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상해’, 이상한 가족 드라마

2017.05.19
“동거가 왜 나빠요? 성인 남녀가 함께 있고 싶어서 같이 지내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왜 변해가는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으세요? 엄마, 아빠 세대 가치관과 우리 세대 가치관이 달라요.” KBS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변씨 집안의 맏딸 변해영(이유리)는 자신의 남자친구 차정환(류수영)와 동거를 들키고 나자, 부모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엄마 나영실(김해숙)과 아버지 변한수(김영철)는 딸의 말에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넋이라도 있고 없고, 멍한 표정을 짓다 버럭 화를 낸다. “결국 우리가 틀렸다는 얘기네? 당연히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그리고 대화는 영실의 “나가!!!!!!”로 끝난다. 주말 밤 8시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세대간의 첨예한 갈등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이 등장한 20회에서는 시청률이 급등, 29.2%(닐슨 코리아)까지 올랐고 현재는 30%를 넘겼다.

‘아버지가 이상해’에 앞서 방영됐던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부모가 없는 나연실(조윤희)이 잘나가는 이동진(이동건)과 결혼을 하려고 하면서 이동진 어머니(김영애)의 반대에 부딪히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기성세대가 그들의 사식 세대를 그들의 가족 안에 넣을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반면 ‘아버지가 이상해’의 인물들은 동거, 독신주의, 졸혼, 혼전임신, 왕따, 고부갈등, 취업문제, 건물주와 세입자의 갈등 등으로 인해 고민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같은 많은 주말 드라마가 기성세대 위주의 기존 가족 제도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그린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이 가족제도 바깥의 문제들, 또는 그 가족제도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는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중심의 가족제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이상해’가 8시 주말 드라마의 문법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변씨 집안의 아버지 변한수의 가족들은 여전히 모여살고, 집안의 풍경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변해영이 과거 차정환과 헤어졌던 이유가 차정환의 어머니가 찾아와 경제척 차이를 거론하며 이별을 종용했다는 것은 진부해 보인다. 변라영(류화영)이 관심있었던 남자가 게이인 줄 알았는데 오해였다는 전개나 배다른 형제가 생긴 변씨 집안 자식들의 반응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버지가 너무해’는 식상한 대립 속에서 앞서 예를 든 장면처럼 개개인의 사고관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세대와 계층간의 갈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누군가에게는 식상한, 또 누군가에는 익숙하고 편안한 사건이 등장하되, 여기에 대해 내는 목소리는 새롭다. 일방적인 악인은 없고, 권선징악의 대상도 없다. 대신 변호사로 돈과 힘을 지닌 해영이 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른바 ‘사이다’를 날리며 코믹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변한수가 가족에 대한 주도권이 약한 것은 자신이 신분을 바꿔 살기 때문에 모든 경제적 권한이 아내에게 있어서다. 변한수는 자식들이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안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죽은 친구의 신분을 빌려 산다. 하지만 그는 죽은 아들의 친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거나, 동거한 딸을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집을 보내자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변한수의 처지를 통해 다른 드라마와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정선 작가가 집필했던 KBS ‘오작교 형제들’과도 닮아 있다. ‘오작교 형제들’에서 아버지가 사라져 혼자가 된 백자은(유이)은 오작교 농장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며 가부장제에 편입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오작교 농장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백자은을 내쫓기도 하고,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기존 주말 드라마와 비슷한 구도를 그리는 듯 하지만 인물의 핵심 문제를 새롭게 틀면서 변화를 주는 것은 이정선 작가의 특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은 결국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놓은 모든 것의 화해와 결합이었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길을 갈까. 다만 주말드라마도 이제는 아버지, 또는 가부장제에 ’이상해’라고 말하게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변해가는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할 시대가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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