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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의 젠더 실종, ‘여자' 소환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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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 관련 회의를 하던 중 누군가가 여성 후보자에 대한 각종 테러나 폭력을 방지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우리 국민은 그런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며 웃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를 지켜보면서 그때 그렇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번 선거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밀려 초반부터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여자 문제”가 소환되어 연일 온오프라인을 달구고 있다.

페미니스트 시장을 표방하는 여성 후보의 홍보물이 훼손되고 페미니즘과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벽보 사진을 두고도 “1920년대 이른바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나는 아주 더러운”, “개시건방진 사진”이며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는 거친 막말들을 뱉어내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분노케 했을까? 국회와 지방의회를 통틀어 정치는 중년 이상 남성들의 것이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그건 100%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그런 자리에 “감히” 여성이, 그것도 20대의 젊은 여성이 출마하여 당당한 표정을 짓는 것이 남성의 독점적 권위에 대한 도전 혹은 도발로 느껴졌었나 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1920년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더럽기까지 한 것일까?

이번 시·도지사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총 71명이다. 이 중 여성은 6명인 8.5%에 불과하다. 그것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정의당, 민주당, 대한애국당이 각 1명, 녹색당이 2명이다. 226개의 시·군·구의 장을 뽑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총 753명이고 여성은 35명인 4.6%에 불과하다. 심지어 2014년의 5.8%에 비해 1%가량 줄어들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부터 제6회까지 1,378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이 탄생하였지만 이들 중 여성은 단 21명인 1.6%에 그쳤다. 1회 한 명, 2회는 없고, 3회 2명, 4회 3명, 5회 6명, 6회 9명이었다. 이번 제7회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인구의 절반, 국민의 절반, 시민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힘이 있는 자리, 권력의 핵심에는 여성이 없다. 국민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 국민들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민의 대표 기관들조차도 모두 남성 국민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국회 83%, 광역자치단체장은 100%, 기초자치단체장은 96%, 광역의회 85.7%, 기초의회 74.7%를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남성의 초과잉 대표성, 즉 극도로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를 철폐하지 않는 한 “여자가 감히”라는 “여자 문제”는 계속해서 소환될 것이다.

“저는 여자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모 정당의 한 남성 후보자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여배우 스캔들을 빗대어 자신의 도덕성을 피력한 것이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또 다른 “여자 문제”이다. 공직 후보자라고 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모두 까발려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사인으로서의 사생활과 공인으로서의 사생활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경중은 달라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생활 자체가 아니라 문제가 된 사생활에 대처하는 후보자의 태도일 것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대표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팩트(fact)의 차이든 증거의 차이든 아니면 감정의 차이든, 차이로 야기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결여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운동은, 성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고발한 것이다. 성차별과 불평등의 현주소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는 37%로 OECD 국가 중 1위이자 30%를 넘는 유일한 국가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구조적인 성별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젠더 이슈와 의제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여자”가 소환되고 젠더 의제는 실종되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여자가 아니라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이에 따른 성차별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먼저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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