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나훈아 콘서트

2018.07.23
언젠가 유튜브에서 나훈아에게 열광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이가 들면 나훈아 스타일이 좋아지는군. 난 아직은 부담스럽네’라는 아주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나이 스물아홉... 나훈아에게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22일, 오전 10시. 나훈아 콘서트 예매 오픈 날. 나훈아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아침 잠 많은 나도 9시부터 알람을 해놓고 대기를 탔다. 이 게임은 이미 나훈아 팬들 간의 경쟁이 아니었다. 전국 효녀, 효자들의 경쟁이었다. 나름 유튜브 안에서 국민 효녀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나지만 결제 창 구경도 못 하고 광탈했다. 그때 마치 환청처럼 “나훈아 보여준다고 염병씨병하더니 진짜로 염병만 했네”라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내 귓속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5개월 동안 취소 표만 기다린 끝에 1층 R석 두 자리를 건져냈다! 드디어 소문만 무성했던 그 왕의 귀환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콘서트장에서는 여느 공연이 그렇듯 밖에선 얼음물과 휘황찬란한 야광봉을 팔고 있었다. “나 이거는 좀 너무 그렇지 않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언니! 예뻐 예뻐!” “아이고 언니들! 이 정도는 튀어야 훈아 오빠가 봐주지!”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 보고만 있던 우리 할머니에게도 하나 살 것을 권유했고 할머니는 세 개를 골랐다. 그날 객석에서 막례쓰가 내뿜는 불빛은 거의 나훈아만큼 화려했다. ‘입장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공연장 외부는 여자들의 설레는 웃음소리! 꺄르르, 깔깔깔, 와하하하하, 우렁찬 소리로 가득했다.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나훈아 팬을 하고 싶어졌다.

드디어 입장을 했다. 공연 전 금기 사항에 대한 안내문이 타닥타닥 타자 소리와 함께 전광판에 써지기 시작했다. 약간 올드하다고 느껴지는 연출에 웃음도 났지만, 그 글자 뜨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내심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공연 관객의 연령대를 생각해보면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멋진 연출이었다. 곧이어 나훈아가 구름 속에서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할머니 말로는 산신령이 내려오는 줄 알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무대 연출이 그를 신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줬다. ‘우리 나훈아는 쉽게 보여줄 수 없다! 참고 기다려라! 오늘 나훈아 얼굴을 볼 당신들은 행운아다!‘라며 무대 연출이 외치고 있었다. 전광판 카메라는 절대 그의 얼굴을 잡아주지 않는다. 뒤의 댄서들, 연주자들은 크게 크게 클로즈업하면서 왜 나훈아는 안 잡아주는거야? 공연 내내 이러려나? 하는 생각에 돈이 아깝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TV로 보는게 훨씬 얼굴이 잘 보일 테니까! 그런데 얼굴이 안 보이니 자연스레 노래에 집중이 된다. 듣다 보니 가사가 참 좋네. (자막으로 크게 다 띄워주신다.) 상상했던 뻔한 트로트가 아니었네! 가창력은 저게 정녕 70대의 발성인가 싶을 정도로 파워풀하고 대단했다.

여기가 바로 가수 나훈아의 매력에 빠지는 단계다. 크고 친절한 자막 덕분에 모든 곡의 작사, 작곡이 나훈아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 나훈아는 트로트 가수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자리 잡는다. 갑자기 전광판에 홍시 열매가 주렁주렁 가득찬다. 이 연출은 또 뭐야? 알고 보니 노래 제목이 홍시였다. 완벽하게 관객 맞춤형의 연출! 그 흔한 인사 멘트 하나 없이 7곡을 연달아 부르고 나서야 나훈아가 객석을 등졌다. 모두가 숨죽이고, 드디어 그의 뒤통수가 클로즈업되었다. 이때 객석은 벌써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훈아가 뒤돌아 그 귀한 얼굴을 보였다. 전광판에 나훈아의 얼굴이 아주 꽉 찼다. 그리고 올라온 자막은 “여러분의 나훈아 입니다.” 나훈아는 갑자기 나의 나훈아가 되었다. 도저히 노인이라고 볼 수 없는, 운동으로 만든 젊은 얼굴, 젊은 표정, 다부지게 잘생긴 얼굴!! 그렇게 뛰어다니셨으면서 어떻게 헐떡이지도 않아?!! 모든 게 놀라워서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그는 하얀 윗니가 싹 드러나게 히히히힝~ 말처럼 웃었다. 이때부터 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공연을 봤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훈아 오빠만 바라봤기 때문에... 나는 나훈아의 노래도 모르고 과거의 영광도 모르지만, 이 순간부터 그딴 건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는 세뇌되는 것이다. 난 나훈아의 얼굴이 보고 싶다! 전광판에 띄워달라! 와! 나도 봤다! 그래 난 행운아다!!

화려한 조명과 빵빵 쏴주는 폭죽들, 에너지 넘치는 나훈아는 양쪽 위아래 계단을 뛰어다녔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뛰실 수 있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가수 이승철이 자주 하는 ‘밖으로 나가버리고~~~~’ 식의 음 끌기를 나훈아도 한다. 나훈아 선생님의 숨이 모자랄까 봐 보는 내가 더 조마조마했지만, 그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음 끌기를 아주 멋지게 보란 듯이 아주 오래 해낸다. 립싱크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완벽한 기교와 가창력. 숨 헐떡임 하나 느껴지지 않는 체력.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나훈아의 또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은 바로 멘트와 제스처였다. 그는 아주 약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관객들의 마음을 밀었다 땡겼다 들었다 놨다 아주 능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오랜만에 보는데 다들 와 이리 늙었노. 이게 다 제 잘못입니다. 나 없는 11년 동안 이래 됐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청춘을 돌려드릴 테니 잘 받으십시오.” 멘트가 마무리되며 ‘청춘을 돌려다오’의 반주가 쫘아아앙~~~~ 시원하게 밀려들어 오면서 나훈아는 윗옷을 벗어 던져버린다. 흰색 나시에 갈기갈기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뒷 배경의 시계들은 나훈아의 주문에 홀린 듯 정말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친구들에게 나훈아 콘서트 이야기를 한다. 나훈아는 본인 콘서트를 동네방네 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훈아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신의 팬들과 당신의 가치를. 나훈아는 다시 태어나면 가수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럼 누가 가수를 한단 말인가. 나는 나훈아에게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 그의 공연을 앞으로 더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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