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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21세기의 ‘빨간 머리 앤’

2018.08.20
지난 몇 주간은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의 시청자라면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빨간 머리 앤’이 8월 초, 2주 후까지 시청 집계를 마감한 뒤 시즌 3를 제작할지 말지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WakeUpAndWatchAnnE #RenewAnneWithAnE라는 해시태그가 만들어졌고, 팬들이 시청을 장려하기까지 이르렀다. 시즌 1이 팬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은 작품인데, 이렇게 팬들이 안절부절하고, ‘빨간 머리 앤’의 프로듀서가 곧 넷플릭스와 미팅을 하러 간다며 팬들에게 알리는 등 일종의 ‘독려성’ 메시지까지 남겼다.

원작 소설 및 일본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이 전원 풍경의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시즌 1부터 앤(에이미베스 맥널티)이 겪은 고아원에서의 트라우마로 종일 무겁게 진행된다. 여기에 시즌 2에서는, 원작의 에피소드는 가져왔으나 그 에피소드가 나타내는 의미를 2018년에 맞춰 새롭게 재정의한다. 시즌 2에서 새로이 등장한 스테이시(조안나 더글라스) 선생님은 원작에서는 목사의 부인으로 “올바른 기독교관을 가진 남편과 좋은 가정 주부가 될 만한 아내”이자 기껏해야 “소매가 예쁘게 부푼 파란색 모슬린 드레스를 입고 장미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쓰는 정도로 자신을 꾸밀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판에서는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살고 있으며, 바지를 입고, 전동 자전거(오토바이)를 타고, 코르셋은 불편하다며 입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호감을 느낄 만한 사람이었으나 넷플릭스 판에서는 쫓겨날 위기를 학생들의 도움으로 겨우 모면한다.

한편 원작에서는 조시(미란다 맥키언)의 도발로 앤이 다리를 다치지만, 넷플릭스 판에서는 예술가를 꿈꾸는 콜(코리 그루터 앤드류)이라는 캐릭터가 새로 등장해 손을 다친다. 그는 성소수자로 학교에서 차별을 당하고, 돈 많고 까탈스러운 조세핀(데보라 그로버)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일명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묘사된다. 또한 그저 현재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나오던 길버트(루커스 제이드 주먼)는 넷플릭스 판에서 아버지가 죽은 후 유색 인종인 서배스천(달마 아부지드)과 함께 그린 게이블에서 같이 가족이 되기로 결정한다. 성소수자, 아동, 인종, 여성 등 소수자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며 이들이 각자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가족이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시즌 2의 핵심이다.

팬들은 환호했고, 평도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치로 확인된 것은 없으나 말 많고 사고 뭉치인 앤의 캐릭터가 시즌 2에서는 더욱더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상상하는 것과도 달랐고, 애니메이션처럼 차분하게 말하는 톤도 아니었다. 앤은 정말 속사포처럼 넘쳐흐르는 감정을 표현했고, 심지어 너무나 잘했다. 여기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SNS에 많았고, 중도 포기자들도 늘어났다. 앤의 성격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감을 느낀 팬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시즌을 진행할지 말지 결정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완료’율이다.

완료란 넷플릭스 구독자가 한 시즌을 처음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지를 의미한다. 아무리 팬이 있는 쇼라고 할지라도 (몇백 통이 넘는 팬레터가 와도 상관없이)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한 프로그램이 어떤 ‘취향 집단’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만의 방법으로 판단한다. 개인화된 플랫폼의 성격상 적은 예산으로 특정 취향 집단에게 강력하게 반응했다면 그것은 성공한 프로그램이 된다. 예를 들어 작가 노먼 레어의 전설적인 쇼를 리메이크한 ‘원데이 앳 어 타임’은 최근 세 번째 시즌 제작에 들어갔고, 90년대 스타일의 청소년물 ‘판타스틱 하이스쿨’은 방영을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속편 제작이 취소됐다. 두 프로그램 모두 적당한 예산과 적당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판타스틱 하이스쿨’에 대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담당 부사장 신디 홀랜드는 “핵심 타깃을 만들지 못했을뿐더러, 그들 가운데에서도 정주행을 마친 비율이 평균치에 훨씬 미달했다”(‘Vulture’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매거진)고 말했다. 프로그램 제작이 중지된 이유다. 넷플릭스 CCO(최고 콘텐츠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쇼 중 80%가 1~2개 시즌 이후에 후속 제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8월 15일 시즌 3가 방영한다는 발표가 났다. 내년에도 원작과는 달라진 앤을 볼 수 있게 됐다. 다만 말 많은 앤이 시즌 3에서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원작에서는 앤이 퀸즈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트레이시 선생님에게 “짧은 말이 더 강렬한 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이후 앤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어 마릴라가 아쉬워하기까지 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난다. 덧붙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팬들에게 한 가지 팁을 말하자면, 친구들에게 시간 날 때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를 클릭해달라고 하기보다는 꼭 정주행을 빠른 시간 내에 해달라고 부탁하자. 넷플릭스는 시청률만 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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