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아이돌’을 하며 악덕사장이 되다

2018.10.18
“이제야 소속사의 마음을 알겠다.” “어느 순간 내가 죽도록 싫어하던 악덕사장이 됐다.” 인터넷과 트위터, 각종 커뮤니티에서 아이돌 팬들의 체험기가 이어졌다. 구글 앱 스토어에서 앱/게임 1위, 4.7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게임 ‘월간아이돌’ 이야기다. 이용자들이 소속사 사장이 되어 직접 아이돌을 키운다는 콘셉트의 인디게임은, 많은 사람들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사장으로 만드는 중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월간 아이돌’에서 ‘윤리적 경영’을 하겠다는 목표로 게임에 도전해 봤다.

# 시작부터 연습생 퇴출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기자의 사명감으로 ‘월간 아이돌’ 사상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 형태)을 일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평소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다, 나름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비장한 마음으로 ‘월간아이돌’을 실행했다. 주어진 기본 자금은 1,000만원. 선택의 여지도 없이 500만원으로 ‘인터넷 캐스팅’(F~D등급 연습생 선발)을 눌러야만 했다. 길거리 캐스팅(1억원, F~S 등급)부터 타회사 연습생 스카웃(1000억원, C~SS등급)까지 더 높은 등급의 연습생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처음에는 튜토리얼을 따라야 하기에 ‘길거리 캐스팅’만 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C~F등급으로 구성된 총 여섯 명의 연습생으로 불안한 출발을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튜토리얼을 따라 가장 낮은 등급의 연습생에게 ‘퇴출’ 버튼을 누르고, 그 다음 연습생에게는 그의 능력치 절반을 다른 연습생에게 주고 쫓아내는 ‘능력치 전이’를 눌렀다. 쫓겨나는 픽셀 아이돌은 눈물을 흘리며 “성공해서 복수할테다”를 외쳤다. 픽셀일 뿐이지만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벌써 퇴출이라니, 시작부터 영 삐걱거린다.

# 노력보다 재능
C, D, F등급의 여자 연습생 세 명을 모아 걸그룹을 결성했다. 데뷔는 무조건 보이그룹/걸그룹 중 하나만 가능하다. 굳이 이런 제약을 둔 건 높은 등급의 연습생을 혼성으로 모으거나, 솔로로 데뷔시키면 게임이 너무 쉬워지기 때문이리라 추측했다. 겨우 이 게임의 생태계를 파악할 때쯤, 처음 발매한 음반의 등급이 나왔다. F-. F도 아니고 F-는 좀 너무하지 않나? 앨범 아래에 뜬 ‘이게 소음공해가 아니라면 무엇이 소음공해인가.’라는 평론가의 멘트가 유독 거슬렸다. 앞으로는 타인의 창작물을 신중하게 평가하는 기자가 되어야겠다. 더 나은 앨범을 만들자면, D등급과 F등급 멤버들을 훈련시켜 C등급 멤버와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래도 목표가 ‘윤리적 경영’이니, 낮은 등급의 멤버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문제는 그들을 열심히 훈련시켜도 수준 높은 연습생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C등급 멤버가 한 번의 훈련으로 노래와 춤 능력치를 1000씩 끌어올릴 때, F등급 멤버의 능력치는 1씩 올랐다. 속이 타기 시작했다. 노력으로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격차다. 이쯤 되니 괜히 개발자를 원망하게 된다. 선천적 재능은 우연인데 후천적 노력은 무의미하다니, 잔인하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경쟁력 없는 멤버들을 퇴출시켰다. 새로운 멤버를 캐스팅해 평균 B+ 수준의 그룹을 만들었다. 그제서야 수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열정과 돈 사이
그래도 ‘윤리적 경영’을 포기했던 건 아니다. 아이돌이 행사를 다녀오면 HP를 꼬박꼬박 충전했고, 콘서트 수익이 40만원밖에 남지 않았던 초창기에도 정산 비율은 5:5로 유지했다. 사실 정산 비율을 낮출 때마다 매니저가 멤버들의 ‘열정’이 떨어진다며 말린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열정’은 0~100으로 수치화된 아이돌의 능력지수인데, 너무 낮아지면 스케줄에 문제가 생겨 수입이 줄어든다. 그럼에도 수익이 커질수록 콘서트 정산이 아쉬워졌다. 아이돌이 A급으로 올라서고 나니, 해외 콘서트 한 번이면 500억의 수익이 들어온다. 그러나 아이돌에게 전체 수입의 반을 정산해주고 소요비용을 빼면 남는 돈이 많지 않았다. 그때 “열심히 키워놨더니 아이돌이 다 가져가네.”라던 앱 리뷰가 생각났다. 게임을 하기 전엔 잔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사람, 현실적이었다. 인터넷으로 ‘월간아이돌 공략’을 검색했다. ‘푸드샵’에서 1인당 2억 가량을 주고 열정을 30씩 충전하는 쪽이 효율적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사실 그렇다. 500억 중 250억을 정산하느니, 500억을 다 정산받고 멤버당 열정 2억을 쓰는 게 누가 봐도 낫지 않은가. 그간 무엇을 위해 5:5의 정산비율을 지켰나 싶었다. '취재를 위한 실험이다’, ‘열정이 차면 아이돌도 불행하지 않을 거다’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되뇌이며 정산비율을 아이돌 0, 소속사 10으로 조절했다. ‘고소각 잴 거야 조심해 당신.’이라는 아이돌의 경고가 뜨며 멤버들의 열정이 50씩 줄었다. 그때마다 ‘푸드샵’을 애용하며 아이돌들에게 열정을 먹였다. 순식간에 회사의 자산이 두 배로 늘었다. 이미 악덕사장이 다 됐다.

