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종현의 새 앨범

2018.01.31
아직 봄이 오기까지는 꽤나 남아 있는데, 종현의 새 앨범이 찾아왔다. ‘POET | ARTIST’, 그는 스스로를 시인이자 예술가로 규정하며 열한 곡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넷의 악플에 대해 “(사람이) 걸레짝 되면 또 딴 얘깃거리”(‘와플’)처럼 직접적인 대응을 하거나, “뭘 하든 시간은 가네”(‘Rewind’)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상의 한순간을 많은 소리들 사이에 묻어놓듯 말할 때도 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에 음을 입혀 내놓았고, 그것이 시인이자 예술가의 일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언제부터 혼자였나요?’ 종현의 소품집 ‘이야기 Op.2’의 ‘엘리베이터’에서, 이 문장 뒤에는 ‘나는’이란 단어가 이어졌다. 그러나 종현은 그다음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노래를 끝냈다. ‘POET | ARTIST’에 이런 격정적인 토로는 없다. “날 갖고 놀든 상관 안 해 사실 뭐라든 너라면 난 그냥 좋았어”(‘Sentimental’)라고 고백할 때조차, 한창 사랑할 때처럼 달콤하게 노래한다. 어떤 가사든 그 감정을 다 파헤쳐 보여주지는 않는다. ‘POET | ARTIST’에서 ‘와플’, ‘사람 구경 중’, ‘어떤 기분이 들까’, ‘Sentimental’ 등 여러 곡에서 재즈적인 접근을 한 것은 장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연예인들에 대한 루머를 이야기하는 ‘와플’에서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여유로운 재즈 보컬로 노래한다. ‘환상통’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 항상 그래 쓰러질 듯 또 흔들려 곧 터질 듯 위태롭게 빛나”라면서도, 후렴구에서는 경쾌한 비트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한다. 수록곡인 ‘사람 구경 중’이라는 제목만큼이나, 종현은 기쁨도 슬픔도 깊숙이 끄집어내는 대신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서 전달한다. 자신의 감정을 정제해서 전달하는 일. 시인이자 예술가가 직업이 될 때의 모습.

‘POET | ARTIST’의 ‘빛이 나’ 뮤직비디오에서 종현이 보여주는 댄디한 스타일은 ‘BASE’의 ‘데자-부’에서 보여준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BASE’에는 ‘Crazy’, ‘할렐루야’처럼 어둡고 신비로운, 그만큼 비일상적인 캐릭터를 담은 곡들도 있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격렬하거나 거대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두 곡은 솔로 활동에 처음 나선 아이돌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종현이 ‘빛이 나’ 뮤직비디오에서 웃으며 춤을 추는 것 또한 그가 아이돌로서 보여줘야 할 모습 중 하나다. 그러나 ‘빛이 나’에서 종현이 보여주는 쿨하고 댄디한 모습은 단지 곡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POET | ARTIST’ 전반의 정서이자 스타일이다. 앨범에서 가장 어두운 분위기를 담은 ‘Take The Dive’조차 경쾌한 리듬이 깔려 있다. ‘와플’에서 종현이 유쾌한 듯 부르고 지나가는 후렴구의 가사는 “쟤랑 걔랑 사귄대 그렇다 카더라 내 친구의 사촌의 선배의 친구의 사돈이 봤대”다. 연예인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순간을, 그는 대중이 듣기 편안한 방식으로 부른다. 반면 가사는 ‘엘리베이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POET | ARTIST’의 앨범 재킷은 ‘BASE’의 디자인과 동일하다. 사진과 폰트 색깔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BASE’와 ‘POET | ARTIST’ 사이, 종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두 장의 소품집을 발표했고, ‘좋아-The 1st Album’처럼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두드러진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POET | ARTIST’에 이르러 자신이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완결된 모습으로 보여줬다. 아이돌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과 대중이 원하는 모습,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던 과정이 선명한 캐릭터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결합을 통해 표현된다.

그 점에서 ‘POET | ARTIST’는 종현뿐만 아니라 그의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로서도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었다. 앨범의 성격이 장르나 캐릭터가 아닌 뮤지션이 앨범 전체에 부여한 감각과 스타일로부터 비롯되면서 재즈, 힙합, R&B, EDM 등 여러 장르를 결합해도 일관된 색깔이 유지된다. ‘빛이 나’처럼 파트마다 구성이 바뀌거나 랩과 멜로디 사이를 오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하고 싶은 말들 중심으로 곡을 전개하면서 생긴 결과다. 종현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형식을 동원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려내고, 그것은 ‘와플’처럼 장르의 관습을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다. ‘환상통’과 ‘Take The Dive’처럼 소리로 특정한 공간을 설정, 곡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은 SM 엔터테인먼트가 앨범 전체를 통해 시도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곡마다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표현 방식을 바꿨다면 더 좋았겠지만, ‘POET | ARTIST’는 종현이 솔로 앨범을 통해 꾸준히 걸어왔던 과정 중 하나였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종현은 점점 더 아이돌의 음악이 바로 지금의 음악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BASE’부터 ‘POET | ARTIST’에 이르는 4년, 다섯 장의 솔로 앨범은 종현이 어떻게 살았고, 살아갈 것인지 보여주는 기록과도 같았다. 보이그룹 샤이니로 활동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도 그는 꾸준히 노래를 만들고 불렀으며, 앨범이 거듭될수록 자기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바깥의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POET | ARTIST’는 그 여정이 한 장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남은 초상이다. 그는 정말로 성실하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했으며,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데 이르렀다. 그리고 아이돌이자 시인이며 예술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 이 글의 처음과 마지막은 종현의 ‘우린 봄이 오기 전에’와 ‘하루의 끝’을 각각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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