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블랙핑크 트와이스│① ‘3대’를 잇는 여자들

2018.08.07
대중음악 산업에서 ‘3대 기획사’로 불리는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요즘 가장 뜨거운 이름은 모두 걸그룹이다. 블랙핑크의 앨범 ‘Square Up’은 빌보드차트 ‘빌보드 200’에서 40위, 타이틀곡 ‘뚜두뚜두’는 55위로 진입했다. JYP의 프로듀서 박진영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설명할 ‘2018 Macquarie Emerging Industries Summit’에서, 앞으로 나올 팀들은 “트와이스처럼 전담 TF 체제”로 만들고,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트와이스” 같은 걸그룹을 만들겠다고 했다. 트와이스의 성공이 회사의 경영 방침을 바꿀 만큼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블랙핑크, 트와이스, 마마무, 아이유와 지코 등이 차례로 컴백해 돌아가며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 여름, SM은 지난 6일 레드벨벳을 컴백시켰다. 이미 지난해 ‘빨간 맛’으로 여름 노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레드벨벳은 신곡 ‘Power up’으로 다시 한 번 음원차트 정상에 올랐다.

2009년, SM은 소녀시대의 ‘Gee’, YG는 2NE1의 ‘Fire’, JYP는 원더걸스의 ‘Nobody’를 발표했다. 3대 기획사의 걸그룹은 곧 3대 걸그룹의 이름이었다.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이 연이어 컴백하는 2018년의 여름은 그 시절의 복귀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반복은 아니다. 트와이스는 대중성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음원뿐만 아니라 음반 판매량 역시 앨범당 30만장 이상을 판매한다. 일본에서 발표한 싱글 ‘Wake Me Up’은 50만 장을 돌파,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음원, 음반, 유튜브, 해외 시장 성적까지, 트와이스는 JYP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다. YG 역시 블랙핑크의 ‘Square Up’이 올해 YG에서 발표한 앨범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고, ‘뚜두뚜두’의 유튜브 조회수는 2억 4천만이다. 최근 블랙핑크의 제니는 미디어에서 패셔니스타로 주목받는다. YG의 패셔니스타는 군입대 전까지 보이그룹 빅뱅의 멤버 G-dragon의 자리였다. 미국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패셔니스타가 있는 인기 아이돌 그룹. 지금 YG에서 빅뱅의 뒤를 잇는 팀은 보이그룹 아이콘이나 위너가 아니라 블랙핑크다.

레드벨벳은 SM이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에 대한 증명이다. 이 팀이 지난해 여름 발표한 ‘빨간 맛’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가을에 발표한 ‘피카부(Peek-A-Boo)’는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가사와 뮤직비디오 등 난해한 요소들이 많았다. 하지만 ‘빨간 맛’ 뮤직비디오는 밝고 쉬운 멜로디 속에 과일이 말을 하고, 배경으로 과일들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피카부’는 난해한 콘셉트 안에 도입부의 심플한 리듬이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눈에 갖다대는 동작 등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넣었다. ‘빨간 맛’이 전달하는 정서는 명쾌한 듯하지만, 노래는 직접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피카부’는 난해한 듯 하지만 인상적이다. SM은 레드벨벳을 통해 대중과 팬덤, 대중성과 작품성, 청순과 걸크러시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한국에서 아이돌에 대한 기준을 만든 이 회사는 레드벨벳을 통해 다른 회사에서 미처 도달하지 못한 시장을 발굴했다. 걸그룹의 시장은 더욱 커지고,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

그사이 걸그룹의 의미는 조금씩 변한다. 트와이스는 원더걸스처럼 연이어 히트곡을 내고 있다. 동시에 원더걸스에 비해 훨씬 많은 앨범을 팔고,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했다. 블랙핑크는 2NE1처럼 네 명의 멤버가 힙합을 바탕으로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블랙핑크는 네 명의 멤버 중 리사와 제니가 랩을 하면서 ‘뚜두뚜두’처럼 두 사람이 연이어 랩을 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비주얼이나 캐릭터에서 힙합, 또는 강해 보이는 캐릭터를 크게 강조하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또래 여성들에게 패셔니스타로 받아들여질 만큼 화려하고 예쁜 스타일링을 한 채 마치 늘 해왔던 것처럼 랩을 한다. 때론 그 의미가 궁금한 레드벨벳의 복잡한 콘셉트는 f(x)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레드벨벳은 ‘피카부’에서 기존 걸그룹의 유형들로는 아예 정의할 수 없는, 여성의 복잡한 머릿 속을 옮긴 것 같은 캐릭터를 표현했다. 트와이스는 기존 걸그룹 시장의 한가운데서, 걸그룹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블랙핑크는 지금 서구 시장에서까지 반응을 얻는 여성상과 스타일을 짐작게 한다. 레드벨벳은 걸그룹이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피카부’의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 작사가 켄지가 모두 여성인 것은 우연일 수 없다. 창작자가 걸그룹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표현하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소비자는 과거와는 또 달라진 여성상에 환호했다. 걸그룹이 많은 사람이 좋아할 음원을 발표하고, 같은 소속사의 보이그룹보다 더 많은 앨범을 사줄 팬덤을 모으며,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는다. 더 나아가 아직 많은 경우는 아닐지라도 걸그룹이 여성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2018년의 걸그룹은 ‘Girls can do anything’이 핸드폰 케이스에만 갇혀 있을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중이다.

‘3대 기획사’의 걸그룹 외에도 마마무와 여자친구 등을 포함하면 변화는 보다 명확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청순/섹시’라는 이분법으로 나뉘곤 했던 걸그룹의 캐릭터는, ‘섹시’의 자리에 여성 취향의 ‘걸크러시’가 들어섰고, ‘청순’ 역시 군무를 앞세운 역동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여자친구처럼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3대 기획사’ 걸그룹이 주목받는 것은 시장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투자할 수 있는 회사들이 변화에 대응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세 팀 모두에게 중요한 해외 시장 확대에 많은 노하우를 가진 것 역시 ‘3대 기획사’들이다. 게다가 작년부터 방탄소년단-EXO-워너원은 이른바 ‘3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이번 세대의 부인할 수 없는 ‘3대’ 보이그룹으로 자리잡았다. 그중 올해 한국 대중음악 산업이 상상하지 못했던 성과를 낸 방탄소년단, 작년에 하나의 현상을 일으킨 워너원은 ‘3대 기획사’ 소속이 아니다. EXO가 있는 SM만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YG와 JYP에게 걸그룹은 지금 그들의 상업적 가치와 콘텐츠 회사로서의 역량을 함께 인정받을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다.

물론 걸그룹의 성장과 변화만큼이나, 걸그룹을 둘러싼 문제들은 계속되는 중이다.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남성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했다. 걸그룹 멤버가 모든 언행을 평가받거나 사이버상의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예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트레이닝과 매니지먼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 역시 여전하다. 트와이스의 멤버 모모는 데뷔 전 JYP 측으로부터 일주일 사이에 7kg을 빼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서구까지 넓어진 시장과 함께 ‘3대 기획사’의 걸그룹은 SM처럼 보다 모험적인 콘텐츠를 시도하거나, JYP나 YG처럼 회사에서의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하지만 그들이 그만큼에 걸맞은 관리와 대우를 받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이 회사들마저 하지 않는 것을 다른 회사들이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을 더 높고 넓은 곳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을까? 지난 20여 년간 시장의 중심에 있던 세 회사에게는, 다시 한 번 따라가야 할 변화의 물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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