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남녀’ 김민지, 이대경 PD “보는 사람들과 용기를 같이 나눠 가지고 싶다.”

2017.05.24
E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니. 젠더를 주제로 한 토크쇼 EBS ‘까칠남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여성의 제모 문제로 시작해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주제를 이야기한 ‘공주도 털이 있다’로 첫 방송을 한 ‘까칠남녀’는 ‘시선강간’, ‘맘충’ 등의 용어에 대한 이야기부터 피임, 자위, 그리고 군대를 둘러싼 논쟁 등 남녀 사이에 계속 논쟁이 이뤄지는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룬다. 매회마다 찬반, 혹은 칭찬, 비판, 비방을 받으며 화제가 되는 ‘까칠남녀’의 제작진을 만났다. 지금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송 제작진 김민지, 이대경 PD의 즐거움, 고민,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

김민지PD, 이대경PD
군대 문제에 대한 방송이 첫 화부터 비판이 많았다.

김민지: 반응에 대해서는 예상을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감정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우리는 군대 문화가 잘못됐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사람들은 캡처된 짤로 구성된 글만 보고 물어뜯기 시작한다. 전체를 본다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걸 보면 매우 마음이 아프다. 원래 술을 잘 안 마시는데, 군대 편 1화가 끝난 다음에는 새벽에 맥주를 마시고 잤다. (웃음)

첫 방송에서 MC 박미선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가는 거 아닌가, 그런 걱정도 하더라. 폐지 논란에 관한 기사도 나왔고.
김민지
: 방송에서 ‘맘충’, ‘한남충’, ‘김치녀’ 등 현실에서 쓰이고 있는 혐오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용어이고, 유희로 다루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지적하고 쓰지 말자는 취지라 문제가 없다. 아직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연락이 온 것도 없다.
이대경: 그 기사는 딱 군대 편 방송 하기 전에 나갔다. 사람들이 그 기사로 몰려가서 “이거 봐라, 이런 기사도 나고 있지 않냐”며 엮기 시작하더라. 정작 회사 내부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한마디도 없었다. 기사가 오히려 논란을 만든 거다.

EBS에서는 어떻게 ‘까칠남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건가.
김민지
: 작년 겨울에, 작가와 술자리에서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해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그때가 마침 기획안 공모 기간이어서 젠더에 관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사실 편성에서 통과시켜줄지 생각도 못했다. 지금 회사 내부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 같다.
이대경: 원래 프로그램 제목은 ‘나쁜 X’였다. ‘나쁜’이라는 뜻에 중의적인 느낌을 담고 싶었다.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 것 빼고 아주 수월하게 편성됐다.
김민지: 아직도 남녀라는 성이분법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끌고 가는 것이 걱정된다. 성소수자 이야기도 하게 될 텐데, 그런 문제는 남녀의 프레임으로 다가갈 수 없다. 성이분법적인 사고를 거둘 수 있는 제목이 ‘나쁜 X’였는데, 내부에서 ‘까칠남녀’를 너무 좋아해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제목은 ‘X의 방’이란 이름으로 남게 된 건가. 실제 방처럼 꾸며놓은 세트장에서 X가 누구일지 추리하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을 예능적으로 풀어가려는 시도 같다.
김민지
: 현재 JTBC ‘썰전’, ‘비정상회담’, tvN ‘수요미식회’ 등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토크쇼가 많이 있어서 차별화할 수 있는 포맷을 많이 고민했다. 주제를 말할 때 “자, 오늘은 피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겁니다”라고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주제로 들어가는 오프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패널들이 추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페미니즘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모토가 있지 않나.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로 시작해 거대 담론까지 끌어오는 방식을 축소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7~8명의 인원이 토크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쉽지 않을 텐데. MC로 박미선을 섭외한 것은 중요한 결정 같다.
이대경
: 과거 MBC ‘명랑 히어로’ 때를 봤을 때도 무거운 주제를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까칠남녀’는 이슈가 될 수 있는 주장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에 중량감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기왕이면 기존에 이런 모습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MC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민지: 하지만 실제로 못 만나봐서 ‘까칠남녀’와 맞을까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 첫 미팅 때 엠마 왓슨이 ‘배니티 페어’에서 가슴 노출을 한 사진 때문에 비난을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화를 내더라. 이미 젠더 미술사 관련된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본인이 평소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그때 우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기계적인 진행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소화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방송이 어떻게 찬반으로 갈리고, 어디서 맺고 끊어야 하는지 너무 잘 알더라. 본인이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하며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가.
이대경
: 치열하고 훈훈하다. 사람들이 실제로도 저 사람들은 사이가 안 좋을 것이라고 오해하던데, 서유리와 정영진은 전부터 방송을 하면서 친하다. 은하선과 정영진도 잘 지내 점점 합이 사는 것 같다. 녹화 없는 날 회식을 했는데, 은하선 작가와 이현재 철학가도 “정영진 씨 약간 정든다”고도 했다. (웃음)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달라도 서로 친구로 지낼 수 있다.
김민지: 50분 방송이지만 녹화를 3시간 뜨고, 하루에 2회분을 하니까 6시간을 앉아 있어서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들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얼마 전에 박미선이 녹화 끝나고 잠깐 불러서 풀밭에 앉아 방송에 대한 여러가지 제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애정을 갖고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우리도 출연자들과 그런 끈끈함이 있어서 버틴다.

