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의 퍼포먼스│① 아이즈원 ‘라비앙로즈’

2018.11.09
©Mnet
걸그룹 아이즈원의 데뷔곡 ‘라비앙로즈’는 무대 위에서 장원영을 가운데 세워놓고 시작한다. ‘센터’이기 때문이다. 이 팀의 멤버들은 Mnet ‘프로듀스 48’의 시청자 투표를 통해 뽑혔다. ‘센터’는 득표수 1위에 대한 보상이다. ‘프로듀스’ 시리즈, 또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팀들의 특징이다. 프로그램 방영 당시 만들어진 멤버들의 인기, 캐릭터, 스토리 등이 데뷔 후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친다. 곡, 뮤직비디오,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중요하지만, 데뷔 전부터 형성된 팬들이 원하는 것들부터 반영해야 한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로 데뷔한 워너원은 데뷔곡 ‘에너제틱’에서 센터 강다니엘의 분량 문제로 팬들이 제작사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라비앙로즈’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장원영은 시작과 끝에 센터로 서고,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며, 1절 후렴구에서 가장 먼저 가운데 서서 포인트 안무를 보여준다. 권은비와 이채연처럼 ‘프로듀스 48’에서 실력이 부각된 멤버는 ‘더 깊어진 눈빛 그 속에 붉어진’처럼 1절과 2절에서 가장 힘 있게 온몸을 다 움직여야 하는 파트를 소화한다. 미야와키 사쿠라처럼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일본인 멤버는 곡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기 전 얼굴에 시선이 집중될 파트를 맡기며 장점인 표정 연기를 부각시킨다.

아이즈원의 멤버 김민주는 ‘프로듀스 48’ 방영 당시부터 이른바 ‘비주얼 픽’으로 불리며 외모가 화제가 됐다. ‘라비앙로즈’에서 그는 도입부에서 장원영 다음에 등장해 팬들이 이른바 ‘예쁜애 옆 예쁜애 옆 예쁜애’라고 하는 이 팀의 외모가 가진 장점을 부각시키고, 2절 후렴구에서 가운데 서서 신체 비율을 강조할 수 있는 포인트 안무를 선보인다. ‘라비앙로즈’는 멤버들에 대한 팬의 기대를 반영하면서, 멤버들의 실제 특징들을 결합해 각자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준다. 1절에서 권은비와 조유리는 각각 자신이 춤과 노래에 특화된 멤버라는 것을 선보이고, 곧이어 장원영이 가운데 서서 포인트 안무를 선보인다. 멤버들은 자신의 파트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팀에서 맡은 역할을 설득하고, 그 결과 이제 막 데뷔한 팀 멤버들의 전체적인 균형과 시너지 효과를 3분 30여 초의 퍼포먼스로 구현한다. 걸그룹 데뷔 앨범 초동(첫 주 판매량) 기록을 2배 이상 경신할 만큼 큰 이 팀의 팬덤이 ‘프로듀스 48’과 이후 데뷔 전 콘텐츠로 상상하던 멤버들의 특성이 무대 위에서 표현됐다. ‘프듀 아이돌’이라는 작은 장르의 탄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라비앙로즈’의 퍼포먼스의 흥미로운 점은 팬덤의 바람을 넘어서는 패기에 있다. 곡의 도입부에서 장원영이 가운데 서 있는 동안, 멤버들은 그를 둘러싼 채 끊임없이 움직인다. 가운데에서 원을 그리던 멤버들은 노래의 전개에 따라 좌우에서 한 번씩 파트를 번갈아 하며 천천히 옆으로 퍼져 나가고, 김채원이 ‘이런 느낌은 루비보다 더’라고 할 때 앞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한다.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점점 더 TV 화면을 점차 가득 채우는 동시에 앞으로 나오며 입체감을 준다. ‘라비앙로즈’의 테마가 장미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화의 과정을 퍼포먼스로 옮긴 것이자, 도입부에서 무대 뒤쪽에서 작게 움직였던 멤버들이 후렴구로 갈수록 앞에서 크고, 넓고, 힘차게 움직이는 드라마틱한 전개이기도 하다. 장미를 테마로 퍼포먼스는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이를 위해 12명의 멤버들은 동작의 통일성이 유지돼야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군무를 계속 춰야 하면서 한 팀으로 통합된다. 센터를 가운데 점에 두고 시작한 퍼포먼스가 좌우 전후를 모두 활용하는 구성은 동선을 지저분하지 않게 만들면서도 이 팀의 멤버가 12명이어야 할 이유를 무대 위에서도 설득한다.

특히 2절 후렴구가 끝난 뒤, 멤버들이 권은비를 중심에 두고 V자를 그리며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다인원 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이즈원이 한 팀으로서 에너지를 어느 정도 출력까지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12명이 모였더니 따로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크고 힘찬 퍼포먼스가 가능하다. 김민주와 미야와키 사쿠라를 중심에 두고 12명의 멤버가 한꺼번에 걸어 나오는 부분은 ‘라비앙로즈’의 퍼포먼스가 아이즈원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보여준다. 2달 전 시청자의 투표로 뽑힌 멤버들이 오히려 팬 또는 대중을 압도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시청자의 욕망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에너지. 아이즈원은 ‘라비앙로즈’를 통해 그들에게 주어진 규칙 안에서 팬덤 바깥의 세계까지 욕심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든 듯하다. 콘텐츠가 산업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하고 동시에 넘어서는가라는 점에서 근래 가장 인상적인 데뷔 퍼포먼스다. 이럴 때마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걸그룹 I.O.I의 ‘드림걸스’는 도대체 왜…라는 의문은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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