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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분만 또는 제왕절개

2018.04.30
ⓒShutterstock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임신 8개월에 산부인과 병원을 찾은 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의사는 첫째를 제왕절개로 분만하였으니 이번에도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산모의 시아버지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항생제를 투여하는데, 영향이 아이에게 갈 수 있다. 항생제를 투여하면 모유가 금방 마른다. 자연분만을 하면 아이큐도 2% 오른다더라” 하며 며느리에게 자연분만 할 것을 고집하는 내용이었다. (자연분만은 단어 자체에 “자연”이라는 말이 들어가다 보니 뭔가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어감을 준다. 필자는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분만보다 객관적인 용어로 질식분만(vaginal deliver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앞에 소개한 TV 프로그램에서 시아버지는 제왕절개 시 사용하는 항생제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모유를 마르게 한다고 하였으나 이는 근거 없는 속설이다. 특별한 문제 없이 제왕절개 수술이 진행된 경우 항생제는 수술 후 이틀째까지만 사용한다. 질식분만의 경우에도 회음절개 부위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역시 항생제를 사용하며 복부 수술 부위는 드레싱 후 차폐하여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회음절개 부위는 그렇지 못한 부위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오히려 더 오래 사용하게 된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수술 후 산모가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모유수유를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질 수 있고 이것이 모유수유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으나 항생제가 모유를 마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 후 회복 속도는 개인차가 있어 제왕절개를 해도 다음 날 바로 모유수유 시도를 잘하는 산모들도 있고 질식분만을 하였더라도 심한 회음부 열상이나 출혈 등으로 움직임이 제한되어 젖 물리기가 힘든 경우 모유 양이 잘 늘지 않을 수 있다. 모유 양도 개인차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젖 물리기를 자주해야 모유가 잘 돌게 된다.

제왕절개를 한 경우보다 질식분만을 한 경우에 아이의 아이큐가 더 높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의 지능은 분만 방법보다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인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출생 후 아이의 성장 과정 중에 지능 발달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분만 방법과 지능 간의 관계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그다지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대규모 코호트를 대상으로 교란변수를 제대로 통제하여 발표된 신뢰할 만한 연구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질식분만으로 출생한 아이에서 선택적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천식이나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의 발생이 더 적었다는 연구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질식분만의 경우 분만 과정에서 산모 질 내의 유익한 세균에 태아가 노출되어 면역 체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제왕절개를 하는 목적은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제왕절개가 분만 통증을 겪고 싶지 않은 산모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선택하는 분만 방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 질식분만보다 분만 후 수술에 의한 통증이 오래가고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시기도 늦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질식분만 후에는 분만 후 2시간만 지나면 식사, 샤워가 가능하지만, 제왕절개 수술 후에는 최소 8시간을 금식하며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고 수술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일주일 정도는 배에 물이 닿지 않아야 한다. 질식분만에 비해 제왕절개의 경우 조기 보행이 어려운 만큼 출산 후 혈전증 발생 위험도 높다. 또한 다음 임신에서 제왕절개 부위에 태반이 착상되어 전치태반, 유착태반의 위험성도 높아지므로 두 명 이상의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여성이라면 분만 방법으로 의학적 이유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선택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전에 자궁근종절제술 등 자궁 수술을 한 적이 있는 경우, 이전 임신 때 제왕절개로 분만한 경우라면 다음 임신에서도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 이유는 질식분만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자궁수축 과정, 즉 진통을 겪어야 하는데 한 번 절개되었던 자궁 근육층은 봉합 후 회복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진통을 겪을 경우 그 부위의 파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궁파열은 산모와 태아가 모두 위험해지는 산과적 초응급 상황이다. ‘제왕절개 수술 후 질식분만(VBAC,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을 시도한 경우에서 자궁파열의 발생은 1,000명당 7명 정도였으며, 이전 제왕절개 수술에서 세로 방향의 자궁 절개가 있었거나 그 외 여러 가지 산모 혹은 태아 요인에 따라 자궁파열의 위험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제왕절개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VBAC에 관한 사례나 관련 연구가 우리나라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다. 한국은 제왕절개 수가도 낮을뿐더러 본인부담률이 5%밖에 되지 않으므로 경제적인 이유로는 자궁파열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VBAC을 감행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질식분만을 위해서는 태아의 머리가 산도에 가까이 즉, 태아의 머리가 아래쪽에, 엉덩이가 위쪽에 위치해야 한다. 그러나 태아의 머리가 아닌, 엉덩이나 어깨, 발 등이 산도 가까이에 위치한 경우 태아의 손상을 막기 위해 제왕절개로 분만해야 한다. 전치태반, 태반조기박리 등도 제왕절개 분만의 적응증이다. 모체 골반 구조가 질식분만에 적합하지 않거나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으로 진통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 자궁경부암, 헤르페스 감염, 후천성 면역결핍증 등의 질병이 있다면 제왕절개로 분만한다. 또한 처음에는 질식분만을 시도하였다가 진통 중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두골반불균형으로 분만 진행이 잘 되지 않거나 전자 태아 감시상 태아곤란증이 의심되는 경우 질식분만 시도 중에 응급 제왕절개술의 적응증이 된다.

결국 질식분만과 제왕절개는 각기 장단점이 있으나, 분만 방법이라는 것은 물건을 고르듯이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문의와 충분한 상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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