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① 바로 이 순간의 TV 예능

2018.01.02
지난 12월 29일 방송된 ‘2017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나 혼자 산다’는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프로그램 상’을 포함해 8개의 상을 가져갔다. 2017년 동안 금요일 밤에 19주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예능 프로그램에 걸맞은 결과다. 2013년 MBC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남자가 혼자 살 때’로 시작했던 예능 프로그램이 4년여 만에 한 채널을 대표하게 됐다. 그만큼 프로그램도, 세상도 변한 결과다.

‘남자가 혼자 살 때’를 거쳐 ‘나 혼자 산다’로 정규 편성됐을 때, 첫 출연진은 노홍철, 김태원, 김광규, 이성재, 데프콘, 서인국으로 모두 남성이었다. 이들 중 절반은 기러기 아빠나 노총각으로 표현됐고, 일적인 부분 외에 자신의 일상을 꾸며가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파일럿에서는 김태원이 번데기로 연명하거나 서인국이 집을 지저분하게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콘셉트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부분이었지만, 결국 남자들의 정돈되지 않은 일상을 통해 웃음을 끌어낸다는 점에서는 남성 예능인 위주의 기존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 혼자 산다’는 26회에서 고정 출연자로 구성된 ‘무지개 회원’ 외의 출연자들을 게스트처럼 다루며 ‘무지개 라이브’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혼자 사는 남성 연예인 외에 모델, 개그우먼, 웹툰 작가 등의 일상이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왔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TV를 통해 나왔다.

웹툰 작가 기안84가 직접 가위로 자기 머리를 자르는 등 일 외의 일상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다니엘 헤니는 미국에서 집을 꾸미는 것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까지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 한혜진은 화보 촬영을 앞두고는 늘 몸 관리를 하고, 모델로서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직업인에게 일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줬고, 배구선수 김연경은 국내와 해외를 계속 오가면서 승부의 세계 속에서 혼자 사는 자신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황석정처럼 상당히 알려진 배우이면서도 늘 생활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혼자 산다’는 남녀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지금 혼자 살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 초반에는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들이 기러기 아빠거나 결혼을 늦게 하거나, 혹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혼자 사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갈수록 혼자 사는 것을 사람들이 사는 한 가지 유형으로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나 혼자 산다’ 1회에서 430만 명이라고 밝혔던 대한민국 1인 가구는 2017년 520만 명으로 늘어났다. ‘나 혼자 산다’는 지금 이 1인 가구들이 가장 감정이입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중년 남성 중심, 또는 기혼 부부와 육아를 소재로 다루는 현재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미혼, 여성, 그리고 보다 젊은 층을 다루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의 성장은 곧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의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이들의 등장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나 혼자 산다’는 지금 변화하는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나이나 결혼 여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각자 가진 생활의 영역에 대해 선을 넘는 간섭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무지개 회원’들은 이사를 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무지개 라이브’에서 자기 관리를 잘하며 사는 출연자의 모습은 고정 출연자들에게 회자되면서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느슨하게 이어진, 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커뮤니티를 만든다. 200회 축하 영상에 등장한 전 무지개 회원 육중완은 “혹시나 결혼으로 탈퇴하는 분이 있다면 축가를 불러드리겠다”고 말했다. 또한 VCR을 보던 박나래는 “이 멤버 그대로 실버타운에 모여 살면 어떨까”라며 웃었고, 인터뷰에서 헨리는 “나는 우리 가족을 오래 못 봤는데 (무지개 회원들이) 가족처럼 따뜻한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다.

최근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어떤 의미와 재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제주도 MT’ 편에서는 ‘무지개 회원’들이 서로의 버킷리스트를 수행하면서 서로의 캐릭터를 집어내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가 강화됐다. ‘나 혼자 산다’를 현재 연출하고 있는 황지영 PD는 편집실 토크를 강화하면서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 특성상 혼자 촬영을 하기 때문에 출연자들이 서로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토크를 하고 출연자들 간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케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비즈엔터’)고 밝혔다. 매주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고, 방송 외적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고정 출연자들의 실제 삶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사이 미혼 남녀들이 미국 시트콤 ‘프렌즈’처럼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프렌즈’처럼 출연자들이 룸메이트로 살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친근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리얼리티 쇼이면서도 시트콤 같은 캐릭터와 재미가 생겼다. 법적, 물리적으로 함께하지는 않는다. 원하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느슨한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과 각자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관계를 불러왔고, 코미디에 가까운 재미까지 함께 주고 있다. 변하는 시대와 함께 재미를 만들어내는 방법도, 출연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물론 누군가는 언젠가 혼자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지금의 ‘나 혼자 산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거나, 지금과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을 특별하거나 불안정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잘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금요일 밤, ‘나 혼자 산다’를 보며 한 주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예능 프로그램이 누군가의 삶과 연결됐다.




목록

SPECIAL

image 걸크러시 콘셉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