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유브라에서 벗어나 노브라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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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두 번, 세번...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한 번. 벌써 다섯 번째 눈이 마주친다. 아니, 눈이 마주친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그 사람의 눈과 내 ‘찌찌’가 마주친 지 다섯 번째다. 이제 그만 볼 법도 한데, 내 유두가 그렇게 신기한지 눈을 떼지를 못한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시원하게 ‘뭘 봐’라고 해주고 싶지만 그 사람은 내 눈을 보지 않고 가슴만 힐끔거릴 뿐이다. 나는 오늘 노브라다.

여름, 그 찬란하고 뜨거운 계절의 실상은 타는 듯한 더위와 높은 습도, 하늘을 찌르는 불쾌지수의 조합이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노브라가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계절이다. 먼저 브레지어를 할 때를 살펴보자. 브레지어는 유방암을 유발할 우려가 있고, 소화가 잘 안 되며, 심한 경우 흉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의 우려가 있다. 쉽게 말하면 덥고, 답답하고, 엄청 짜증난다는 거다. 특히 ‘브라가 보이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는 정서가 있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흰 옷을 입을 때 유두를 가리기 위해 브라를 차고, 브라를 차기 위해 나시를 입고, 그제서야 입고 싶었던 옷을 입을 수 있다. 이 더운 한여름, 다 벗어도 짜증날 판에 옷을 세 겹이나 입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럼 브라를 벗으면 되지 않나? 절대 쉽게 말할 수 없다. 브라를 하지 않고 밖에 나가는 순간 내 유두는 모두의 것이 되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눈길을 받는다. 남자들은 잘 내놓고 다니는 그 유두가, 여성의 유두가 되니 공공재가 된 마냥,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마냥 희한한 시선을 받는다. 시선폭력이 엄청나고, 자기 스스로도 움츠러들어 어깨를 구부리게 된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자신 없어지고 부끄러워진다. 안 그래도 자기 검열이 심한 여성은, 시선을 받게 되면 더욱 자괴감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브레지어는 입든 안 입든 여성을 힘들고 괴롭게 한다. 니플패치를 하라고? 유두가 큰 사람은 니플패치를 해도 티가 난다(필자가 그런 사람이다). 브라렛을 하라고? 이 더운 여름 브라렛 하나만 입어도 더운데 브라렛 위에 또 옷을 걸치라고? 그러기 싫어서 노브라 하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하나다. 사회가, 남성이, 권력자가, 여성의 가슴에 관심을 끄면 된다. 가슴이 쳐진다, 모양이 안 예뻐진다... 어쩌라는 것인가! 여성의 가슴은 타인이 보기 좋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뭘 위해 만들어졌든 그걸 가지고 사는 것은 여성 자신이고, 그 몸을 어떻게 하든 여성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사회는 관여할 권리도 없고 필요도 없다.

정답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사회가 나에게 관심 끄면 되잖아?’라고 말해도 일상생활에서 노브라를 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 몸에 신경 쓰지 마라, 나는 내 갈 길 가겠다고 혼자 생각하더라도 시선폭력은 여전하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 이상한 것을 보는 눈빛들이 나의 다짐을 흔든다. 하지만, 여성이 브라를 했다 해서 시선폭력을 안 당했던가? 브라를 했는데 브라가 보이는 경우도, 브라를 안 해서 유두가 보이는 경우도 모두 ‘시선’들의 이유가 된다. 그 이유는 내가 전혀 이해해줄 필요 없는 것이고, 나를 움츠러들게 할 수도 없다. 내가 이상해서 쳐다본다고? 남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은 당신이 더 이상해!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뭘 하든 어차피 받을 시선들이라면, 나 편하고 말아버리자(물론 시선폭력 없는 세상이 가장 좋고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지만). 남들 눈 신경 쓰면 유두를 가리기 위해 브라를 입고 브라를 가리기 위해 나시를 입고 심지어 나시를 가리기 위해 무언가를 또 입어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고, 나의 옷차림도 온전하게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어떤 것을 입으라고 남이 강요할 권리는 없다.

시작은 니플패치를 붙이고 어두운 옷으로 해도 좋다. 위에서는 브라렛도 불편하다 했지만, 일반 와이어 브레지어보다는 낫다. 노브라를 할 때 겁이 나면 나시를 입고 옷을 입자. 가장 걱정되는 회사에서는 아무도 내 가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게 예의이고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내 가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흰 티에 노브라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브라가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스루를 입으면 브레지어가 필요한 날도 있고, 브레지어를 하고 싶은 날도 (아주 가끔이지만) 있다. 그런 상황들에서 ‘나는 브레지어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절대 입지 않겠어’라며 자신의 마음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정말 중요한 자리, 꼭 흰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노브라로 인해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 걱정이 되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죄책감 가지지 말고 착용하자. 노브라를 ‘브레지어를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실천해도 좋지만, 가장 우선은 자신이 편안한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태어났으니, 일상에서는 노브라로 자유를 만끽하되 꼭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에는 죄책감 없이 브라를 착용하는 융통성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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