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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다시 한 걸음 더

2018.11.07
SBS ‘미스 마 : 복수의 여신’에서 김윤진이 연기하는 미스 마는 그의 연기 커리어를 압축한 역할처럼 보인다. 죽은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김윤진이 영화 '하모니'에서 연기했던 모성애 강한 재소자 정혜를 떠오르게 한다. 반면 딸을 죽인 누명을 쓴 그가 탈옥을 위해 감방 안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한태규(정웅인) 형사를 힘으로 압도하는 장면은 오래 전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쉬리’에서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들을 침착하게 추리해나가는 명석한 두뇌는 영화 ‘세븐데이즈’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사건을 일사천리로 풀어가던 변호사 지연을 닮았다. 그러나 미스 마는 김윤진이 연기했던 여러 캐릭터들과 또 다르다. 타인을 협박하며 탈옥한 그이지만 전직 조직폭력배 고말구(최광제)가 결백함을 밝혀주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마을에 숨어들었지만 오히려 경찰보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여성이나 모성애라는 주어진 조건을 넘어, 인물 자체로 드라마 전체의 흐름을 압도하는 캐릭터. ‘쉬리’ 시절의 ‘여전사’ 캐릭터나 누구의 엄마로만 머무르지는 않는 김윤진의 연기다.

김윤진은 항상 주어진 한계와 맞서 싸웠다. 커다랗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입체적인 곡선의 코는 ‘도시적인 얼굴’의 전형처럼 보였고, 이와 맞아 떨어진 ‘쉬리’의 캐릭터는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동시에 극복해야 할 장벽이 됐다. 2002년 ‘밀애’에서 욕망에 눈뜬 자유로운 여성을 연기하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정점에 올랐지만, 바로 그때 미국으로 건너가 신인으로 재출발했다. ABC ‘로스트’에 캐스팅 되면서는 한국계 여성 선화의 수동적인 면모나 극중 한국에 관한 잘못된 고증에 꾸준히 의견을 내며 동양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 애썼다. (자서전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 정작 한국에서는 ‘세븐데이즈’, ‘하모니’, ‘국제시장’ 등에서 모성애를 강조한 연기를 했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김윤진은 “이게 40대 여배우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주어진 현실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엑스포츠뉴스’ 인터뷰)이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 보다 조금씩 더 나아갔다. ‘하모니’의 정혜는 재소자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따뜻함을 가진 캐릭터였고, ‘세븐데이즈’의 지연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캐릭터였다. 그는 모성애라는 공통분모 내에서 조금씩 다른 여성들을 연기했고, ‘국제시장’에서 가부장제 하의 전형적인 아내이자 어머니 영자를 연기할 때마저도 남편이 오랫동안 해외에 있는 사이 혼자 가정을 꾸려나가는 강인함을 선보였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이라서, 한국에서는 여성이라서 늘 제약에 부딪혔지만, 그는 현실 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위치를 꾸준히 고민했다. 그 배우가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는 한계처럼 보였던 모습들을 통해, 전형성을 깨는 인물인 미스 마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건 그가 도착한 또다른 지점처럼 보인다.

“월드스타에겐 월드스타라는 말이 붙지 않아요.” 2007년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그가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톰 크루즈가 그냥 톰 크루즈이듯, 동양계 배우나 월드스타가 아닌 ‘김윤진’ 그 자체이고 싶다는 의미였다. 40대 중반의 여성으로서, 그는 ‘미스 마’에서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는 복합적인 인간을 보여준다. 그렇게 김윤진은 한 발씩 나아간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어보였지만, 되돌아보니 멀찍이 높은 곳을 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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