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주한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 “스웨덴 남성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육아휴직을 택한다”

2018.04.12
한국 사회에서 단 한 번의 경력 단절 없이 30년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해온 여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전 주한 스웨덴 대사 라르스 다니엘손(현 유럽연합 스웨덴 대표부 대사)과 함께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를 펴낸 박현정 주한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이 그 드문 예에 해당한다. 박현정 실장은 직장인으로서의 경험과 한국 여성으로서의 관점을 함께 녹여 스웨덴의 육아휴직, 세금제도, 직장문화, 군주제 등에 관해 다니엘손 전 대사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저자의 조합부터 책의 내용까지 어느 하나 자신의 일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랫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히 전문성을 키워온 여성의 생활 수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범한 50대 아줌마”라던 그의 삶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보통 외교와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신분이 공무원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일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가 대사관에 취업을 했다.

박현정: 나는 외교관이 아니라 스웨덴 외무부에서 고용한 현지 직원이다. 별로 특이한 경력은 아닌데, 대사관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주변에서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취업했던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1989년부터 주한스웨덴대사관에서 일하게 됐다.

공공외교는 전통적인 외교와는 개념이 좀 다른데, 주로 어떤 일을 하나.
박현정: 전통적인 개념의 외교가 국가 대 국가의 외교라면, 공공외교는 사람 대 사람의 외교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한국 국민들에게 직접 스웨덴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공공외교의 수단은 굉장히 다양한데, 스웨덴 영화나 음악을 통해서 외교를 할 수도 있다. 또 스웨덴이 앞장서는 전 세계적 이슈에 관한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국제원조(ODA) 같은 것들. 사진전이나 어린이 공연을 기획할 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대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웃음)

얼마 전에 책을 낸 것도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박현정: 처음에는 내가 스웨덴에 대해 혼자서 쓰는 쪽으로 제안이 왔는데, 나는 스웨덴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전문적인 연구자도 아니라서 고민이 됐다. 아무리 내가 대사관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도, 한국에서 스웨덴의 복지 제도를 깊이 연구한 분들보다 잘 쓸 수 없지 않겠나. 그래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님과 함께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여러 번 진행했던 적이 있고 한국을 좋아하는 분이라 제안을 드렸던 건데, 흔쾌히 수락하셨다. 스웨덴을 모르는 사람도 읽기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스웨덴의 시스템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도 한자말을 최대한 빼고 읽기 쉽게 쓰자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챕터마다 에세이식 인터뷰가 실려 있다. 다양한 계층과 계급 분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박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쭉 풀기보다 그 나라 사람의 말로 들려주는 게 더 설득력 있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챕터마다 그 분야에 대해 가장 잘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았다. 거기엔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주한 스웨덴 대사님, 스웨덴 전 외교장관님도 있다. 전 외교장관님은 내가 모셨던 대사님이 스웨덴 외무부에서 사회초년생 때 모셨던 분이었고, 다른 인터뷰에 등장하는 수영복 회사 사장은 내 친구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다른 인터뷰이에게 “주변에 어린 인터뷰이는 없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알음알음해서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인터뷰이를 찾아나갔다.

그만큼 많은 스웨덴 사람들과 일했다. 스웨덴 사람들과 일하는 게 한국인들이 많은 조직에서 일하는 것과 다르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나.
박현정: 아이가 아파서 일찍 퇴근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 나이가 어렸고, 상사 눈치를 봐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죄송해하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상사들이 오히려 얼른 가라고 하는 거다. 아이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 번도 눈치를 준 적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스웨덴의 이런 시스템을 홍보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부분을 더욱 실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물론 한국 대기업처럼 조직이 크고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니라서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무실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는 게 중요하다. 조직에서 여성이 아이 때문에 걱정을 하고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다만 모든 국가의 대사관이 이렇지는 않다. 실제로 “어떻게 30년 동안 일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바로 대답한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 있어서 가능했던 거라고.

한국에서 30년 동안 회사에서 일해온 여성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의 여러 가지 복지 제도 중에서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특별한 제도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현정: 개인적으로 스웨덴 복지 제도 중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빠의 달’이다. 육아휴직으로 480일이 주어지는데,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무조건 90일씩 쓰게 했다. 엄마는 아이를 낳기 때문에 90일을 안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아빠는 아이를 낳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안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안 쓰면 없어지게 해놓았다. 법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주어진 90일을 대신 쓸 수 없게 규정해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니 남성들 입장에서도 육아휴직을 써야 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아빠들이 90일을 다 쓰기에 이르렀다. 지금 스웨덴에서는 480일을 딱 반반씩 나눠서 쓸 수 있게 하거나 아빠가 오히려 더 많이 쓰는 쪽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는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체계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은 한국 진보 정치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박현정: 한국에서 복지 제도를 만드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스웨덴의 제도가 좋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좋다고 느끼기에 앞서, 왜 이러한 제도가 스웨덴에서 정착될 수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스웨덴에서도 ‘아빠의 달’이 처음 생긴 1995년에는 딱 한 달이었다. 2016년에 3개월로 늘어났다. 스웨덴 사회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느 직장에든 좋은 보스가 있고 나쁜 보스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 회사의 제도적 환경이 좋으면, 나쁜 보스가 자신의 생각을 강제할 수가 없다. 딱 이런 상황인 거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세미나에 가보면 여성들만 앉아 있다. 이미 그 필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 앉아서 그걸 듣고 있다. 한국 사회도 제도가 바뀌면서 남성들의 인식이 같이 바뀌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 아들과 내 며느리도 행복할 거다.

