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의 WOMEN│② 보아부터 민희진까지, SM의 여성들

2018.11.06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거나, SM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를 만들어왔거나, 혹은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중인 여성 아티스트 6인을 골랐다. 여기에는 수많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크리에이터 민희진 이사가 포함돼 있다. 지금, SM 엔터테인먼트 안에는 이런 여성들이 있다.

보아: 30대 여성, 아이돌, 여성 아이돌

SM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여성 아이돌로 가장 모범생에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보아다. 만 13세의 나이를 강조하며 데뷔한 그는 회사에서 이사 직함을 달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현역 아티스트로 음반을 내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심지어 그는 최근에 발매한 정규 9집의 타이틀곡 ‘Woman’의 첫 방송 무대에서 댄서들이 자신을 거꾸로 드는 고난이도의 안무를 시도하기도 했다. 연습생 시절 보아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속 장면들은 지금 그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다만 그가 10대에 가수 생활을 시작해 30대 중반에 접어든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새롭게 생겼다. 그는 이제 ‘키워드 보아’와 같은 짧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이 일하는 방식과 생활 속 가치관을 공개하며, ‘Woman’에서 ‘Girls on Top’을 부를 당시에 당당한 여성을 노래하면서도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다. 30대 여성으로서, 아이돌로서, 여성 아이돌로서 보아는 SM 엔터테인먼트에 유일하게 존재한다. 이 교집합을 통해 여러 여성들이 그를 동경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태연: 서커스 무대를 겁내지 않는 사람

태연의 ‘Something New’ 앨범 수록곡인 ‘Circus’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이건 더없이 아름다운 my circus.’ 작은 키와 하얀 피부 때문에 귀엽고 앙증맞은 이미지를 얻었고, 외모와는 반대로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으로 “털털하다”는 평을 들으며 성별을 가리지 않고 큰 인기도 얻었다. 그러나 요즘 태연은 자신이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며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 밝히고, 웃거나 애교를 부리는 사진보다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일이 늘었다. 요즘 태연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밝은 모습과 우울해 보이는 모습을 모두 스스럼없이 올리고, 다른 남성 아티스트의 SNS에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돈이 많고 일도 많이 들어오는, 잘나가는 여성이기에 무엇도 거리낄 것 없어 보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태연은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때론 눈앞이 아찔하지만 위험할수록 달아오를’ 광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과 행동의 무게를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아슬아슬한 서커스 무대에 자신을 올릴 준비가 돼 있는 겁 없는 여성이다.

설리: ‘아이돌 명가’에서 탄생한 이단아

“이 프로그램을 한다고 하니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설리 아직 SM 소속이에요?’였어요.” 설리의 매니저가 웹 예능 프로그램 ‘진리상점’에 출연해 한 말이다. 가장 모범답안에 가까운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아이돌 명가’ SM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그는 분명 이질적인 존재다. 동시에 연예계를 통틀어서 보기 힘든 기이함을 지닌 캐릭터이기까지 하다. SNS상에서 자신의 머리를 직접 가위질하며 즐거워하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가슴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팔다리가 없는 인형을 찍어 올리거나 기습적으로 SNS 라이브를 열어 자신의 속옷과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게다가 이제는 “처음에 원하지 않게 설리라는 이름을 쓰게 됐는데, 되게 싫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목을 ‘진리(설리의 본명)상점’이라고 지었다. 회사가 주는 모범답안을 거부하다가 오히려 그게 캐릭터가 돼버렸고, SM 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이 캐릭터를 놓치지 않았다.

엠버: 편견이 만들어낸 경계를 부수다

남자애 같은 여자애로 불리던 아이돌. 또는 오디션장에서는 남자 가수의 노래를 불렀다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SM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레이블에서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옷차림과 머리 길이 그대로 가수가 된 여자이자 아이돌. f(x)의 활동이 뜸해지며 엠버는 미국에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 뒤에 그가 내놓은 콘텐츠는 한국에서 자신의 성별과 성정체성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던 사람들을 한껏 비꼬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Where is my chest? (내 가슴은 어디 있지?)” 자신의 가슴이 보이지 않는다며 “저게 여자야?”라고 묻는 편견 어린 시선들을 비웃으며, 영상 속 엠버와 친구들은 활짝 웃고 있었다. 엠버는 노래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긴 머리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갖고 있지 않아도 자신이 여성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모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성별과 직업,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웃고 떠든다. 그야말로 경계 없이 주변인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이린: 굳이 웃어야만 하나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린이 무표정으로 멍하게 있는 모습은 ‘태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양산해냈다. 타인의 이야기에 잘 끼어들지 않고 남성 진행자의 질문에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대중은 “무례하고 무성의하다”, “안 웃어서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안 좋았다”며 그를 비난했다. 분명히 아이린은 남성의 비위를 맞추려 들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애교를 부려달라고 부탁하면 어색하게 응수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크게 소리 내어 활기차게 웃는 일보다 슬쩍 미소를 짓는 일이 많고, 무대 위에서도 힘차게 움직이기보다 곡의 분위기에 맞춰 주어진 안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아이린은 여성이 굳이 상냥하고 다정할 필요가 없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요구받을 때 반드시 거기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될 때에, 아이린처럼 슬쩍 웃고 마는 것도 다양한 여성의 모습 중 하나다.

f(x)와 작업 중인 모습. ©SM엔터테인먼트
민희진: 드러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여성서사 

민희진은 SM 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아트 디렉트 총괄 이사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낸 걸그룹들의 이미지가 K-POP 시장에서 여성 캐릭터가 다채로워지는 데 제일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에프엑스와 레드벨벳은 2010년대를 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동경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례다. 에프엑스가 독특한 패션과 콘셉트 포토, 뮤직비디오로 아주 독특한 여성들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면, 레드벨벳은 최근 3년 사이 크게 변화한 한국 여성들의 가치관까지 고려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이르렀다. 타이틀곡 ‘행복’에서 ‘해피’라는 캐릭터와 놀면서 마냥 발랄했던 소녀들이 외딴 길 한복판에서 모험심을 드러낸 뒤, 서늘하고 공포가 서린 얼굴로 남성을 바라본다. 민희진은 이를 ‘Pick-A-Boo’에서 남성과의 만남을 가벼운 유희처럼 여기는 여성들의 마음을 빛나는 보석 액세서리가 달린 의상, 섬뜩한 스토리의 뮤직비디오로 표현했다. 소위 ‘요즘 여자애들’이 동경할 법한 당당하고 빛나는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디렉팅은 ‘걸그룹은 예쁘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SM 엔터테인먼트에 평사원으로 입사, 아티스트들의 비주얼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이사에 올랐다. 여성의 또 다른 성장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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