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로맨스에 숨겨진 위험함

2018.04.04
tvN ‘나의 아저씨’는 휴먼드라마를 표방한다. 40대 중반의 유부남과 20대 초반 여성의 만남에 쏟아지는 비판적 시선에 항변이라도 하듯, 제작진은 이것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 드라마’임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실제로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tvN ‘미생’의 김원석 PD는 이번에도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역학관계를 고루 담아내고, 로맨스 외에 가족드라마에도 강점을 보여 왔던 박해영 작가는 가족 간 이야기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 ‘안전진단팀’이라는 점도, 주요 인물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불안의 서사를 한데 모으는 휴먼드라마 구심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외피가 드라마의 본질을 가리지는 못한다. 두 주인공 동훈(이선균)과 지안(이지은)의 만남이 이미 로맨스 내러티브의 핵심을 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첫 회 도입부, 무당벌레를 조심스레 날려 보내려는 동훈과 한 번에 짓눌러버리는 지안의 대조적 태도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훈의 세계가 휴먼드라마라면, 지안의 세계는 범죄스릴러다. 삶이 무료하고 지겨울 뿐인 동훈에게 “성실한 무기징역수”라는 표현은 은유에 불과하나, 어린 나이에 살인까지 경험한 지안에게 감옥은 현실이다. 본래 이질적 세계의 충돌 안에서 서로가 유일한 존재임을 운명적으로 ‘알아보고’ 이해하는 이야기는 로맨스의 핵심 내러티브다.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거 같고.” 시끌벅적한 술집 안에서 동훈이 아무도 모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고백은 멀리 떨어져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당사자 지안에게 정확하게 수신된다. 그 순간 지안의 눈에 고이는 눈물보다 이 드라마의 민낯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문제는 박해영 작가 드라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로맨스와 폭력의 모호한 경계다. ‘나의 아저씨’가 제작진 주장대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거리’다. 가령 동훈과 지안이 거리를 걸을 때나 지하철 안에 나란히 앉을 때 둘 사이에 생기는 일정한 간격 같은 것. 이 공간은 독립적인 두 존재, 특히 사회적 격차가 분명한 이들이 동등하게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퍼스널 스페이스다. 박해영 드라마의 폭력적 성격은 이 경계를 거침없이 넘어서고 심지어 로맨스로 미화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 단적인 증후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도청, 스토킹 코드다. JTBC ‘청담동 살아요'에서 김우현(우현)은 짝사랑하는 정민(황정민)을 몰래 숨어 지켜보고 관찰일기를 만화로 그린다. 명백한 스토킹임에도, 작품은 이를 정민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남자의 순정으로 가공한다. tvN ‘또 오해영’에는 도청 코드가 등장한다. 음향기사 도경(문정혁)은 무심코 녹음된 해영(서현진)의 독백을 듣게 된다. 드라마는 도경이 녹음된 음성을 분석해 집에서 자주 넘어지는 해영의 습관을 포착하고 가구를 재배치하며 스탠드를 놓아주는 장면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특징은 ‘나의 아저씨’에서도 발견된다. 지안을 악랄하게 스토킹하고 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사채업자 광일(장기용)의 인물 소개에는 ‘지안이 자신을 보게 하기 위해 괴롭힌다’고 설명되어 있다. 동훈을 도청하고 스토킹하는 지안의 행동 역시 생존전략으로 시작됐다가 어느 순간부터 로맨스 코드로 전환된다. 이러한 서사가 더욱 위험한 것은, 안전거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약자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강자일수록 안전거리는 충분히 확보된다. ‘나의 아저씨’에서 사장인 도준영(김영민)의 사무실은 안전하게 분리돼 있고, 박운(정해균) 상무의 방에는 도청 감지기까지 있다. 보안이 철저한 세계는 곧 사회적 권력을 말해준다. 반면, 지안의 공간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회사에서는 모두가 오가는 통로에 붙어 있고, 집에는 사채업자들이 수시로 무단침입을 한다. 이러한 현실을 로맨스로 가리고 미화할 때 피해는 약자에게로 돌아온다. 요컨대 ‘나의 아저씨’는 나이, 젠더, 계급 등의 차이에서 오는 명백한 사회적 격차와 문제들을 로맨스로 지울 뿐 아니라 그 본질마저도 휴먼드라마로 포장한다. 이 드라마가 로맨스도, 휴먼드라마도 될 수 없을뿐더러 위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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