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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간호사 붓기

2018.10.15
©연합뉴스 ©MBN ©Jtbc
나는 간호사다. 2011년에 입사해서 내과중환자실과 혈액투석실, 노동조합 전임을 거쳐 현재 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호학과 관장실습 사태는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그 정도도 못 참으면 간호사가 될 자격이 없다, 그게 싫으면 간호사 하지 마라, 사명감이 부족하다, 환자의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 자기들도 하기 싫은 걸 환자에게 왜 하냐….

임상에서 관장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단순히 오랫동안 대변을 못 본 환자의 배변을 유도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수술 후 감염 등의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장을 비우려고 할 때도 있고, 간성혼수 환자나 혈중 칼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환자에게 약물관장을 하기도 한다. 임상에서 관장을 하는 다양한 목적이나 그에 따른 방법 등을 숙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환자가 느낄 고통이나 수치심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그 실습을 해본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의료진이 자신이 경험해본 것들만 환자에게 실제로 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20~30대의 건강한 젊은이들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 환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치료를 받는 것은 그런 치료 과정으로 인한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장실습을 통해 학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항문에 고무관을 밀어 넣고 주사기로 약물을 넣는 행위가 엄청난 숙련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행위를 딱 한 번 경험해본다고 해서 마스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불필요한 실습으로 4년 내내 같이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 친구들 앞에서 신체의 민감한 부위를 노출하는 수치심을 경험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이런 실습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건 무슨… 한국… 후진국이에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간호 인력 수급 대책이랍시고 간호학과 정원을 거의 2배 가까이 늘렸다. 현재 한 해의 간호학과 입학 정원은 약 2만 명이다. 간호학과를 지원하는 다수가 여성인 것을 감안했을 때 한 해 출생하는 여자아이(약 17만 명)의 10% 이상을 간호대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학교 입장에서야 취업률이 높은 간호학과는 등록금 장사를 하기 좋으니 간호학과 신설 및 증원을 허가만 해주면 쌍수 들고 환영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원을 마구잡이로 늘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을 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있다. 실습할 병원이 없어 학교와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학생들끼리 모텔방을 얻어 숙식하며 실습을 하고, 대학병원이나 3차 종합병원이 아니라 실습 병원으로는 부족한 2차 병원에서 실습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나마도 실습을 못 하게 할까 봐 병원에서 학생들에게 교육과 무관하게 잔심부름이나 물건 나르기, 청소 등을 시켜도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붐비니 4~5층 높이의 건물임에도 학생들은 계단으로 다니라고 하는 병원도 있다고 한다. 실습에 나가서 병실 냉장고에 붙은 치킨집 스티커를 떼다 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관장실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간호사 면허를 가진 35만여 명 중에 절반은 장롱면허다. 그들은 왜 4년 동안 공부해서 어렵게 따낸 간호사 면허증을 장롱 속에 처박아두는 걸까? 앞서 말했듯 요즘 같은 청년실업난의 시기에도 간호학과의 취업률은 높은 편이다. 대형 병원들은 매년 300~400명의 신규 간호사를 채용한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간호사들이 빠른 속도로 사직하기 때문에 빈자리는 항상 넘쳐난다. 1년 미만 신규 간호사의 이직율은 34%에 달한다.

내가 일하는 서울대병원은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간호사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작년 10월 주요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리며 국정감사에까지 언급된 ‘서울대병원 간호사 첫 월급 36만 원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탈의실은 사용 인원에 비해 공간이 협소해 누가 지나갈 때마다 벽에 바짝 붙어 서야 한다. 그리고 한 뼘밖에 안 되는 옷장을 두 명, 세 명이서 같이 쓰고 있다. 제대로 된 휴식 공간도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식당에 갈 시간이 없어 병동 한구석에 마련된 좁은 방에서 포장마차에서나 흔히 보는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 다 식은 도시락을 먹는다. 그런 밥이라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고, 잦은 사직과 병가, 휴직 등으로 인해 근무 스케줄은 수시로 바뀐다. 나는 지난 8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며 임상을 떠나는 수많은 간호사를 지켜봐왔다. 그중에는 정말 일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아프면 저런 간호사한테 내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훌륭한 간호사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부족한 인력 상황, 생사의 경계에서 일한다는 업무 자체가 주는 중압감, 제대로 쉬는 날이라곤 없는 3교대 근무로 지쳐 나가떨어졌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보낸 4년보다도 더 짧은 시간을 간호사로 일하다가 결국 병원을 떠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가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부는 수년간 이런 현장의 문제점들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임시방편으로 메꿔왔다. 간호사 부족 문제뿐 아니라 각종 의료사고, 전공의나 PA 문제, 대리수술 등 의료계의 곪은 상처가 하나둘씩 툭툭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인구 수 대비 간호사 수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OECD 선진국 수준의 첨단 의료 기술은 모두 도입되어 있다. 병원이 요구하는 것은 선진국 수준의 의료에 맞춘 간호인데 인력은 후진국 수준이니, 그 갭을 메꿔야 하는 간호사들은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 진짜 어딘가 망가져서 병원을 떠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당장은 독에 물이 차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발밑은 진흙탕이 되어버린다. 지금 우리나라 병원의 현실이 그러하다. 깨진 독에다 많은 물을 쏟아부으면 결국 균열이 커져 언젠가 그 독은 깨지고 말 것이다. 아주 형편없이 못쓰게 될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병원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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