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기자님, 당신은 비만혐오자입니까?

2018.09.17
내가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했던 최초의 언론 인터뷰를 기억한다. O라는 유명 매체의 학생기자들이 며칠에 걸쳐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해 갔고, 포털 메인에 기사가 실렸다. 타이틀은 이랬다. “뚱뚱한 여자 대표하는 모델 될래요.”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런웨이에서 데뷔한 플러스사이즈 모델,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한 한국에 안주하지 않고 용감하게 세계 무대에 도전한 여성, 사이즈와 상관없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외모다양성 운동가와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바라진 않았다. 그런데 뚱뚱한 여자라니. 나는 스스로를 ‘뚱뚱하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뚱뚱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매체의 편집장(속칭 데스크)이 타이틀로 내건 뚱뚱한 여자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나는 ‘아름답지 않은’, ‘전형적인 미의 기준을 벗어난’, ‘날씬하지 않은’, ‘모델이 될 수 없는’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히 나와 뚱뚱한 여성 모두를 모욕하는 비만혐오였다. 심지어 나는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한 적조차 없었다.

내가 항의하자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 중 한 명은, 자신이 제출한 타이틀은 그것과 달랐으나 데스크에서 트래픽이 더 잘 나오는 쪽으로 임의로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제목 변경을 요구했지만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취재를 왔던 기자 중 한 명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기사가 노출되어 유명해지면 좋은 거 아니냐, 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방금 한 말을 데스크에 그대로 전하고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이야기하고서야 마지못한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기사 타이틀은 4일 후 변경되었다.

슬프게도 이런 일은 나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글로벌 패션지 코스모폴리탄 영국판 표지를 장식한 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외모다양성 운동가이며 위대한 여성인 테스 홀리데이를 언급한 기사에 조선일보가 내건 타이틀은 “패션잡지 표지 장식한 ‘뚱뚱한’ 모델… ‘비만 미화’ 논란”이었다. 기사에서는 테스 홀리데이가 표지 모델이 된 것에 대한 대중의 상반된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뚱뚱한’, ‘비만 미화’, ‘논란’과 같은 단어를 타이틀에 사용해 그가 유명 패션지 표지 모델로 기용된 것이 부정적이라는 뉘앙스를 다분히 풍기고 있다. 물론, 이런 자극적인 타이틀은 트래픽 몰이에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기사 중간중간, 그리고 좌우 하단의 광고들 속에는 다이어트와 미용 관련 광고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의 해시태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플러스사이즈 모델’, ‘#보디 포지티브 확산’, ‘#폭식증 치료법’과 함께 ‘#다이어트 트렌드’가 들어 있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이런 해외발 기사의 타이틀은 발행 시기가 늦어질수록 더욱 자극적으로 발전되어 포털사이트에 업로드된다. 지난 2016년 페이스북이, 테스 홀리데이가 ‘페미니즘과 지방(fat)’이라는 행사 모델로 발탁되어 수영복을 입고 찍은 광고 사진을 “신체 혹은 신체 부위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묘사한다”, 구체적으로는 “살이 삐져 나오는 상의”, “지나치게 꽉 끼는 옷”, “지방 부위를 꼬집는 모습”, “섭식장애 등 사람의 의학적 상태를 부정적으로 묘사” 등의 이유를 들어 게시를 불허했다가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고 사과와 함께 불허 철회를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타이틀은 2016년 5월 24일 연합뉴스의 “페이스북 ‘플러스 사이즈’ 여성 모델 광고 불허했다가 사과”로 시작해 2016년 5월 27일 서울경제의 “뚱뚱한 여자는 ‘비키니 사진’ 올리면 안된다고?”로 끝난다. ‘뚱뚱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매체는 6개, ‘플러스사이즈’라는 단어를 사용한 매체는 7개, ‘뚱녀’라는 단어를 사용한 곳은 두 군데였다. 이 중에서 가장 끔찍한 타이틀을 하나만 고르라면 서울신문의 “뚱녀 비키니 광고 막은 페북”을 고르겠다.

뚱뚱하다는 말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상태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뚱뚱하다는 말이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들은 냉전시대 간첩 표어마냥 쥐도 새도 모르게 무의식에 녹아들어 사람들을 비만혐오자로 만든다. (비만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기초적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겠다.) 게으르다, 자기관리에 실패했다, 직업을 갖기 어렵다, 건강하지 않다, 사회성이 없다, 많이 먹는다, 게걸스럽다, 지저분하다, 옷을 못 입는다(정확히는 맞는 옷이 없다지만),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굼뜨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 못생겼다, 성적 매력이 없다, 여성으로서 가치가 없다 등등. 허락된 지면 전부를 뚱뚱하다와 뚱뚱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사회 속 부정적 인식으로만 채우라면 한 화로는 부족해 시리즈 연재를 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함의들은, 비만이면 조롱해도, 따돌려도, 괴롭혀도, 폭행해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을 합의하게 만든다.

이런 부정적인 단어에 노출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실제로 만난 피해자 중 한 명은 급식시간에 뚱뚱한 자신을 친구들이 놀리고 괴롭히던 기억 때문에 공개된 장소에서는 식사를 못하게 되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길에서 낮선 남자가 “돼지 같은 년아, 뭘 봐?” 하며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때리는 시늉을 하며 위협해 온 경험 때문에 길을 걸을 때 바닥만 쳐다보고 걷는 습관이 생겼다. 갓 대학생이던 한 피해자는, 너는 좋지만 네가 뚱뚱한 건 싫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다이어트 중독과 거식증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지금 언급한 케이스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할 끔찍한 케이스는 적지 않은 것이 이 정도다.

이 글을 기자님들 보시라고 썼다. 편집장님들도 보셨으면 한다. 트래픽 좀 높여 돈 좀 벌어보겠다고 달았던 제목이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아셨으면 한다. 아, 혹시 이미 알고 계신건가? 그렇다면 이제 그런 제목을 다는 매체와 기자를 비만혐오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으시겠지. 조금 자극적인 타이틀을 다는 것이 뭐 대수냐고? 날씬하면 보기 좋고 건강에도 좋은 거 아니냐고? 그게 비만혐오를 조장한다는 건 억측이라고?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제목을 다듬었을 뿐이라고? 기자는 편집장을 핑계 삼고, 편집장은 회사를 핑계 삼고, 회사는 사회를 핑계 삼으며,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그렇게 혐오는 소리 없이 전염되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그리고 피해자가, 혹은 스스로를 가해하는 자기혐오자가 된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뚱뚱하다는 단어에 얽힌 부정적인 함의들을 걷어내야 한다. 신체를 대상화하지 않는 긍정의 언어들을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미용체중과 저체중에 대한 신봉을 끝내고 기능하는 신체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을 미디어에 등장시키고, 스스로의 몸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과 글에 힘이 있고,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오랜 명언이 실재하다면, 그리고 마침 당신이 기자라면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모두를 구할 제목을 쓸지, 혐오 세력의 일부가 될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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