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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여신’이라는 말

2018.08.13
얼마 전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두 개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인터뷰집이다. 글쓴이는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 출신의, 지금은 산디라는 일인출판사를 열고 출판인의 길을 걷고 있는 친애하는 작가다. ‘두 개의 목소리’는 그의 출판사에서 나온 두 번째 책이다. 음악가 9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축, 음악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읽으며 기쁜 한편 부끄러웠다.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만났음에 기뻤고, 진작 들려졌어야 할 이런 목소리들을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필드를 잠시 떠난 이의 정성으로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책을 둘러싼 잡음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왔다. 솔직히 말해, 이 책과 책이 다루고 있는 테마를 두고 ‘그나마 제2의 ‘홍대여신들’이 탄생되지 않는 비극’이라는 문장이 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불어 죽지도 않고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홍대 여신’이 참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홍대 여신’은 2000년대 초반 즈음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인디 음악가들 사이에서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여성 음악가들을 골라 미디어의 입맛대로 묶어 지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단어다. 덕분에 홍대 언저리에서 21세기 즈음 음악을 했던 여성이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한 번쯤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는 단어이기도 했다.

이 인연은 얼핏 행운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악연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홍대 여신’들 가운데 자신이 스스로 그 호칭을 붙인 경우는 전무했다. 대부분은 외모, 드물게는 쓰는 이의 기호에 맞춘 다양한 필요에 의해 셋씩, 다섯씩 마음대로 자리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사이, 한편에서는 여신이 하도 많아 신전이 터져 나가겠다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병도 주고 약도 주고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다. 책의 인터뷰이기도 한 음악가 요조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지난 10년 동안 ‘홍대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들으며 막연히 불쾌했던 감정의 근원을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이해하게 되었다 말한다.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 아닌, 해당 수식어가 가진 왜곡된 시선이 문제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공감했다. 같은 신전 동기가 아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을 가진 여성으로서 공감했다. 특히나 대중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했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평론가로 일하며 느낀, 명치 끝에 모호하게 걸려 있던 모든 감정들의 원인이기도 했다. 대중음악을 비롯한 문화계 전반은 여성이 대다수로 구성된 거대한 소비 주체를 거느리고 있지만 컨텐츠를 비롯, 그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말과 글을 통해 여성을 숨쉬듯 대상화하고 객체화하는 것에 더없이 익숙해진 시장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늘 붙이는 ‘운이 좋았다’는 표현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었다. 나와 달리 운이 없거나 나빴던 여성 동료들은 결혼, 육아, 비정상적인 업계 성비에서 오는 태생적 한계 등에 치여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슬프지만 운 좋게, 정말 운 좋게 만난 성별과 상관 없이 나와 나의 글을 믿고 지지해주는 동료와 주변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마저도 왜 평론가 가운데 여성이 이렇게까지 적을까, 왜 여성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음악은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쉽게 공감하거나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함께 바로잡아 나가기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여신’이라 불리는 순간 또는 ‘여성 평론가’라 불리는 순간, 호칭의 대상은 결국 ‘여성’, 나아가 ‘외모’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출발선에 서게 된다. 칭찬이 뭐가 문제냐, 솔직히 덕 볼 만큼 보지 않았냐는 말은 나빠도 너무 나쁘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평가가 결과물이나 행위 자체가 아닌 성별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 하나로는 어쩔 수 없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건 사는 동안 피할 수 있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정신적 압박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이러한 압박이 주는 무력감을 공공의 이익 추구와 목적 달성을 위해 쉬이 다음으로 미루자며 어르고 달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말하듯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세상에 희생되어도 좋은 가치는 없다. 묵살되어도 좋은 목소리 역시 없다. ‘‘홍대 여신’이 사라지지 않는 비극’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같은 자리를 맴돌며 서서히 도태되어갈 것이다.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것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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