회차가 지나면서 봉만대 감독이 달라지는 게 눈에 띈다.
이대경
: 처음에 본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첫 녹화 이후 “내가 어떤 역할을 하기 바라나”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에로영화 감독의 위치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40년 동안 남성으로 살아온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전까지 방송에서 에로영화 감독으로서 기대하는 역할이 있었을 거고, 봉만대 감독도 그런 역할에 맞춰서 발언들을 했었을 거다. 현재 모습이 원래 자신에 가장 가까운 모습 아닐까.
김민지: 나도 첫 미팅에서 에로영화 감독으로서 봉만대만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니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영화계 내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장에 성폭력 교육 강사를 투입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왜 이런 이야기를 진작에 안 했냐고 하니까 “MBC ‘복면가왕’에 나가면 노래를 불러야 하고, MBC ‘라디오 스타’에 가면 웃겨야지”라고 대답하더라. 녹화 끝나면 집에 가서 아내와 몇 시간을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여보, 내가 오늘 녹화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 욕을 먹었어” 이러면 아내가 “당신이 잘못했네”라고 매번 듣는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까칠남녀’는 봉만대 감독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토크 말고도 실험 카메라나 사례자 인터뷰도 들어가는데, 종종 여성들만 모자이크가 된다.
이대경
: ‘자위’ 편 같은 경우 여성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해줄 수 있는 사례자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시선강간’ 편에서 계단에서 치마 가리는 것에 대해 물어봤을 때 대답이 “그냥 계단 올라갈 때 보이는 게 서로 불편하니까 내가 가리는 거다” 정도의 발언을 했는데도 얼굴을 가려달라고 하더라. 너무 안타깝다.
김민지: 여자들은 숨고, 소외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구조가 있고, 우리 토크쇼 섭외과정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군대’ 편에서 여성들이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얼굴을 가린 것으로 말이 많다. 얼굴이 밝혀지면 신상을 털어서 공격을 하려고 해서 사례자들이 불안해 해서 얼굴을 가렸다. 똑같은 질문을 던져도 남자 사례자들은 내가 할 말을 했는데 왜 얼굴을 가리고 음성변조를 하냐,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 똑같은 질문을 해도 두 집단이 너무 다르다. 그런데도 계속 모자이크를 없애고 출연자를 공개하라고 항의가 오고 있다.

사례자들 만큼, 제작진에 대한 공격도 많은가.
김민지
: 사실 제작진이 이런 일을 몇 번 겪게 되면 위축된다. 우리는 이 정도만 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자기검열을 시작한다. ‘까칠남녀’의 모토는 거침없이 과감하게 발언하는 것이다.하지만 자기검열이 시작되는 순간, 평범한 프로그램이 되는 거다. ‘자위’ 편은 교육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는 반응도 있었고, ‘군대’ 편 1화 같은 경우는 많은 비판도 들었다. 때로는 정말 외롭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너무 외롭고 답답하고, 새벽에 누군가에게 전화도 할 수 없어서 맥주를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해지려고 한다.
이대경: 나는 내 문화적 배경이 서브컬처고, 남성 커뮤니티를 많이 돌아다니는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나서 들어가기 힘들어진 지 오래됐다.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그걸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다. 욕을 먹어서 힘든 것보다 그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EBS 개편 발표회에서 ‘시대와의 공감’을 하겠다는 말이 기억난다. EBS에서 전과 다른 공감대가 형성이 된 것이 있나.
이대경
: 세대가 좀 바뀌기도 했다. 새로 들어온 PD들도 많고, 젊은 PD들이 많아지면서 내부 동력이 생겼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이번에 레귤러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고 주목받으면서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김민지: ‘까칠남녀’가 EBS의 이미지를 많이 바꿔준 것 같다. 시대와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는데, 욕이든 칭찬이든 반응이 실시간으로 온다. 그런 반응들이 너무 고맙다. 우리는 그런 반응들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까.

‘까칠남녀’에 대한 사내 평가는 어떤가.
이대경
: 사내에는 악플이 없다. (웃음)

‘까칠남녀’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대경
: 이현재 철학가가 걱정을 하는 게, 사람들이 성엄숙주의로 오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까칠남녀’도 그것을 하자는 건 아니다. 대중문화, 서브컬쳐 속에서 벌어지는 젠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싶은데, 다만 이런 이야기는 탄탄한 젠더 감수성의 토양 아래서만 이야기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김민지: 8화까지 오면서 우리 프로그램이 너무 어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너무 어렵거나 격렬한 감정을 갖고 전달하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먹물, 꼰대들을 경계하며 살아왔는데, 우리 프로그램이 교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우리가 맞으니까 너네가 따라오라는 식으로 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롭다는 말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얻나.
이대경
: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너는 남자인데도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나는 나 스스로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은 건방진 이야기 같다. 스스로 한계가 많을 테니까.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이수정 교수를 만나봤다. “나는 한평생 약자를 구하기 위한 사명을 가졌고, 그게 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을 계속 되새기고 있다. 젠더 문제든, 누구든 관념 때문에 차별받는 약자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큰 동력은 역시 월급 아닐까. (웃음)
김민지: 난 한 집안의 딸이고, 누군가의 애인이었고, 여성 노동자다. 대학 때도 페미니즘 강의를 들었지만 삶 속에서 체화하고 “이것이 폭력이다”라고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경험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성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역시 사회의 불평등한 문제를 겪고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패널들이 나와서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인 동시에, 보는 사람들이 용기를 같이 나눠 가지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검열을 하거나 선을 긋고 멈출 수 없다. 확장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맘충’이나 ‘김치녀’ 편처럼 매회 다루는 내용들에 관련해서 절박한 사람들이 있을 거다. ‘나는 말 못 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같았던 사람들이, 여성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성도 그런 용기에 같이 공감해주고 연대해줬으면 한다. 나는 아직 그런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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