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 불고기와 야키니쿠

2018.10.10
난데없이 인터넷에서 불고기 논의가 뜨겁다. 발단은 트위터의 어느 국문학 전공자가 ‘불고기라는 단어는 야키니쿠의 번역어’라는 자막이 들어 있는 방송 캡처 화면을 보고 놀라서 올린 트윗에서 시작된다. 트윗의 내용은 ‘어딜 야키니쿠가 불고기의 원조라고 우기냐, 일본은 675년 육식금지령 이후에 1200여 년간 제대로 된 육식문화가 없었다’는 것으로, 부가적인 근거로 이규진 박사의 ‘근대 이후 100년간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화’라는 논문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일본 문헌에 1927년 당시 한국 국밥집의 불고기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일본의 야키니쿠는 1945년 이후에 재일교포들이 만든 ‘호르몬 야키(내장 구이)’를 유래로 하며, 야키니쿠와 평양식 불고기의 유사성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당시 평양식 불고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야키니쿠가 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문제의 발언은 2015년 10월에 방송된 수요미식회 37회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주장한 내용으로, 논란이 커지자 황교익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계속해서 생산해냈다. 그때마다 네티즌들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소동이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이번 문제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함정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아무래도 모두가 맞고 모두가 틀린 것 같다.

일단 단어 자체는 야키니쿠가 먼저 만들어진 것이 맞다. 1872년의 일본 문헌에 서양 요리 바비큐의 번역으로 쓰인 것이 보인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개항 전의 일본이라고 해서 고기를 구워 먹는 풍습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고, 야키니쿠(燒肉)라는 단어/표현이 요리의 이름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서양의 고기구이 요리도 야키니쿠, 한국의 고기구이 요리도 야키니쿠로 번역했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한편 현재의 일본 야키니쿠 식당은 ‘호르몬 야키(내장 구이)’를 팔던 한국인 식당을 그 기원으로 하는데, 이들 한국풍 고기구이 식당을 ‘야키니쿠’로 부르기 시작한 건 1965년 한일수교 이후부터라고 한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한일교류가 시작되면서 식당 주인들의 정치이념에 따라 자기네 식당의 명칭을 ‘조선요리점’으로 부를지 ‘한국요리점’으로 부를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는데, 그 중재안으로 양쪽 모두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고 의미도 통하는 야키니쿠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1967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社長千一夜’에는 ‘조선 야키니쿠’를 먹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67년이면 아마 식당명으로서 야키니쿠는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의 시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불고기라는 단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난 것일까? 일단 단어로서 불고기의 출신 성분은 확실치 않지만 요리로서 불고기의 출신 성분은 너비아니인 것이 확실하다. 여러 사전과 조리서에서 불고기는 너비아니와 비슷한 요리로 취급받다가 점차 다른 요리로 인정받으며 서서히 독립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둘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면, 소고기를 먹는 식습관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불고기는 192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요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고기라는 단어는 이북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식용으로 우수한 취급을 받던 평양우를 1933년부터 식용 전용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평양 불고기 또한 새로운 형식과 뛰어난 맛을 가진 요리로 여러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특성상 불고기와 야키니쿠가 같은 뜻으로 혼용되고 있으며, 매일신보 1941년 7월 30일 자의 “평양명물 불고기 가격의 인상을 진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평양명물인 야끼니꾸(燒肉) 가격을 올려달라는 진정이 있어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라는 대목을 볼 수 있다. 다만 불고기라는 새로운 요리에 어째서 불고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야키니쿠라는 단어가 그 탄생에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다. 하지만 황교익의 주장대로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역이라 하기에는, 애초에 요리 이름조차 아닌 번역어인 야키니쿠에게 너무 커다란 감투를 씌워주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셀카나 츄리닝이 ‘Selfie’와 ‘training'의 번역어가 아닌 것처럼. 참고로 평양 불고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기에 양념을 하는 스타일도 있지만 하지 않고 그냥 구워 먹는 스타일도 있었고, 생고기에 설탕을 찍어서 굽기도 하며, 구운 고기에 또 다른 양념을 찍어서 먹는 등 너비아니와는 확연히 다른 요리가 되었기에 이를 부르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이번 불고기 어원 논란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벌어진 해프닝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다만 황교익은 20년이 넘게 다리를 만지다 보니, 이번만큼은 코끼리의 모양새에 대해 참고할 만한 제언을 도출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지적에 대해 ‘중졸 정도 지적 수준’ 운운하는 발언이나 보여주는 ‘전문가’라면, 그의 제언이 참고 이상의 쓸모를 가지게 되는 날이 과연 언제쯤 오게 될지 모르겠다.

반대로 사람들은 쓸모없음 이하의, 황교익의 발언을 여럿 목격한 바 있다. 간단히 굵직굵직한 것만 살펴보자면, ‘혼밥은 자폐’, ‘백종원은 애정 결핍으로 자란 맞벌이 세대에게 인기’,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 ‘미각 교육은 엄마를 통해 6살까지 이루어져야만 가능’, ‘분유를 먹고 자란 젊은이들은 단맛 중독’, ‘단 음식은 공허하고 자살률 1위와 연관’, ‘떡볶이를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세뇌의 결과’ 등이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에 대한 합리적 반박이 여러 차례 SNS와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 황교익은 이런 발언들에 대해 계속해서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황교익은 이번 불고기 논란에서만은 약간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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