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 수트’, 여성에게 필요한 사이즈

2018.04.05
수트에 티셔츠, 그리고 스니커즈는 이제 확고부동한 수트 스타일링 공식 중 하나다. 스트리트 패션보다 격식 있지만 기동성과 자연스러움은 놓치지 않는 영민한 스타일. 너무 애 같지도 너무 점잖아 보이지도 않는,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블라우스와 하이힐로 바꾸면 하객 패션으로도 손색없는 만능 엔터테이너.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인생 수트’에 환호하는 이유다. 이른바 ‘김태리 수트’는 이처럼 편안한 캐주얼 수트가 환대받는 분위기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W컨셉이 김태를 모델로 출시한 ‘드라마 컬렉션’은 일부 제품이 품절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컬렉션은 현재(4월 1일 기준) W컨셉에 입점한 2,053개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린 제품 1~3위를 싹쓸이했다.

드라마 컬렉션의 성공 요인은 뷔페식 사이즈다. S, M, L이 아니라 XXS, XS, XS-S, S, S-M, M, M-L 식으로 사이즈를 세분화했다. 팬츠의 경우 디자인이 슬림 스트레이트, 슬림 부츠컷 2종인데 각 디자인마다 기장이 두 종류이며, 허리, 엉덩이, 허벅지, 무릎, 밑단, 앞 밑 위, 뒷 밑 위 등 8개 항목에 걸쳐 실제 치수를 공개했다. 블랙, 네이비, 브릭레드, 딥블루, 그레이, 레드 등 색상도 6종에 달한다. ‘답정너’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국내 여성용 수트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고르는 재미를 보장한다. S를 가장한 XS, M을 가장한 S, 프리사이즈를 가장한 M. 브랜드마다 S, M, L의 실제 치수도 제각각인, 어깨가 맞으면 허리가 안 맞고, 허리가 맞으면 기장이 어중간한, 몸에 착 감기는 ‘인생 핏’을 원한다면 ‘너희들’이 알아서 몸을 옷에 맞추라는 궤변만 늘어놓는, 답 없는 사이즈에 울분을 토하던 소비자들은 모처럼 쇼핑의 맛을 만끽했다.

온라인·모바일 몰로 선회한 소비자들은 더욱 간결하고 확실한 서비스를 원한다. 빠른 배송, 합리적인 가격은 기본이다. 어중간한 핏 때문에 ‘반품 또는 교환’이라는 재앙을 맞닥뜨리면 울화통을 터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게 이런 번거로움을 선사한 해당 온라인몰을 즐겨찾기에서 지워버리고 앱 또한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루이비통이 온라인몰을 열고 카카오톡에서 프라다 지갑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삭제만큼 명확한 보이콧은 없으니까. 오프라인 위주의 유명 브랜드들이 뒤늦게 ‘핏’과 관련해 소비자들의 온라인·모바일 심기를 살피기 시작한 까닭이다.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지난 2월부터 온라인몰에서 자사 제품과 고객이 평소에 입던 제품의 치수를 비교할 수 있는 ‘사이즈 비교하기’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여성복 브랜드 타임은 최근 온라인몰 고객도 오프라인 고객처럼 피팅을 한 뒤 구매할 수 있도록 ‘홈 피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자인 단계에서 아예 한국인의 체형에 맞추는 브랜드도 있다. 캐주얼 브랜드 에프알제이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산하 사이즈코리아의 한국인 인체 표준 정보를 활용, 지난 1월 일명 ‘K 핏’ 청바지를 출시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이 5년 안팎 주기로 진행하는 한국인 인체지수 조사의 가장 최근 결과(2016년)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의 평균 키, 다리 길이, 허리둘레는 2004년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점점 키가 커지고 다리도 길어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허리도 두꺼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여성의 체형이 변하고 있지만 여성복 사이즈는 구태의연하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해 7월 의류 브랜드 31곳에서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원피스, 반소매, 청바지 등 5개 품목의 사이즈를 조사한 결과 XS부터 XXL까지 모두 갖춘 브랜드는 한 곳에 불과했다. 한국 여성의 체형은 점점 서구화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여성복 브랜드는 전통적인 사이즈만 고수하고 있다. 드라마 컬렉션은 이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드라마 컬렉션은 소재 면에서도 남다르다. W컨셉은 자체 브랜드인 프런트로우를 통해 그동안 일명 ‘인생 팬츠’ 시리즈를 출시해왔다. 자체 개발한 원단인 ‘드라마 패브릭’으로 오래 입어도 무릎이나 엉덩이 부분이 늘어나지 않는 수트 팬츠를 선보였고,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할 때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니 ‘인생 팬츠’와 같은 원단으로 프런트로우가 내놓은 드라마 컬렉션은 기존 소비자들에게는 ‘인생 팬츠’의 수트 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W컨셉은 프런트로우를 통해 2016년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제이백꾸뛰르와 협업한 ‘플레어 트렌치 코트’에도 드라마 패브릭을 사용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린넨 전문 PB 브랜드인 앤더블유스튜디오 등을 통해 온라인 기반 브랜드로는 드물게 소재 개발 능력을 부각하고 있다. ‘에어리즘’, ‘히트텍’이 자동 연상되는 유니클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온라인·모바일 몰이 대세 아닌 상식이 된 지금, 여성복 부문 온라인 최강자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만 3년 연속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오프라인 최강자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반대로 오프라인 최강자인 유니클로는 온라인몰에서 XS부터 3XL까지 7종에 달하는 특별사이즈 제품을, 온라인몰 주문 고객이 전국 세븐일레븐에서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스마트픽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W컨셉과 유니클로의 사례는 온·오프라인 브랜드들이 격전을 벌이는 전장의 단면일 뿐이다. 훨씬 더 많은 브랜드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소비자들은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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