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사건│① 언론, 이러지 마세요

2018.10.16
최종범과 구하라간의 폭행 공방이 벌어진 후, 최소 4000개가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한 여성 연예인이 실제로 무릎을 꿇은 사건에 대해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보도경쟁 속에서 그들 스스로 드러내 보인 문제점들을 짚어보았다.


낙인찍기에 혈안인 편파적 보도

9월 중순경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언론은 ‘구하라 폭행 의혹’이라는 키워드의 기사를 마구잡이로 냈다.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도 전에 뭇매를 맞는 것은 일반인 최종범보다는 연예인 구하라 쪽이었다. 사건 직후 구하라는 바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아야했고, 9월 15일 조선일보를 통해 최종범의 단독인터뷰가 보도된 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최종범의 주장이나 입장에 보다 무게를 실으며 구하라를 가해자로 확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18일 구하라가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는 그가 언론이 모인 자리에서 미소를 보였다는 사실을 부각하거나 ‘조사 전 쌍방 폭행을 주장하더니 조사 후 돌연 화해 모드로 돌변’했다는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 한 매체는 네티즌의 입을 빌어 구하라가 ‘경찰조사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을 느끼고 먼저 화해를 요청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까지 내놓았다. 언론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구하라가 ‘정말 데이트폭력 희생자였을까’라고 묻는 기사를 내거나, 그가 거대 로펌을 선임했다는 이유로 ‘골리앗 대 다윗’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언론들이 여성 연예인이 연루된 폭행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났던 대목이다.

형사사건을 가십으로 소비
이 사건은 분명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형사사건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가벼운 가십처럼 다루었다.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구하라의 멍든 신체 사진을 통해 타격과 방어 여부를 분석했으며, TV조선 ‘별별톡쇼’에서는 구하라의 전 연애사를 거론하거나 그의 욱하는 성격을 원인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단순히 여성 연예인의 스캔들인 것처럼,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하는 토크쇼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이 사건을 가십거리로 소비한 것은 TV 방송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맞짱(feat.디스패치)’이라고 표현하거나, 구하라의 이름을 활용하여 말장난을 하는 타이틀을 건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같은 걸그룹 멤버였던 강지영의 SNS 발언을 들어 불화설을 제기하고, 사건의 전말이 명백히 밝혀지기도 전에 그의 광고 위약금 분쟁 가능성을 따져보는 기사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이게 재미있는 해프닝인가?

자극적 워딩으로 2차 가해
‘디스패치’를 통해 성관계 동영상이 존재하고, 최종범이 구하라에게 동영상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여론은 최종범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지만,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구하라에게 더 폭력적이었다. ‘노골적 영상물’, ‘은밀한 동영상’ 등의 워딩이 타이틀을 차지했고,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 이 사건에 대해 ‘점입가경’이나 ‘구하라 남친에 불똥’이라고 표현한 매체도 있었다. 최종범 앞에 무릎을 꿇은 구하라의 모습이 찍힌 CCTV가 공개되며 아예 ‘구하라 무릎’이라는 단어가 포털 사이트 급상승 검색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떠한 제제도 없이 공개된 댓글 창에는 동영상을 거론하며 그를 성희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근별한 어뷰징 기사 배포
사건 이후 구하라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는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그 중에는 전혀 사건과 상관없는 사실을 다루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몇몇 인터넷 뉴스에서는 ‘여자 연예인이 헤어 디자이너와 정분이 나는 이유’를 타이틀로 구하라를 거론하며 한 커플의 결혼 소식을 기사화했고, 얼마 전 류화영과의 스캔들로 논란이 됐던 엘제이가 SNS에 ‘나 동영상 없어요’라고 남긴 말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구하라의 이름만 들어가면 무엇이든 기사가 됐다. 일부 매체에서는 구하라의 최근 활동을 되짚어 보거나, 뜬금없이 ‘최근 논란을 안타깝게 만든 전성기 미모’를 조명하기도 했다. 해당 매체가 얻게 될 이익을 제외한다면, 과연 이런 기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검증
일부 언론들은 마치 구하라를 검증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사건 초반에는 구하라가 합의를 시도한 사실을 들며 ‘그가 진정한 피해자인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방송에서 농담처럼 거론된 ‘싸움실력’이나 ‘롤링타바코’ 등의 키워드를 기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사건이 보도된 초반 몇몇 매체에서는 얼마 전 해프닝으로 끝난 자살 시도설을 거론하며 ‘이런 식으로 기력회복을 알리나’라고 비꼬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사생활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동영상의 존재가 밝혀진 후에도 이어졌다. 최종범 측은 구하라가 먼저 동영상 촬영을 제안했다고 주장했고, 두 사람이 연애하던 당시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최종범 측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언론이 이들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었는지, 구하라가 촬영의 주체였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는 것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피해자를 검증하려는 행위에 가깝다.

폭로전에 불을 붙인 디스패치
이 사건의 시작에 디스패치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하라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이 있던 날 최종범은 집을 나서며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 주겠다’, ‘디스패치에 제보 하겠다’라는 말을 한 후 실제로 2통의 메일을 보냈다. 이후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며 긴 싸움이 시작됐고, 구하라가 디스패치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을 때마다 여론은 바뀌었다. 맨 처음 구하라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결정적으로 성관계 동영상의 존재를 밝힌 디스패치는 얼핏 정의의 사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도하고, 이를 전 국민이 가십으로 소비하게끔 만든 언론의 대명사가 바로 디스패치다. 최종범의 입에서 맨 처음 나온 이름이 왜 디스패치였는지, 연예인의 사생활이 왜 무기나 약점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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