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맞아도 싼 것과 맞아도 되는 것 사이

2018.01.03
청와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수행 기자단이 중국 측 민간경호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웬만한 직업 전문성이 갖춰진 곳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황당한 일이기는 하지만, 잘잘못이 꽤 명확하기에 청와대는 조치를 요구했고, 대통령도 기자들을 격려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수순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은, 일각의 시민들이 외친 통쾌함이었다. “기레기”들은 그렇게 맞아 마땅한 이들이라고 외치며, 그들이 맞을 짓을 한 것이라고 주장할 정보를 긁어모으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기자들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반어적 유머라고 해도 실제 이뤄진 폭력의 강도 앞에서는 부적절함의 경계선을 타는데, 아예 진지하게 분개하고 오히려 기자들을 징계하라고 청원까지 넣는 수준까지 갔다.

진영 논리에 대한 도취를 정의감으로 치환하고는 극단적 모습까지 보이는 이들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늘 일정 정도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또한 주류 언론, 특히 정치권력의 영향을 크게 받도록 잘못 설계된 공영 언론이 지난 두 우익정권 동안 보여준 진영적 추태는, 시민 일반의 언론에 대한 불신을 탄탄하게 퇴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극단적 지지방식을 정당화해주는 것,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 너머 언론업에 종사하는 개별 시민이 당한 폭력에 환호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좀 덜 통쾌하고 더 피곤하더라도 일일이 분리해서 사고하는 접근을 등한시하면 남는 것은, 선명한 정의의 우리 편과 때려잡아야 할 거악뿐이다.

물론 이번 사안에서 기자단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배경에는, 폭행 이전부터 방중 외교 보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었던 것이 크다. 굴욕이라느니, 어차피 이룰 것이 없다느니 부정적 전망이 여러 보도에서 부각되었는데, 그런 모습은 작년 말까지 대통령 역할을 했던 우익 마스코트를 보수언론이 다루던 찬란한 칭찬과 선명하게 대비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분리해서 생각할 지점이 있는데, 바로 개별 언론사의 진영논리적 의도와 언론 관행의 체계적 속성이다. 내 편에 불리한 보도가, 특정 언론사가 내 편을 공격하는 적대 진영이기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는 언론의 관행적 흐름 자체에서 발생하는 마찰이거나 아예 실력 부족인 것에 가깝다. 애초에 외교 방문이라는 형식 자체가 대부분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는 대화의 장을 이슈화하는 장치라서, 가시적 사건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보도관행, 특히 현지 수행취재로는 흥미롭게 풀어내기 어렵다. 사후에는 차분한 진단이 가능하지만 실시간으로는 대통령이 ‘혼밥’을 했다는 것이 더 즉각적으로 자극적이고 잘 팔리는 내용이다. 이런 모습은 호오의 방향만 다를 뿐, 전임 당시 옷 색깔이나 보도하던 것과 보도 방식이 다르지 않다. 이런 오래된 표피적인 화제성 경쟁 관행은 분명히 개선해야 할 부분인데, 얄궂게도 사람들의 뉴스 소비 방식이 폭발적이고 휘발적일수록 더욱 악화된다.

언론사의 잘못된 제작 관행이 악의적 의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부채질하는 최근의 좋은 예는, MBC의 신년 시민 인터뷰에 등장한 한 학생 인터뷰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시민이 짧은 의견을 내는 흔한 여론 스케치 방식인데, 알고 보니 이 ‘학생’이 고작 얼마 전에 MBC의 인턴기자 직함으로 방송을 한 내용이 발각되었다. 의도에 부합하는 관계자를 임의적 시민이라고 속이는 행위는 언론윤리의 투명성 원칙에 어긋나는 일종의 사기다. 이것은 전략적 의도일수도 있고, 제작상 편의를 추구하다가 망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짓을 자행하는 순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도가 악의적 정치 공작으로 해석되는 것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문제는, 약간 정밀하게 분리해서 사고하기보다는 선명하게 언론 자체를 퉁쳐서 적대 진영으로 간주하는 맹목적 불신은 역설적으로 다른 언로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불신으로 인한 정보의 진공 상태를 적당히 이미 자기 마음에 든 것으로 채워 넣기 때문이다. 특정 진영 지지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고 있는 조기숙 교수가 이번 사건에서 남긴, 평소에 언론을 불신하고 SNS를 믿어왔기에 구타 상황을 모르고 기자들을 비판했었다는 사과의 말이 이런 비극적 현상을 잘 나타내준다. 이런 문제는 정교한 인식보다는 강하고 즉각적인 반응이 동류들의 지지를 얻으며 더욱 선명하고 틀린 쪽으로 증폭되는 정보 환경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비하하며 트위터를 애용하고 그 열성팬들이 트위터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그 극단에 위치한 반면교사다.

극우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린 올해 미국에서, 나름 저명한 네오나치 인사인 리처드 스펜서가 길을 가다가 행인에게 기습 펀치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나치를 때려도 괜찮은가? 그렇다”는 단호한 문답이 인터넷상에서 유행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머 요소로 소비된 것이었고, 어쩌다가 진지한 분위기가 되면 재미없는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시민에 대한 폭력적 사적 응징은 안 되고, 다만 규제와 비판 및 교육을 통해서 역기능적 사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 말이다. 그렇듯, 맞아도 싸다는 감정과 맞아도 된다는 판단을 분리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후진적인 힘의 논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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