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요리를 한다

2018.09.03
©Shutterstock
처음엔 인스타그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걸 정방형으로 자르고 컨트라스트를 좀 올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아요’가 따라왔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자연광이 잘 드는 방향으로 식탁을 놓기도 했다. ‘아기자기’라는 표현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고, 그렇게 요리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이 요리를 지속하게 하는 확실한 ‘잔재미’임에는 분명했다. 그 재미 덕에 부엌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사진과 요리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허브류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요리책을 보면서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처분할 레시피를 궁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예쁘라고 통으로 올린 타임은 실은 줄기를 제외한 잎만 써야 식감에 방해가 없고, 사진에 잘 보이도록 후추 그라인더의 입자를 굵게 설정했던 것이 맛을 망치는 요인이라는 걸 말이다.

그때부터 자문자답의 단계가 시작됐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개적인 활동이 오히려 내 요리를 자가 검열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내가 찍어 올린 이 파스타의 흥건한 소스는 촉촉해 보여 좋은 게 아니라 불 조절이 잘못돼 ‘유화’에 실패한 걸 드러내는 쪽일 텐데… 다시 해보자, 이 맥주잔 벽에 붙은 기포는 탄산감이 좋은 맥주라 그런 게 아니라 세척을 잘못해서 생긴 기포 방울인데… 이건 아니지, 하는 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더 배워야 더 제대로 검열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르꼬르동블루의 요리 과정에 등록했고 2년의 토요일을 투자해 지난 3월에 겨우겨우 졸업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내가 만든 요리를 자주 올리지 않지만, 여전히 요리하는 즐거움은 유효하다. 그저 내 손으로 뭘 해내서 즐겁다기보단 수련의 과정처럼 잘못된 것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지점이 재미있다. 그래서 같은 요리도 여러 번 만들어보는 편인데, 미역국처럼 쉬운 요리도 미역 볶는 시간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지니 여러 번 해보면 각 과정의 오류와 정답을 나만의 공식으로 찾아나갈 수 있다. 한 번에 척척 해낼 정도로 요리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요리란 게 원래 온갖 변수에 대응하는 감각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 그래서 책애서 본 레시피나, 수업시간에 배운 레시피도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내 방식에 맞게 주파수를 조금씩 맞추며 실패를 보완해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내가 느끼고 향유하는 요리의 즐거움 중엔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즐거움’이 그다지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 누군가가 나의 요리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하나의 요리가 회를 거듭해가며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하지 않은 이상, 요리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친구나 애인이 식사 자리에 함께할 때 그 식탁 위의 요리와 분위기가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끝내주는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좋은 맛집을 찾아갔을 때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내 요리를 맛보고 미소 짓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번엔 성공이네’라고 스스로에게 외칠 때 행복은 내 앞에 더 크게 와 있다.

최근 잡지 기획 일을 할 때나 개인 생활에서나 ‘혼자 쿠킹’을 아이디어의 최상단에 둘 만큼 강하게 꽂혀 있는데, 결국 그 맥락도 위와 같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켜고, 와인이건 위스키이건 술을 한 잔 따라 두고 마시면서, 꽤 손이 많이 가는 번잡한 레시피를 하나 고른 뒤 스스로를 위해 요리하는 그 시간은 꽤 큰 힐링이 된다. 취기를 끌어올려 흐느적거리는 춤까지 추면서 요리하고 있자면,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폼을 잡아볼 수도 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전 라면만 끓일 줄 알아요”라고 말할 때, 복장 터지는 리액션을 꾸욱 참고 ‘혼자 쿠킹’의 즐거움에 대해서 설파하기도 한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치킨을 기다릴 시간에 그 맥주를 손에 쥐고 뭐라도 볶아본다면 부엌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목록

SPECIAL

image 걸크러시 콘셉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