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셰프 앞에 놓인 벽

2018.02.09
‘냉장고를 부탁해’에 최초로 여성 셰프가 출연했다. 정지선 셰프가 바로 장본인이다. 일일 셰프 가운데는 여성 출연자가 있었지만 고정 출연으로는 처음이다. 오죽하면 ‘‘냉장고를 부탁해’ 정지선, 최초 여성 셰프 눈길’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도 나올 지경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2014년 11월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여성 셰프가 고정으로 출연하기까지 3년도 넘게 걸렸다는 의미다.

요리계에 그렇게 여성이 없는 걸까. 그보다는 남성이 독식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여러 지표를 살펴볼 수 있겠지만, 맨 위를 한번 보자. 작년에 공식 진출한 미쉐린 가이드 말이다. 2018년 판 서울 가이드에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 전부 24군데인 가운데 곳간, 발우공양, 품 서울, 단 세 군데의 셰프가 여성이다. 1:8의 성비, 그야말로 남초의 세계다.

요리 세계의 남초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도, 한국의 일만도 아니다. 요리와 주방의 역할에 관한 한 여성은 오랫동안 지독한 모순에 시달려왔다. 가정의 부엌을 의무적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레스토랑의 주방을 책임지는 존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모순 말이다. 달리 말해 ‘집밥이라면 모를까, 레스토랑의 요리는 여성의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심지어 ‘여성은 모성애를 바탕으로 양육을 위한 가정 요리에나 적합하다’는 말까지 돌았다. 이런 논리는 여성을 가정의 부엌에 옭아매고 레스토랑 주방으로의 진출을 막았다. 레스토랑의 원조 국가인 프랑스에서도 자국 요리 세계를 정립한 업적을 남긴, 신격화된 셰프는 전부 남성이다(앙투완 카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페르낭 푸엥, 최근에 타계한 폴 보퀴즈까지).

물론 나름의 핑계는 있었다. 무엇보다 신체 조건의 차이를 들먹였다. ‘여성은 무거운 육수 냄비나 감자 포대, 통돼지 등을 들 수가 없다’ 같은 이유 말이다. 주방은 육체적으로 힘든 곳이니 여성이 발붙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주장,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맞다, 잊을 만하면 또 나타나는 ‘회사 생수통’ 이야기와 같은 논리다. 한발 물러나 보면 ‘여성은 귀찮고 힘든 일은 안 하려 든다’라는 선입견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순환논리라 궤변인 주장도 있다. ‘레스토랑 주방은 남성의 사회이니 여성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깨진다’라는 것이다. 담배 한 대-로 끝나면 다행인-를 피우며 소위 ‘남성들만의 이야기’로 조장하는 분위기 말이다. 이 또한 너무 익숙한, 전형적인 남초 사회의 여성 거부를 위한 논리다. 오랜 세월에 걸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경로로 여성의 진출과 성장을 배제해놓고서는 ‘원래 없어서 없다’라는 식의 이유를 대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손이 따뜻해서 스시를 쥘 수 없다’라는 일본의 경우나,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생리는 부정을 의미하므로 특정 행위-양조랄지 안료 제작-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타부도 흔하다. 여기에 여성 혼자서는 기적이 아니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임신과 출산을 끼얹으면 상업 주방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성 배제의 논리가 얼추 완성된다. 한식의 세계라고 다르지 않으니, ‘찬모’라는 존재가 있다. ‘여성-모성-따뜻함-집밥’의 논리가 강하게 여성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운데, 맛의 주도권은 쥐지 못한 채 반찬 만들기나 설거지와 같은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 말이다.

이런 현실을 뚫고자 여성은 생계와 자기계발 수준 이상의 부담을 지고 직업 세계에 발을 디딘다. 정지선 셰프가 처음 출연했을 때, 그가 갖춘 한식, 양식, 일식, 딤섬 조리 자격증 등이 화제에 오른 이유다. 별 자격증을 지니지 않은 남성 출연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물론 요리 관련 자격증은 셰프 자격이 아니며, 맛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량화가 일정 수준 가능한 국가 공인 자격증을 여성이 이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나 기회 불평등에 대한 방어나 완충 장치로서 확보하려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는 있다.

이런 현실에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직시와 인정이 필요하다.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성을 차별해왔고, 음식의 세계도 예외가 아닌 데다가, 한국의 현실은 세계 표준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는 사실의 직시와 인정 말이다. 한국의 요리 세계에서 여성은 셰프와 엄마(집밥), 그리고 찬모의 세 꼭짓점이 그리는 모순의 삼각형 속에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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