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① 부딪히며 성장하는 여성의 이야기

2018.06.12
JTBC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 박차오름(고아라)은 젊은 여성 판사다. 법원에 출근하는 첫날부터 그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박차오름이 지하철 성추행범을 잡아내는 장면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지만, 직속 상사인 한세상(성동일)은 이에 대해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꾸짖는다. 다음 날 박차오름이 일부러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자 법원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자 깜짝 놀라며 홍해처럼 갈라진다. 박차오름은 그렇게 논란의 중심에 설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박차오름이 서 있는 곳의 다른 편에는 임바른(김명수)이 있다. 박차오름이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걸고 ‘천수관음’을 곁에 둔다면, 임바른은 책상 옆에 고야의 ‘산 이시드로 순례 행렬’을 붙였고, 책상 위에는 ‘정의의 여신상’을 올려놓았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모두의 사정을 헤아리려는 박차오름과,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경계하며 가능한 한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임바른은 딱히 갈등 관계가 아니어도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모든 개인이 그러하듯, 판사들 역시 자신의 상식과 가치관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 ‘미스 함무라비’는 그러한 판사들이 모여 있는 법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박차오름과 임바른이 보여주듯, 판사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료 여성 판사가 과도한 업무로 유산한 이후, 해당 부장 판사의 처벌을 요구하던 박차오름에게 한세상은 그 부장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냐고 묻는다. 아무리 가해자라 할지라도 판사에게는 동등하게 그의 입장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단단한 벽에 부딪혀 깨지는 달걀의 편에서 싸우겠다’거나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과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궁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먼저 꺼내겠다’는 박차오름 개인의 가치관은 종종 판사로서의 윤리와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높다란데 앉아서 표정도 없고 사람 같지도 않은’ 판사들의 태도 역시 그들 직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한세상은 어떻게 “오십 보와 백 보가 같냐. 백 보 잘못한 사람이 두 배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박차오름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자신이 20년 동안 입었던 법복을 다시 꺼내본다. 임바른은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박차오름을 통해 ‘판사는 표정을 지워야 하지만 사람은 마음은 지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차오름의 외할머니는 실수를 하고 자책하는 그에게 “실수는 고치면 되지. 마음 없이 일하지는 말라”고 격려한다. 사람들을 판단하는 판사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며, 누군가의 도움으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미스 함무라비’는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여성 판사와 그 주변 인물들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속에서도 박차오름을 비롯한 여성들의 입장은 훨씬 더 어렵다. 법원은 엘레베이터를 탈 때도 기수를 따지며 눈치를 봐야 할 만큼 보수적인 집단이고, 여성 판사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일마저도 조직에 폐를 끼치는 일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일에 문제 제기를 한 박차오름은 권력을 가진 부장 판사들과 일부 남성 판사들에게 ‘요즘 여판사’, ‘지가 민주주의 투사인 줄 아는 관종’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박차오름이 법원 안팎에서 겪는 일들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묘사된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압박들을 재연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성추행 피해자이기도 했던 박차오름은 지하철에서 직접 성추행 피해자를 돕거나 재판장에서 성추행에 관한 증언을 이끌어낸다. 임바른은 박차오름이 성추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데 지하철에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 거기에 대한 박차오름의 대답은 “혼자가 아니니까요”다. 한샘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한 성추행 사건에서 결국 대학생 인턴의 편에 선 막내 사원처럼, 단 한 사람이 내민 손이 누군가의 삶을 건져 올릴 수도 있다.

여성 판사를 유산하게 만든 부장 판사에 대한 처벌을 공론화하면서, 박차오름은 이 일로 법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내 공명심 때문에 괜히 피해자를 힘들게 한 게 아닐까’ 괴로워하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박차오름이 나아가는 과정에는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다. 이른바 ‘민폐 여주’나 완벽한 여성이 아닌,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여성 주인공을 그려내는 것이다. 과거 함무라비 법전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주의를 토대로 정의를 실현했다.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완벽하고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 대신, 박차오름과 함께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판사들을 보여줌으로써 법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낸다. 법과 법 사이에는 수많은 행간이 존재하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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