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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박카스남’과 언어의 정치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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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변하고 있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백래시는 필수적이고 필연적이다. 세상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백래시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세상에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일례가 ‘일베 박카스남’ 사건이다.

‘일베 박카스남’ 사건은 일베 회원이 노년의 ‘박카스 할머니’를 성구매 하고, 얼굴을 불법촬영 하여 일간베스트 사이트에 올린 일을 말한다. 그 일베 회원은 서초구청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고, 여성으로서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든 한국에서 남성으로 자라면 결국 이런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건 자체는 한 개인의 삶을 농락하고 무시하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내가 이 사건을 ‘변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라 칭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언론의 워딩 사용이다. 여지껏 가해,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언론에 노출되는 여성들은 대부분 ‘~녀’로 칭해졌다. ‘지하철 똥개녀’부터 시작해 ‘된장녀’ ‘골뱅이녀’ 등 여성이 노출되고, 남성들은 뒤에 숨어 있었다. 남성의 가해에 의한 피해 여성 또한 ‘~녀’로 지칭되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쪽은 피해자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베 박카스남’ 사건에서는 남성이 언론에 노출되고, 피해자가 주목을 덜 받는 방식의 워딩이 쓰였다. 이 경우 사람들은 피해자의 피해 이후 상황, 즉 피해자가 얼마나 피해자스럽게 지내는가보다 가해자의 신상과 처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듯 언론이 사용하는 ‘워딩’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언론이 누구의 편인지, 누구를 옹호하는지, 어떤 여론을 원하는지 등을 함의한다. 언어에는 힘이 있어서 어떤 단어가 처음 사용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마저 바뀌기 마련이다. 사실 ‘일베 박카스남’ 사건도 ‘박카스녀’로 시작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항의가 있었다. 또한 주요 언론인 JTBC에서 ‘일베 박카스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타 언론들도 그를 따라 쓰기 시작했다.

‘아재’라는 말은 40대 남성이 가진 문제를 조롱하는 목적으로 유행한 ‘여성’의 언어였지만, 온 세상이 노력하여 그 단어를 ‘남성’들의 언어로 만들었다. ‘철없고 귀여운 아저씨’의 뜻으로 변질된 것이다. 아재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 채 6개월이 되지 않아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아재 체육대회’를 진행했고, ‘롯데리아’에서는 ‘아재버거’라는 고급화된 프리미엄 햄버거를 출시했다. 권력자들은 안다. 언어가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 것인지. 그렇기에 소수자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언어를 쉽게 주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언어에는 힘이 있어서,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사고를 언어화한다. 그럴수록 ‘나’를 설명할 때 언어가 필요하고, 여성주의적 설명에 언어가 부족함을 느낀다. 여성은, 소수자들은 항상 빼앗겨왔다. ‘커밍아웃’ 또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힘’이라는 뜻이었지만, 현재는 ‘중요한 일을 밝힘’으로 뜻이 변질되었다. 퀴어들의 단어를 빼앗긴 것이다.

소수자의 역사는 피지배이자 피약탈자의 역사다. 창조해내면 빼앗기는 과거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번 ‘일베 박카스남’ 사건의 언론 보도 방식은 우리의 언어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승리에 대한 희망의 역사를 쌓은 일이다. 남성 가해에 의한 여성 피해는 다시는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언론이 어떤 워딩으로 ‘여성’을 표현하고 피해자를 ‘피해자화’하는지, ‘주체화’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피고 항의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 개인의 피해로 쌓이는 쟁취의 역사는 잔혹하다. 우리는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잃지 않고 우리의 언어를 적립하고 싶다. 그렇기에 더욱, 이미 생겨버린 피해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 승리가 어떤 방식이냐는 피해자의 결정이지만, 그 시작은 언론의 보도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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