# 바보야, 문제는 콘셉트야
악덕사장이 되면서 아이돌의 앨범 차트가 A등급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종종 차트 1위도 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가장 높은 ‘P등급’이 나오지 않아서다. 다시 ‘월간아이돌 공략’을 검색창에 쳤다. “한 콘셉트에 올인하세요.” 그 말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실 아이돌의 HP가 떨어질 때까지 열심히 연습실에만 몰아넣었지, 콘셉트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앨범을 만들 때는 ‘사랑’, ‘성장’, ‘이별’ 같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한 후 cool/cute/pretty/sexy 중에서 선정된 메인 콘셉트/서브 콘셉트에 맞춰 헤어와 의상을 세팅해야 한다. 문제는 멤버들의 매력지수도 고려 대상이라는 점이다. 멤버들의 매력도 콘셉트와 똑같이 cool/cute/pretty/sexy 네 가지로 수치화되는 만큼, 한 매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줘야 한다는 게 공략의 설명이었다.

프로필에 들어가 멤버들의 능력치를 살펴보니, 누구는 cool이 가장 높은데 누구는 pretty가 가장 높고 들쭉날쭉이다. 콘셉트가 하나로 모이지 않으니 최고 점수가 나올 리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때 갑자기 ‘새로운 주제가 추가됐다’는 알림이 떴다. ‘성인’. 당황스럽다. 알고 보니 멤버들의 나이가 20세를 넘으며 추가된 주제였다. 저번에는 안티 카페가 생성됐다고 ‘디스’가 추가되더니. 이쯤 되니 게임의 디테일에 감탄하게 됐다. 현직 A&R의 시선으로 이 게임을 평가한다면 어떨까. 익명의 한 관계자에게 게임에 대해 물었다. “비교적 디테일하게 만든 게임이다. 실제 아이돌도 보통 타이틀곡으로 메인을 노리고 서브 곡으로 다른 매력을 전달한다. 성장에 따라 주제가 추가되는 설정도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걸스데이도 막내 멤버가 성인이 된 뒤에 ‘기대해’로 섹시 콘셉트를 했다.” 지금까지 콘셉트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연습생이 뽑히는 건 운인데, 이렇게까지 콘셉트가 중요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단호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을 필연적인 성공으로 만드는 건 기획사의 몫이다.” 이 게임, 생각했던 것보다 리얼리즘이다. 문득 유튜브에서 한 아이돌이 이 게임을 하며 “현업 종사자가 만든 것 같다”고 언급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쯤 되니 개발자의 정체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아이돌보다 ‘열일’하는 개발자들
‘월간아이돌’을 개발한 ‘608factory’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공식 홈페이지 대신 각종 SNS 계정과 공식 카페를 통해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월간아이돌’의 공식 카페에서 발견한 첫 공지사항이었다. ‘월간아이돌’이 다운로드 10만 명을 달성한 기념으로 발행된 쿠폰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입맛을 다지며 카페를 둘러보다, 몇백 개의 댓글에 일일이 달린 운영자들의 댓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일이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게임의 버그를 고쳐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친절함에 감동받아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들이 어떻게 이 게임을 개발하게 됐는지, 설마 정말 연예계 종사자였는지, 아니면 현업 종사자들의 조언을 받았는지 묻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최근 업무량이 폭주하고 있어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카페 공지사항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게임의 운영자는 단 2명이었다. 2명이서 10만 명의 ‘사장님’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인터뷰가 어려울 법도 했다. 게임 속의 무한한 HP와 열정을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은 게임 속 그 어떤 아이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현직 아이돌과 팬덤, 그리고 기자까지 모두 '악덕사장'으로 둔갑시킨 이 게임의 시스템은 단순하다. 제작사의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고, 이용자에게 소속사의 모든 권력을 부여하는 것. 사실 게임의 등장 이전부터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슈퍼스타 K'나 sbs ‘K POP STAR’ 같은 투표 프로그램들의 등장으로 소속사의 권력은 '국민 프로듀서'들의 몫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프로듀스 101’는 시청자들이 투표로 출연자의 콘셉트를 정해주는 ‘콘셉트 평가’도 있었고, 시즌 2를 통해 데뷔한 워너원은 데뷔 타이틀 곡을 시청자 투표로 결정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돌의 팬들은 이 시간에도 SNS 등을 통해 소속사에 대한 불만이나 콘셉트, 의상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월간아이돌'은 아이돌 시장에 대한 관심이 큰 마니아 소비자들이 충분히 많다는 증거이자, 요즘 아이돌 팬들이 제작의 영역에 얼마나 다양한 관심과 정보를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적인 아이돌을 만들어보겠다는 팬의 마음에서 출발한 게임은 스스로 ‘악덕사장’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아이돌보다 회사의 제작 시스템을 이해하게 만든다. 팬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오히려 제작사의 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되다니, 이것이 이른바 ‘덕후’의 또다른 길인 걸까. 그러고보니 이 게임을 하면서 아이돌에게 가는 배분을 적게 주는 것을 선택한 현직 아이돌의 푸념 아닌 푸념이 떠올랐다. 정말 웹툰 ‘송곳’의 대사 처럼 ‘서는 데가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는’ 걸까. 새삼 제작자의 윤리 경영을 믿기 보다, 법과 제도를 믿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울 듯 하다. 현실에서는 제작자가 스스로 ‘악덕사장’이 되길 선택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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