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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광고, 팬심은 되고 의견은 안 된다?

2018.07.16
ⓒ서울교통공사
며칠 전 서울교통공사가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 또는 성·정치·종교·이념의 메시지가 담긴 '의견 광고'를 지하철역에 내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하철은 올 초부터 문재인 대통령 지지 모임의 생일 축하 광고, 숙명여대 여성학 동아리의 페미니즘 광고, 대학생연합동아리의 판문점 선언 지지 광고로 잇달아 홍역을 치렀다. 공사 입장에서 향후에 있을 논란의 싹을 자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태호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양한 의견 표출 공간과 수단은 다른 곳에 얼마든지 있다. 지하철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마라”며 선을 그었다. 번역기를 돌려보면 “광고로 인한 민원을 상대할 여력도, 의지도 없다. 조용히 광고비를 벌고 싶다” 정도로 읽힌다. 이런 속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이돌 생일 광고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허용하기 때문이다. 의견 광고는 안 되지만 아이돌 생일 광고는 단순 팬심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아이돌 광고는 2017년 기준, 서울교통공사 전체 광고판매액 중 무려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 2016년 ‘프로듀스101’ 첫 시즌 방송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요즘도 경쟁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기엔 금액이 치솟는다. 해마다 적자 폭이 커지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게 광고비는 중요한 재원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성형외과 광고가 반대 여론, 심의, 경기 침체 등으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아이돌 팬클럽은 중요 광고주로 떠올랐다. 팬덤 문화의 확산으로 계속 성장 추세인 데다 좋은 위치, 큰 사이즈를 선호해 지하철 광고 중에서도 단가가 높아 여러모로 고마울 수밖에 없다.

서울교통공사 사장과 광고팀과 심의위원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아이돌 광고를 하는 상당수의 사람들도, 페미니즘 광고를 하는 사람들도 여자라는 사실 말이다. 알면서 무시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경험상 1020 여성이 특별히 위협적이거나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껏 여성혐오 광고, 성차별적 스크린도어 시(詩) 등에 한없이 관대했던 것도 여자들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라도 광고주 분석을 다시 하길 권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모이고 변화하는 집단은 1020 여자들이다. 지난 7월 7일 6만 명의 여성이 ‘불법촬영 편파수사 반대’라는 단일 의제를 가지고 혜화역에 모였다. 8월 4일 4차 시위엔 더 많은 인원이 광화문에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달 첫 번째 일요일에 일체 소비를 하지 않는 ‘여성소비총파업’도 7월부터 시작되었다. 소비의 80%를 차지하는 여성이 ‘쇼핑’과 ‘덕질’을 넘어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각성했다고 봐야 한다. ‘노이즈’로 치부할 수 없는 데시벨이다.

여성의 돈은 받아먹고 의견은 막겠다는 발상은 권위적인 걸 넘어 상도덕이 없어 보인다. 아이돌 광고를 하는 여자와 페미니즘 광고를 하는 여자가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가? 아이돌 팬클럽에서 성차별을 겪는 여자 아이돌을 위한 성평등 광고를 게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터지려는 둑을 손가락으로 막을 수 없다. 여가부 장관, 행자부 장관처럼 서울교통공사도 시대의 변화를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의 발이 역주행을 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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