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에 오른 탤런트들

2018.02.09
“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려도 돼.” “아니, 안 흘려도 되는데, 그 감정은 나와야지.” 지난 1월 30일 오후, 대학로 SH아트홀에는 드라이 리허설을 앞둔 MBC탤런트극단 배우들의 연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작은 공연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차분히 극본 속 상황을 다시 설명하기도 했다. MBC탤런트극회장이자 MBC탤런트극단에서 기획 및 홍보를 맡고 있는 배우 윤철형 씨는 “보통 40대 정도면 어디서든 프로 대우를 받는데, 우리는 조금 다르다”며 “드라마에서는 안 그랬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게 가능하다. 후배들이나 선배들이나 자기들이 너무 많은 걸 배운다고 매일 얘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극단이 출범하게 된 이유는 겉보기엔 단순하다. 지난해 8월, 윤철형 씨가 MBC탤런트극회장이 되면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탤런트들을 모으기 위해” 극단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키려 동료들을 모았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500명에 이르는 회원들에게 극단 단원을 모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두 번이나 보냈고, 주변을 통해 알음알음 설득했지만, 당시만 해도 흔쾌히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고작 열 명 남짓이었다. 공채 탤런트 출신의 배우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른 일을 시작하거나, 여성 탤런트들의 경우에는 주로 집에서 주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윤철형 씨에 따르면, 현재 MBC탤런트극회에서 10%도 채 안 되는 숫자만이 TV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외부에 있는 연예기획사들이 활성화되면서 사내 탤런트들보다 그쪽 사람들을 들여보내기 급급해졌다”며 “그렇다 보니 (배우들이 참여해야 하는) 극회 자체도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부회장인 견미리 씨가 기금을 따로 내 예산을 충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산업 시스템의 변화와 부침이 많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결합돼 벌어진 현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셈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현재 MBC탤런트극단의 단원은 현재 50여 명이 됐다.

통계청이 지난 2016년에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50~64세 인구는 1,092만 명으로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30.9% 수준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생산가능인구’로 분류되지만 퇴직 후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리거나 원하는 만큼의 급여와 근무 요건을 갖춘 일자리를 다시 얻기 힘들다. 스타가 아닌 탤런트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하는 40대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부로 살던 여성 탤런트들이나, 연극 무대에 섰다가 탤런트가 된 후로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던 이들도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철형 씨는 “우리 극단 통장에는 돈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아 무대를 꾸렸고,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 배우들은 각자 먹을 것을 사와 십시일반으로 서로를 챙긴다. MBC탤런트극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세호 전 MBC PD가 티켓 수익이 생기면 “교통비라도 꼭 나누자”고 한 것이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극단의 수익에 대해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윤철형 씨는 “홍보 같은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며 “요즘은 SNS를 통한 홍보가 중요한데,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이렇게 우리가 누군지 알고 찾아와주는 사람들로만 홍보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전통과 인지도가 있다. 윤철형 씨를 비롯해 정욱, 양희경, 정성모, 임채원 등 오랫동안 활동해온 탤런트들인 만큼 “젊은 층뿐만 아니라 어르신들도 TV에서 많이 보던 사람들을 보러 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1주도 안 되어 예매 순위가 10계단 훌쩍 뛰기도 했다. 윤철형 씨는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표가 많이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대는 없다”며 “배우의 본질은 연기이기 때문에 그 점을 상기하고 싶은 게 먼저”라고 털어놨다. 그동안 TV를 통해 쌓아온 인지도를 활용해 홍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MBC탤런트극단의 궁극적인 생존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한다. 다음 공연에는 이덕화와 같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년층 배우들도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윤철형 씨는 “후배들이 이 분위가 너무 좋다고 하는데, 사실 어디 가서 우리처럼 나이가 40세, 50세 먹은 사람들끼리 ‘야, 너’라고 부르면서 신나게 일하겠냐”며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아서 다이아몬드처럼 만들고 싶었다. 선배님들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후배들이 보이지 않는 게 더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이는 여성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자 그들을 모아 생존을 도모한 기획자로서의 송은이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송은이가 뉴미디어의 특성이나 SNS에서 소비되는 유행을 전통적인 만담 코미디와 결합시켰다면, MBC탤런트극단은 전통이 긴 만큼 그들이 갖고 있는 역사를 복원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손을 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MBC탤런트극단이 창단 작품으로 영국에서 66년째 공연 중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을 선택한 이유도 다음과 같다. “예전에 잘했던 탤런트들이 보여주는 데에는 역시 고전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들이 후보에 올렸던 작품 중에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묵직한 고전 작품들이 많다. 각 세대에게는 자신만의 생존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세대의 삶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똑같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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