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트를 고르자

2018.08.30
©Burberry
기나긴 폭염과 열대야가 사람들을 괴롭혔고 또 태풍도 지나갔지만 계절은 차곡차곡 지나가고 있다. 의류 매장에는 이미 가을, 겨울 옷이 걸려있고 사람들은 또 다가올 계절을 생각하며 옷을 산다. 특히 봄과 가을은 패션에 있어 매우 훌륭한 계절이고, 이 계절에 대표적인 옷을 생각해 보자면 역시 트렌치 코트다.

트렌치 코트의 특징을 알려면 우선 개버딘이라는 소재의 발명이 있었다. 포목상이었던 토마스 버버리가 19세기 말 독자적인 방식으로 방수 처리를 한 실로 섬유를 짜고 그 위에 다시 방수 처리를 한 개버딘이라는 소재를 개발했다. 튼튼하고 착용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보온성과 통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 원단으로 트렌치 코트를 개발했다. 더블 브레스트에 어깨 견장이 있고 흙먼지 방지를 위한 손목 스트랩, 바람을 막기 위한 친 스트랩, 수류탄이나 나이프를 달아 놓던 D링, 허리 벨트 등 군사용 목적이 담겨 있는 디테일이 들어있다. 여기에 탈착이 가능한 보온 안감이 붙어 있다.

이 원형의 모습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고 이걸 기반으로 조금씩 변형을 한다. 즉 트렌치 코트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이지만 실용적이라는 점이다. 또 군대의 용도로 남성용으로 처음 등장했지만 모습과 디테일을 그대로 살려 여성용으로 전이되면서 본격적으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유니섹스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트렌치 코트가 전통에 기대 오랜 세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던 건 아니다. 원단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가벼워지고, 표면도 매끄럽고, 광택도 좋아졌다. 하지만 성능을 아무리 개선했다고 해도 이제와서 기능성 때문에 개버딘으로 만든 트렌치 코트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는 더 좋은 게 훨씬 많다. 한국의 날씨도 문제다. 건조한 여름과 습한 겨울의 유럽에서는 이 옷의 통기성과 방풍 능력은 여전히 요긴할 수 있지만 한국의 여름은 지나치게 무덥고 습하고 겨울에는 한파가 불어닥친다. 환절기의 일교차도 이런 원시적 기능성을 가진 섬유가 감당할 레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개버딘을 사용한 오리지널 모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코튼을 비롯해 울, 리넨, 폴리에스테르, 데님이나 혼방, 가죽이나 고어텍스 까지 다양한 제품이 나와있다. 안감도 울 대신 관리가 훨씬 편리한 얇은 패딩이나 플리스를 사용한 제품들이 많다. 컬러도 다양하다. 투명한 소재로 만든 것도 있고 레이스를 붙이기도 한다. 날씨와 용도를 생각해 고르면 된다.

올해 들어 이 전통의 아이템이 주요 패션 위크의 여러 컬렉션에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트리트 웨어가 하이 패션을 끌고 나가기 시작하면서 트렌치 코트도 그로부터 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보다 어울리는 무늬나 실루엣을 갖추던지 아니면 아예 외형부터 스트리트 패션의 분위기로 변화를 준다.

예컨대 버버리에서는 레인코트 유행과 투명 비닐 유행에 맞춰 반투명한 재질로 만든 트렌치 코트를 내놨다. 구찌에서는 고양이 패치나 등에 커다란 호랑이 자수가 새겨진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버사이즈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길이의 제품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작년 겨울 롱패딩 유행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전통적인 베이지나 그레이 컬러에 오버사이즈 핏 코트는 클래식한 룩을 보존하면서도 젠더리스한 스트리트 웨어의 분위기를 동시에 잘 살려준다.

이번 시즌 새로 나온 제품들 중 무엇보다 많이 보이는 건 체크 무늬다. 올해 봄부터 체크 패턴의 트렌치 코트들이 꽤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번 시즌에도 클래식한 느낌부터 핑크나 퍼플 등을 이용한 다채로운 컬러 패턴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단색 컬러의 단조로움을 탈피할 수도 있고 레트로한 무늬들이 더 신선하고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전통적인 아이템의 핏이나 무늬, 컬러는 계속 반복, 순환되기 마련인데, 최근 트렌드는 80, 90년대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과거가 재현되면 새로 구매자로 진입한 어린 세대들은 신선함을 느끼고, 또 이전 세대들은 과거의 향수와 함께 익숙함 덕분에 최신의 유행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패션의 흐름 속에서도 트렌치 코트는 전통과 현대적 스타일이라는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도 여전히 유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사람들의 익숙하지만 동시에 컬러와 실루엣의 작은 변형만 가지고도 스트리트 웨어부터 포멀 웨어까지 어디에도 매칭이 가능할 만큼 이미지가 달라진다. 그만큼 매력적인 옷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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