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협상’ ‘명당’은 왜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나

2018.10.01
이 원고를 마감하고 있는 추석 연휴가 되기 전, 영화계 종사자들은 모였다 하면 ‘안시성’, ‘협상’, ‘명당’, ‘물괴’ 중 과연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스오피스 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총제작비 220억인 ‘안시성’의 손익분기점은 약 560~600만 명, 100억 대가 투입된 ‘협상’, ‘명당’, ‘물괴’는 약 300만 명으로 알려졌지만 극장 총 좌석 수는 한정되어 있다. 중장년층 이상이 더욱 선호하는 한국영화, 특히 ‘안시성’과 ‘명당’, ‘물괴’는 사극이라는 점에서 타깃층도 겹친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도 본전을 채우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추석 시즌 ‘남한산성’과 ‘범죄도시’가 동시에 개봉해 무려 7일의 황금연휴 특수를 누렸음에도 ‘남한산성’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실패했던 극장가에서, 올해는 네 편이 개봉해 주말을 포함한 연휴 5일에 승부를 거는 도박을 했다. 순제작비 100억 원 이상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2016년 40.9%, 2017년 39.3%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은 물론 그해 전체 살림을 짊어져야 할 작품들이 모두 추석 연휴에 뛰어들었다. 애초에 숫자만 따져봐도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는 싸움이었다.

명절 연휴에는 하루 약 100만~150만 명이 영화를 본다. 이 수치에서 기대할 수 있는 휴일 총 관객 수(500만~750만)는 ‘안시성’, ‘협상’, ‘명당’, ‘물괴’의 손익분기점 총합 추정치(1500만)보다 훨씬 낮다. 다른 세 영화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했던 ‘물괴’가 관객 수 약 70만 명으로 일찌감치 흥행 실패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황은 어렵다. 설 연휴 50% 가까운 좌석 점유율과 40~50%대의 좌석 판매율을 기록한 ‘블랙 팬서’는 연휴 5일간 246만 관객을 모았고, 지난해 추석 전체 좌석의 30% 이상을 점유한 ‘남한산성’이 40~50%대의 판매율을 올리며 연휴 7일간 322만 관객을 모았다. ‘안시성’처럼 손익분기점이 높은 작품은 1위 독주로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안시성’은 전체 좌석 300만 석 중 40%에 가까운 좌석을 점유하며 연휴 5일간 약 300만 관객을 모았음에도, 손익분기점 돌파 여부는 이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장담할 수 있다. 또한 한 작품이 독주하면 지난 설 연휴 ‘골든슬럼버’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영화는 손익분기점 달성이 어려워진다. 추석 연휴에 모은 관객(218만 명)보다 비수기 극장가에서 모은 관객이 더 많았던 ‘범죄도시’(최종 관객 수 687만) 같은 경우가 있지만, 바꾸어 말하면 ‘범죄도시’ 정도의 입소문이 나야 연휴가 끝난 10월 비수기 극장가에서 폭발적인 추가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10월 3일에는 김윤석·주지훈 주연의 ‘암수살인’, 마블 코믹스 원작의 ‘베놈’, 디즈니의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개봉이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 없는 전문가들이 왜 추석에 모두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개봉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고예산 영화에 관객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제작비 100억대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졌다는 데 있다. 한국 상업영화 투자 수익성은 2008년 –43.5%로 저점을 찍은 이후 점차 상승, 2012년 이후 계속 흑자를 기록했고, 2016년 한국 상업영화 평균 수익률은 무려 17.6%에 다다랐다. 하지만 이는 고예산-광역개봉 영화에 집중된 수익이었다. 2016년 순제작비 80억 원 이상 규모의 한국영화는 10편 중 8편이 손익분기점을 넘고 평균 수익률은 53.9%를 기록했지만, 50억 원 미만 규모는 전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10억 원~30억 원 제작비 영화 19편 중 단 2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평균 수익률은 –41.2%다. 그 결과 2017년에는 순제작비 100억 이상 작품 편수는 5편에서 8편으로 증가했고, 이 작품들의 평균 순제작비는 126억에서 147억 원으로 상승했다. 고예산이 들어간 만큼 극장 성수기 개봉을 노린다면, 선택할 수 있는 자리는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이 포진한 여름·겨울 극장가 혹은 명절 연휴로 줄어든다. 무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기형적인 시장에서는 대형 프로젝트가 미끄러지면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 추석 연휴 직전 특히 ‘안시성’이 흥행에 실패하면 업계 전체에 쇼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실제로 2017년 상업영화 평균 수익률이 4.7%로 폭락한 것은 그해 고예산 상업영화의 흥행 부진으로 인한 결과였다. 총제작비 100억 이상 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68.7%에서 32.4%로, 80억~100억 규모 영화는 –2.8%에서 –28.7%로 수익률이 감소했다. 이번 추석 연휴가 지난 후 ‘협상’과 ‘명당’의 관객 수가 각각 131만 명, 167만 명에 그치며 손익분기점 돌파가 어려워진 것은 고예산 영화 포화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안 좋은 징후다. 여름 시즌 역시 ‘인랑’이 최종 관객 수 89만 명(손익분기점 약 600만 명)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스크린 수가 급감하는 이변이 없었다면 이후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목격자’ 등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순제작비 30억~50억 규모의 영화들(‘범죄도시’, ‘‘청년경찰’, ‘아이 캔 스피크’ 등)이 평균 수익률을 흑자로 전환하며 전체 평균 수익률 감소를 완화한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올해 역시 ‘리틀 포레스트’, ‘곤지암’, ‘목격자’, ‘너의 결혼식’ 등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고예산 영화들이 티켓파워가 인정된 중견 배우를 캐스팅해 폭넓은 타깃층을 겨냥한 대중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종종 “배우며 소재며 지겹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떠올리면, 균형 잡힌 산업 구조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내년 명절에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윈-윈 하는 그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산업정책연구팀 ‘2016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17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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