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사라질 때 벌어지는 일들

2018.09.14
지난 8월 ‘쎄씨’와 ‘헤렌’이 휴간했다. 그리고 같은 달 16일 이 두 잡지의 발행사인 JTBC PLUS 사옥 곳곳에는 ‘휴간의 탈을 쓴 폐간’을 ‘회사의 일방적 결정’이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여기에 명시된 것처럼 JTBC PLUS가 발행하는 8개 잡지 중 올해만 4개 잡지가 휴간에 들어갔다. ‘쎄씨’를 비롯해  ‘헤렌’과 ’인스타일’, 48년의 역사를 지닌 ‘여성중앙’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종이잡지의 종말은 꾸준히 예견되어 왔고, 회사 입장에서 뚜렷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매체를 없애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잡지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그 구성원들이 겪는 일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JTBC PLUS 관계자에 따르면 폐간된 잡지의 구성원 대부분은 마감이 임박한 상황에서 휴간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매체 소속이었던 A 기자는 “편집장부터 막내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처음 휴간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장도 이 사실을 몰랐고, 미리 알았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거다. 무엇 때문에 휴간이 결정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아있는 잡지의 상황 역시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최근 ‘코스모폴리탄’에서는 출산휴가에 들어간 편집장이 갑자기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김은지 편집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출산 휴가를 시작한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다른 인력을 내 자리에 발령한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올해 초부터 대행에 대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고 인수인계를 완료한 상황이었다”라고 밝혔다. 회사의 방식은 대자보의 주장처럼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일방적으로 느껴질 만한 것이었다. 휴간에 대해 JTBC PLUS 측은 “수십 억 적자로 휴간을 결정한 것이며, 시장 경기가 좋아지고 경영 상황이 바뀌면 다시 복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미디어 오늘’). 문제는 경기와 상관없이 이러한 일들이 ‘잡지판’에서 언제나 벌어져왔다는 사실이다.

무려 십 몇 년 전,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큼 유명해진 B 기자가 겪었던 일이다. 밤샘 마감을 마치고 집에서 골아 떨어져있던 그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깨어났다. 오늘 새벽까지 마감했던 잡지가 다음 달부터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잠시 황당해하다가,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잤다고 한다.일단 책은 만들게 하고, 빼도 박도 못할 점에 통보’하는 방식은 거의 전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랜 악습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까닭은 잡지가 만들어지는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월간지의 경우 기자들은 한 달 이상 빠르게 다음호를 준비한다. 늦어도 6월 말이면 8월호의 기획회의가 끝나고 그때부터 섭외와 취재, 촬영 등에 들어가 7월 중순에는 마감을 끝내야 한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평균 200-300페이지 가까이 되는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정신없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휴간이나 폐간 통보를 받는다 해도, 이미 진행 중인 기사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잡지를 만드는 것은 회사와의 계약을 떠나 취재원이나 독자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 독자적으로 마감을 보이콧할 경우, 그 몫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돌아간다.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잡지를 만드는 것을 선택했던 사람들을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다. 반면, 회사는 무엇을 책임졌는가.

A 기자는 “이번 일로 노무사에게 상의를 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회사 측에서는 부서이동을 신청 받거나 위로금을 제안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휴간과 관련된 인사 조치는 빠르게 마무리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인 JTBC PLUS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잡지시장에서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C사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발행하던 잡지의 반절을 휴간 조치했다. 이곳 소속의 기자 D는 “1년 전쯤부터 폐간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고, 모든 기자들이 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동안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충원 없이 잡지를 만들어왔고, 결국 이번에 계약종료가 되면서 휴간이 됐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계약종료를 명분으로 회사는 자연스럽게 ‘안 팔리는’ 잡지를 정리할 수 있었다.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남아있는 잡지로 이동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회사 내에서 ‘폐간 1순위’로 꼽히는 잡지다. 같은 회사 소속의 E는 “참수형 차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매출이 적으니 사람은 못 뽑고, 일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졌다. 혹사당하고 그 다음에는 없어지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잡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세한 회사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7년 전 폐간된 F 잡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기자 G는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잡지를 만들었다.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 발행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잡지를 폐지로 팔아 그 돈을 나눠가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과거에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잡지의 현실이다. 다만, 이제는 하루아침에 구성원들을 내팽개치는 상황이 대기업에서까지 벌어지고 있다.

10년 전에도 사람들은 잡지가 곧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많은 잡지들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졌다. 2012년 발행된 ‘매거진 컬처: 오늘, 한국 잡지의 최전선’은 잡지와 이를 만드는 사람들을 다루며 잡지의 존재 의의와 전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이는 ‘동시대성’을 꼽았고, 어떤 이는 ‘TV의 등장으로 라디오가 죽느냐에 대한 논의와 비슷하다. 결국 라디오는 라디오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남았다’고 낙관했다. 누군가는 “전문지는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전문적인 정보를 갖고 그것을 권위 있게 지켜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논의들조차 사라진 지금은, 대자보를 통해 던진 질문만이 남았다. “‘콘텐츠 하우스’라는 이곳에서 우리는 콘텐츠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다. 폐간의 과정에서 동료로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지, 우리는 끝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잡지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해 존재했으므로.



목록

SPECIAL

image 마동석 영화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