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영화

2018.02.01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와 실사 영화 감독 연상호는 많이 다른 사람이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는 무자비하고 가차 없고 잔인하며 의도를 알고 봐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악적이다. 하지만 실사 영화 감독 연상호는 훨씬 대중 친화적이고 감상적이고 가족 중심적이며 보수적이다. 그리고 ‘염력’은 ‘부산행’보다 그 경향이 몇 배는 더 두드러지는 영화다. 이게 어떤 방향성을 의미하는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이들 영화의 잣대가 되어주는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그리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인 ‘서울역’의 실사 영화이고 ‘서울역’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부산행’, 이번 ‘염력’은 모두 아버지, 보다 넓게 말한다면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 이야기이다. 단지 ‘서울역’의 아버지 이야기가 연상호 애니메이션 세계의 냉정한 냉소주의 안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면(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말할 수가 없다) ‘부산행’은 한동안 일 때문에 가족을 잊고 살았지만 결국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 신파의 전형성을 따른다. 그리고 ‘부산행’의 이 신파가 좀비 액션 안에 묻혀 있었다면, ‘염력’은 대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 신파이다. 아버지 구실 못 하고 떠돌던 무능력자가 갑자기 생긴 초능력으로 딸을 지키며 사람 구실을 하려고 한다.

‘부산행’에서 아버지 신파를 빼더라도 영화의 많은 부분이 남을 것이다. 사실 ‘부산행’의 아버지 신파 일부는 억지로 끼워 넣은 구석이 너무 노골적이라 눈에 띄었다. 마동석 캐릭터가 뜬금없이 한국 아버지들의 위상에 대해 한탄하는 장면을 보라. 한국 아버지 협회에서 협찬이라도 해준 줄 알았다. 하지만 ‘염력’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염력’은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영화이다.

물론 좋은 아버지는 아니다. 초라하고 어리석고 무책임하고 얄팍하다. 초능력만 없다면 평생 무시당했을, 존재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캐릭터 설정이 한국 영화의 아버지 서사에 어떤 비판적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가 영화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 결코 비판이 되지 못한다. 그건 그냥 주인공이 될 또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가장 맹렬하고 솔직한 비판은 그에게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는 것이다.

‘염력’은 (자신이 한국의 조폭, 군사, 가부장 문화의 비판자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남성 중심 한국 영화들이 그렇듯) 그러지 못한다. 대신 아버지는 흔해 빠진 아버지 신파의 중심에 서고 주변의 모두가 이를 당연히 여긴다. K-영화에서 중년 아버지는 보편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워왔던 주인공인 두 여자들은 뒤로 밀려난다. 심지어 영화는 그중 한 명을 그냥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 죽은 여자가 남긴 자리는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 앞에서 초능력을 쓰며 우쭐거리는 우리의 보편인간/소시민/아버지의 대리만족 판타지 무대가 된다.

이 이야기는 ‘한국식 슈퍼히어로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표현은 정유미가 연기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재미있는 인물인 악당 홍상무가 직접 썼으니 공식이다. 하지만 스토리의 큰 그림만 보았을 때, 이게 얼마나 한국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흐릴 수밖에 없다. 개발업자에 맞서는 철거민들에 대한 판타지 액션물은 흔해 빠졌으며 이미 장르화된 지 오래다. 이런 갈등 구도가 한국에만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 갈등 상황을 슈퍼히어로 이야기에 접목하는 영화도 매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한 편씩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시민 슈퍼히어로가 활동하기 가장 손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은 ‘용산’이라는 고유명사이다. ‘염력’은 용산 참사에 대한 영화는 아니지만 용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실제 사건에서 많은 것들을 빌려왔다. 나는 이 사건의 세세한 디테일을 많이 잊은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았고 며칠 뒤에 용산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공동정범’을 보았는데, 두 번째 영화를 보는 동안 ‘염력’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는 것을 느꼈다. 영화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달라진 것이다. ‘염력’은 여전히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영화지만 현실과 연결되는 순간 그 감상은 복잡해진다.

가장 단호한 관객은 이 비극을 대자본 오락영화에 이용하는 것이 착취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야기꾼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나는 거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9년 전 비극을 막으려고 하는 것 같은 스토리 전개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공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염력’이 오락 영화로, 사회비판 영화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관객들이 이 단순명쾌한 영화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캐내려면 영화 바깥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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