이런 제도를 알리는 일과 관련해서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업은 뭐였나.
박현정: ‘스웨디쉬 대드(스웨덴 아빠)’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했었다. 육아휴직을 6개월 이상 한 아빠들의 사진을 찍은 전시다. 사진작가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너무 힘들어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남성들을 만났다가 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걸 전시하고, 이 아빠가 왜 육아휴직을 하게 됐는지 사진 밑에 캡션을 달았다. 사진을 보면 그들이 행복한 얼굴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다들 지친 표정으로 놀아 주고 있다. 그런데 왜 육아를 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스웨덴 남성들이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애가 나중에 크면서 인생의 고민이 생겼을 때 나를 찾아주지 않을까 봐 그렇다. 엄마나 친구만 찾으면 싫을 것 같다”, “어릴 때만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한다. 남성들이 지닌 의식의 차이인 것이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박현정: 사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도 이 나이에 아이를 둘 낳고 직장을 다니면서 몇십 년씩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와 비슷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아이가 하나고 남편이 밥도 한다. (웃음) 나는 김장 100포기를 하면서도 출근하고, 주 중 제사에 가야 할 때는 퇴근해서 아이들을 차에 싣고 시댁에 갔다. 거기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시부모님을 모셔다 드린 다음에 집에 오면 새벽 두 시가 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출근하고……. 부당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거부하면 관계가 안 좋아질 것이 뻔했다. 나는 결혼할 때 중요하게 내건 조건이 “내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라”였다. 그만큼 내 일이 너무 하고 싶었던 건데, 남들이 다 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시부모님께도 잘해서 사랑받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거기서 나만 잘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7년 만에 도저히 주 중 제사는 못 가겠다고, 휴가도 따로 가겠다고 선포했다.

누구보다 스웨덴 사람들의 삶이 부러웠을 수도 있겠다.
박현정: 다른 것보다 놀라웠던 게, 인터뷰를 해보면 사람들이 딱히 불만이 없는 거다. 날씨 같은 게 불만일 정도다. 우리는 주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몸이 아프면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나. 아니면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스웨덴은 그런 식으로 걱정할 요소가 거의 없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학비나 등록금으로 나가는 돈이 없고,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병원비도 들지 않는다. 아이 낳으면 보육시설에 돈을 조금만 내도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치열해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런 환경이었으면 중간에 육아를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셋까지 낳았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 대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현정: 옆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데, 그들은 가계에서 현금을 운용하는 일이 우리보다 적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운용할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만큼 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가계에 돈이 없으면 안 된다. 특히나 부모가 되면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돈을 써야 하는데, 스웨덴은 아이에게 돈이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어릴 때 아이를 맡기면서도 아주 적은 돈을 낼 뿐이고, 나중에 학비도 국가에서 지원한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내가 중병에 걸렸을 때도 한국과 달리 치료비 전액이 국가에서 나온다. 즉, 한국처럼 돈을 모아둘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이 그만큼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박현정: 제도가 바뀌어야 인식도 바뀐다. ‘아빠의 달’이 있기 전부터 스웨덴 남성들이 육아를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쓰지도 못하는 제도”, “제도는 좋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제도”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없으면 누가 감히 “제가 애 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겠나. 집집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부부 중에 성별과 관계없이 어느 한쪽이 먼저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업무 특성상 50:50으로 육아휴직을 나눠 쓸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은 제도가 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을 하면서 “여길 뜨겠다”고 말하는 게 슬플 때가 있다. 가끔 우리 대사관 웹사이트에도 그런 뉘앙스로 이민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이 여기를 떠나면 고통은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그럼 여성들이 원하는 대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박현정: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육아 자체가 힘들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집에서 아이 옆에 항상 있는 엄마들만큼 육아를 잘할 수가 없고, 일까지 잘하기란 어렵다.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학원에 태워다 줄 수 있는 엄마의 아이보다 우리 아이가 더 공부를 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탓을 하지 않아야 한다. 큰아이가 어릴 때 자기 친구네 집에 갔다 와서는 너무 신기해하는 얼굴로 “엄마, 걔네 엄마는 집에 있더라고!” 그러더라. (웃음) 가슴은 아프겠지만, 그런 말에 절대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때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엄마가 행복해서 너에게도 잘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욕심내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가 반장이 되는 것 대신에 가진 게 있지 않나. 바로 일. 반드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크고 나면, “엄마가 일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때가 온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 그 시기가 온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졌다. 이런 흐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현정: 너무 다행이다 싶다. 이런 의견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해주고 있지 않나. 다행히 한국 사회도 바뀌고 있다. 우리 때에는 내 할 일을 안 하고, 즉 시댁의 문화를 다 무시하고 내 일만 하겠다고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 더 이런 시대가 일찍 와서 내가 큰소리 좀 쳐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웃음)

지금 굉장히 행복하게 얘기한다.
박현정: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이쯤 되니 경쟁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고, 나의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프로가 되었다는 게 좋다. 아, 요즘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시간이 생기니까 정말 좋다. 나를 찾지 않는 게 너무나 고맙다. 다만 하이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이가 먹으니 그걸 못 신는 게 좀 아쉽다. 또 내가 영어를 배우던 시절에 넷플릭스가 있었으면 나는 영어를 훨씬 잘했을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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