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죽이는 폭염│① 이 글을 에어컨 없이 쓰고 있습니다

2018.07.31
스스로에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실수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지금 집에 이사를 들어오며 이전 세입자에게 원래 있던 벽걸이 에어컨을 굳이 떼어 가라고 말한 것이다. 15만 원에 넘기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고도 작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 직접 시험해보지 못한 에어컨이라서, 에어컨 없이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사 온 지 4개월 정도 지나 여름에 접어들었을 무렵,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남향집이라도 에어컨이 없으면 더울 판에, 내가 사는 집은 서향, 그것도 덥기로 악명 높은 옥상 바로 아랫집이었다. 바깥보다 집이 더 더운 초유의 사태를 맞아 하우스메이트와 합심하여 총 세 대의 선풍기를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종일 돌렸으나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차라리 베란다 바닥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실수를 하나만 더 꼽는다면, 바로 그때 에어컨을 사지 않은 것이다. 2년을 계약한 집에서 어쨌거나 첫 번째 여름을 버텨냈으니 인제 와서 새로 사는 건 아무리 고민해봐도 낭비 같았다. 더워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몇 번이나 에어컨 주문 버튼을 누르려다 창을 닫았다. 에어컨을 샀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그리고 드디어, 이 집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이 됐다. 알다시피 24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이고, 당연히 집 안 공기도 지난해보다 훨씬 더 뜨겁다.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온 하우스메이트는 방바닥이 너무 따뜻해서 내가 보일러를 켜놓은 줄 알았다고 했다. 몇몇 지인은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옥상에 물을 뿌려보세요. 그럼 좀 나아요.” 일리 있는 말이다. “방바닥에 물을 붓다시피 뿌리고 그 위에 누워봐.” …네?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놔도 바람조차 불어 들어오지 않는다. 빌라와 빌라를 다닥다닥 붙여 지은 서울 특유의 주거 환경 때문이다. 내가 사는 빌라 양옆으로는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있고, 이 건물들과 우리 집 사이의 거리는 가끔 맞은편 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고스란히 들릴 만큼 가깝다. 그렇다 보니 방 창문에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방범창까지 설치돼 있고, 의도치 않게 바람을 철벽 수비 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집에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건 나의 잘못이지만, 구조적으로도 훨씬 더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집에서 한 달에 얼마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떠올리면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 더 열이 났다.

매일 생각한다. 이 정도의 날씨에,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라는 인간의 기능을 절반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감각만이 뚜렷했다. 일을 해보려 해도 집에서는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으니 카페로 피신해야 하는데, 가는 동안 이미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대부분을 다 써버린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하고, 의자 페인트가 녹아 내리고, 플라스틱 물병이 저절로 찌그러질 정도의 더위에서 인간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늦게 잠들고 일찍 깨는 바람에 머리는 늘 멍했고, 위까지 문제가 생겼는지 뭘 먹어도 금세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됐다.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자고 일어난 후 이 모든 증상이 더위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8시간 동안 에어컨 아래서 ‘쾌면’한 몸은 가뿐하고 기분은 상쾌하고 의욕은 충만했다. 내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침대에 녹아 붙은 자신을 움직여야 한다고 설득하느라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 안 온도를 확인한다. 33도. 오전 8시 현재 바깥 기온은 28도, 최고 35도까지 올라갈 거라고 한다. 이 글은 그나마 덜 더운 거실 의자에 앉아 선풍기를 내 몸 쪽으로 바짝 당겨 틀어놓고 쓰는 중이다. 어제는 욕조에 찬물을 가득 받아놓고 들어가 앉아 일했다. 욕조가 깊은 편이라 노트북을 사용하는 동안 어깨가 조금 아픈 걸 빼고는 견딜 만했다. 인스타그램에는 33도 밑으로 내려가면 선선하게 느껴져서 한강 공원을 뛰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한국인은 더욱 그렇다. 내년 여름은 얼마나 더 더워질까? 그때도 다들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을까? 물론, 내년의 더위를 걱정하기엔 올해의 여름이 아직도 너무, 정말 너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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