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서른하나, 정해인

2018.04.25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정해인은 손예진이 맡은 윤진아와 네 살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 서준희를 연기한다. 서준희는 서른한 살로, 현실 속 정해인과 동갑이다.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전도유망한 청년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환대를 받고, 일을 하다가도 내키면 술을 한 잔 마시고, 연인의 출장에 따라가고 싶어서 거짓말로 월차를 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전문직 남성을 떠올릴 때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장면이다. 그의 나이가 극 중 인물과 같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해인은 나이와 크게 상관이 없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그는 2016년에 MBC ‘불야성’에서 이경(이요원)의 보디가드 탁으로 무게감 있는 남자 주인공을 연기했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도 임금 예종(이선균)의 호위무사였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정해인에게 주어진 역할은 극 중에서 가장 말이 없고 쌀쌀맞게 구는 육군 대위였다. 동그랗고 빛나는 눈, 잘생긴 얼굴, 특유의 믿음직스러운 분위기로도 충분히 매력이 드러나는 캐릭터들이었고 또래의 모습보다는 특수한 배경에서 최소한의 대사, 강인한 눈빛과 미묘한 떨림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 소위 ‘한 방’이라고 기억되는 대사나 장면은 없지만, 정해인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맑고 단단한 청년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속 서른한 살 청년 서준희를 통해 다소 추상적이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대중 앞에 드러낸다. 이전에는 말없이 자신의 상사에게 우산을 받쳐주거나 위험에 빠진 순간에 나타나 그를 멋들어지게 구하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 그는 윤진아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며 끌어들이고 상대가 관계를 확신하지 못하자 “믿어도 돼.”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드라마 속 서준희의 모습은 동갑인 청년 정해인의 가치관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제작발표회에서 자신과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손예진이 “(식사를 하면) 항상 미리 계산을 해버린다. 밥을 사줄 새가 없다”고 말했을 때에는 부러움 섞인 야유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고, 그가 장난스럽게 “나를 좋아하냐”고 묻자 “매순간 설렌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답해 더 큰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한국 사회에서 서른 중반을 넘어선 여성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에 편입되지 않고, 상대의 매력과 연륜을 존중하는 태도로 손예진과 윤진아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는 남성은 매력적이다. 제작발표회에서 한 기자가 “실제로 두 분이 진짜 연애를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냐”고 다소 터무니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진 것도, 그만큼 정해인이 자신을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의 정해인은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매우 큰 환대를 받았던 순간의 서준희와 꼭 닮았다. 여러 장르의 작품을 거치며 이력을 쌓은 뒤에, 일전의 모든 캐릭터를 집대성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착실한 전문직 남성. 갓 서른을 넘긴 그가 데뷔 이래 천천히, 자연스럽게 해낸 일이다. 이런 그에게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포털 사이트 댓글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자나 남자나 잘되는 나이가 아니라, 잘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목록

SPECIAL

image 박보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