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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 2’가 ‘과도한 페미니즘’이라는 사람들에게

2018.07.30
‘인크레더블 2’는 마블 및 DC 코믹스 원작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그리고 그들이 아직 달성하지 못한 진보를 동시에 성취하는 영리한 속편이다. 마블 스튜디오가 10년 만에 여성 캐릭터가 제목에 등장하는 ‘앤트맨과 와스프’를 내놓고 ‘캡틴 마블’, ‘블랙 위도우’를 이제야 준비하는 사이, ‘인크레더블 2’는 일라스티 걸, 헬렌의 존재감을 키우며 성역할을 뒤집었다. 시민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주변 건물을 허다하게 파손하고 보험회사 재직 당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벽을 다 뚫어놓았던 남편 밥, Mr. 인크레더블을 떠올리면, 손익 분석 결과 일라스티 걸의 실적이 더 좋아 슈퍼히어로의 활동을 자유화시키기 위한 홍보대사로 일라스티 걸을 선택했다는 ‘데버테크’ 사의 입장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슈퍼히어로 활동 합법화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을 구하며 일라스티 걸이 주목받는 사이, Mr. 인크레더블은 TV로 아내의 활약을 지켜보며 질투하기도 하지만 육아 활동에 금방 적응한다. 클라이맥스는 여성 슈퍼히어로 일라스티 걸과 여성 빌런이 차지한다.

‘인크레더블 2’의 페미니즘적 성취는 사실 대단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시리즈의 각본·연출을 맡은 브래드 버드도 “성역할 전환 아이디어 자체는 14년 전 ‘인크레더블’을 홍보하던 당시부터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1편의 도입부에서 “결혼? 농담 마세요. 전 지금 최고예요. 세상을 남자 손에 맡긴다니 말도 안 되죠”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일라스티 걸은 Mr. 인크레더블과 결혼하기 전에 더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인크레더블’의 세계는 어떻게 해도 여성의 희생이 수반되는 결혼 제도와 이성애자들이 꾸리는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 캐릭터 디자인도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와 허벅지는 풍만한’ 판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크레더블 2’는 액션 영화로서 동시대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미디어 권력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수동성을 지적하는 날카로운 시각까지 담은 수작이지만,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수준의 진보를 보여준다.

때문에 ‘인크레더블 2’는 이 최소한의 업데이트가 갖는 시장성을,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규모와 젠더 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재미있는 지표가 된다. 인터넷에서는 ‘인크레더블 2’에 페미니즘 요소가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든다거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전철을 밟았다는 주장도 볼 수 있다. 남성 슈퍼히어로와 남성 빌런이 거의 독점해왔던 영역을 그저 여자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게 과격하다는 이유다. 심지어 1편을 만든 픽사 스튜디오와 브래드 버드가 그대로 만든 후속작임에도 남성 캐릭터로 흥행한 작품에 여성 캐릭터가 ‘무임승차한다’는 의견까지 있다. 하지만 <인크레더블 2>는 북미에서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최고 흥행작이 됐고, 한국에서도 픽사 역대 최고 오프닝 관객수와 최단 기간 100만 돌파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치적 공정성의 여부 이전에 상업적으로도 픽사의 선택은 옳았다. 많은 이들이 이 최소한의 업데이트를 거부하지 않는다. 최소한 ‘과도한 페미니즘’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보다 많다.

할리우드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지적은 수십 년 전부터 꾸준히 존재했다. 남성적인 시선을 일반 대중의 무의식에 이식하는 영화 산업이 현실의 성차별도 악화시켰다는 일리 있는 분석은 또 어떤가. 덕분에 최근 미국 영화계의 숱한 리부트와 페미니즘에 대한 높은 관심은 거의 과거를 청산하고 진보적이라 자부해왔던 할리우드의 자존심을 건 행보로 느껴질 정도다. 특히 ‘원더우먼’과 ‘블랙 팬서’의 기록적인 성공은 이런 추세에 더욱 추진력을 얻게 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 CAA의 연구에 따르면 다양성을 신경 쓴 영화일수록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관객에게 광범위하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과 자본 논리에 따른, 하지만 아직은 ‘인크레더블 2’처럼 안전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변화를 두고 “지나친 정치적 공정성이 영화를 망친다”며 하소연하는 관객은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겠다는 것일까. 정말 궁금해서 꺼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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