔밥 먹는 방법을 잘 몰라서 고추장을 덩그러니 놔두고 맨밥과 나물만 비벼 먹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직점 담근 고추장이 아니라 시중에 파는 고추장을 사용한다면, 소고기 분말이 들어갈 확률이 크다. 비빔용 고추장이면 그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런데, 갑자기 직원이 출연자들에게 다가가서 고추장을 비벼 먹으라고 일러준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안돼!”

저녁이 되니 출연자들이 한강으로 향한다. 케이틀린의 사촌 블레어(한국에 사는 호주인)는 케이틀린에게 라면을 소개해준다. 자동 조리기로 직접 라면을 끓인다. 매콤한 국물, 꼬들꼬들한 면발, 풀풀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 라면이 완성되었다. 그때 블레어가 케이틀린에게 말한다. “여기엔 고기가 들어 있어.” 잔인하기도 하지! 끓이기 전에 말해주든지, 채식 라면을 준비해주든지. 화면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패널들이 동시에 탄식을 한다. 케이틀린은 고민, 또 고민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라면을 먹는다.

이 방송이 한국에서 채식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채식인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욕구와 싸우는 모습만 보여준다. 라면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케이틀린을 보며, 패널들은 무례한 말을 쏟아낸다. “라면 진짜 맛있는데!” “육수는 괜찮지 않나?” “괜찮아. 눈감아줄게.” “솔직히 혼자 있으면 벌써 먹었다.” 흥미롭게도, 전부 채식인들이 아주, 아주, 아주 흔하게 듣는 말이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술상에 갖가지 치킨이 올라와 있는 와중에, 채식을 하는 나를 위해 준비된 안주는 다름 아닌 샐러드였다. 누가 소주에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생채소를 먹나! 샐러드라니! 소주에 샐러드라니! 한국 사회는 채식이라고 하면 아직도 샐러드만 떠올린다. 채식을 하는 사람은 건강한 음식만 먹는다는 엉뚱한 고정관념 때문일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듯,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입맛과 성격도 모두 다르다. ‘정크 비건’이라는 용어가 있다. 영양가는 낮지만 열량은 높은 비건 음식이다. 비건에도 정크푸드가 있다는 뜻. 쉬운 예로는 감자튀김이 있겠다.

나는 채식을 수련의 일환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신념에 의한 식생활이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맛있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과 다르다. 채식인도 맛있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 채식인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많지 않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적어서 선택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주문하면서 돼지고기를 빼달라고 ‘부탁’하고, “그러면 맛없어”라는 대답에 “그래도 주세요”라고 다시 한 번 ‘부탁’하는 게 일상이다.

한국에 사는 채식인들, 불쌍하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그렇게 산다. 평화를 위해 채식을 하는데 이너피스가 안 되는 이 모순. 채식은 혼자 하기 힘들다. 같이하자는 말은 아니다. 술자리에 비건을 초대해놓고 생채소를 준비하는 것, 이 수준은 좀 넘어서보자는 거다. 행사 다과를 준비할 때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비건의 몫을 준비하는 것, 뒤풀이 장소를 정할 때 “채식하는 분 있나요?”라고 묻는 것. 이 두 가지부터 실천해보자. 삼겹살과 치킨을 ‘찬양’하는 육식 중심 사회에서 채식을 다짐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먹는 것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채식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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