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가 요즘 야구를 잘한다며?

2017.09.04
나는 지금 사직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며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에서의 여름휴가 중 우연하게도 원고 섭외를 받았고, 곧바로 예매를 했다. 아마도 올해 자이언츠의 상승세에 대한 칼럼을 쓰기에 이보다 적절한 장소는 없을 것이라 본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자이언츠는 희망도 미래도 없는 듯했다. ‘8888577’에 이은 신 비밀번호 시대 5788…이 이어지는 듯했다. 순위는 7위. 자이언츠의 우승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26세 이하의 팬들은 엄청나게 화를 냈다. 올해 ‘봄에 아무 의미 없이 야구 잘하는 자이언츠’ 현상인 ‘봄데 현상’이 있었던 탓이다. 4월 시즌 시작 직후 무려 12일간이나 1위를 했다. 물론 지난 36년간 자이언츠의 야구를 지켜봐 왔던 나 같은 늙은 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망조차 하지 않고 ‘올해도 가을엔 편지나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고 노래하며 짙은 감색 자이언츠 점퍼를 옷장 속에 봉인할 뿐이었다. 하지만 약속의 8회도 아니고 운명의 8월, 사태는 반전됐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 히어로즈에게 스윕을 하더니 갑자기 얘네들이 야구를 잘하기 시작했다? 각 팀의 에이스들을 격파하며 도장깨기를 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역전승이었다? ‘근성의 자이언츠’가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괜히 덕아웃에 로이스터가 앉아 있는 것 같고, 안경 쓴 에이스가 마운드에 오르면 이게 최동원인지 염종석인지 박세웅인지 모르겠는 야구를 하게 된 것이다. 라고 쓰는 순간 손아섭이 적시 2루타로 1루 주자 전준우를 홈으로 불러 7:2가 됐다. 관중석에서는 자이언츠의 영원한 애국가 ‘부산 갈매기’가 터져 나온다. 자이언츠는 응원가도 예사롭지 않다. 아바, 퀸, 3OH!3(와 케이티 페리), 트위스티드 시스터즈…. 위대한 타자 이대호의 응원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했다.

2017년 9월이 시작되는 이때, 자이언츠는 1위와 9게임 반 차이이고 3위와는 3게임 차이로 4등이다. 5위와는 1게임 반 차이다. 앞으로 21게임이 남은 지금 최종 순위를 예상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해는. 그 분위기가 다르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데자뷔다. 지난 두 번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그 낯익음이 이해된다. 1984년, 전기리그에서 여섯 팀 중 4위를 기록해 아무 희망이 없었지만 삼성으로부터 후기리그 우승을 선택당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라 최동원 혼자 4승을 하며 우승의 감격을 안았었다. 1992년에는 염종석과 박동희의 합작으로 간신히 3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우승을 차지했다. 상승세가 가을에 집중됐을 때 우승을 안은 것이다. 잠깐, 내가 지금 우승이라는 말을 타이핑하고 있나? ‘꼴레발’이라고 불리는 자이언츠 팬 특유의 설레발을 치고 있는데 어쩔 수 없다. 우승은 못 해본 팀일수록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자이언츠의 팬들은 비열이 작아 쉽게 온도가 높아지고 쉽게 식는다. 신생 팀들을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우승이라는 걸 못 해본 자이언츠의 팬들 중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우승을 못 보고 2세를 낳아 ‘할아버지 할머니만 자이언츠 우승을 본 가정’이 있을 정도다. 팬들이 ‘꼴레발’을 떨어서 그렇게도 기를 쓰고 우승을 못 한 것이라면 나는 지난 26년간의 행적을 통해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 하여튼 상승세가 가을을 향해 집중돼 있다는 점, 이대호가 돈값을 못 한다는 여론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모든 팀의 투수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중심 타자가 존재한다는 점, 최동원 염종석을 잇는 안경 에이스 박세웅, 사직 구장에 나타난 (해마다 나타나긴 하지만) 길조의 고양이, 공식 자이언츠팬 송승준의 부활과 그 밖에 새로운 기수의 코칭스태프가 안정을 찾았다는 점, 또는 특출한 선수는 없어도 3명의 용병들이 모두 일정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 역시 2017 가을 자이언츠가 큰일을 낼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주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로이스터 이후 가장 신명나는 야구를 하고 있다. 라고 타이핑한 순간 다이노스의 권희동에 이어 조평호가 연타석 홈런을 박세웅으로부터 뽑아냈다. 박세웅은 오늘 4실점 했는데, 모두 솔로 홈런이었다. 그중 2개는 각각 올 시즌 홈런을 단 하나도 못 쳤던 선수들에게 맞았다. 이게 무슨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의적 롯길동즈의 에이스 박꺽정스러운 시추에이션도 아니고.

2017년 자이언츠의 가을 분위기가 좋은 데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크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1막엔 주목을 끄는 사건으로 주의를 집중했다. ‘봄데’ 말이다. 하지만 모든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1막이 끝나기 전에 외톨이로 전락했다. 용병들이 한꺼번에 2군으로 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더니, 결국 한 명은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불펜은 방화라는 액션으로 제작비를 낭비했다. 하지만 2막 후반부에는 주인공이 전사로 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약속의 8월’이다. 동시에 강팀에게는 이기면서 약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수퍼히어로적인 캐릭터 구축도 잊지 않았다. 주인공이 핍박받아야 한다는 법칙도 잘 지켰다. 승패를 좌우하는 심각한 오심들이 많아 ‘리그를 지배하는 어떤 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팀’의 포지션에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3막이다. 과연 어떤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아직까지는 기가 막히게 잘 쓴 시나리오다. 라고 쓰는 순간 4점 차로 끝날 줄 알았던 경기에서 배장호가 한 점을 내주며 클로저 손승락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자이언츠, 야구를 너무 시나리오처럼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용병 번즈 덕분에 안정된 내야 수비에 이어, 손승락은 특유의 투구폼으로 ‘던진 후 뜀뛰기’를 하고 있다. 이것으로 시즌 31세이브.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의 기사님은 ‘올해는 다릅니데이 올해는’을 외치고 있다. 과연 이것이 해마다 한 번 이상씩은 있었던 ‘꼴레발’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26년 만에 우ㅅ… 자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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