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를 대하는 손석희의 화법

2017.02.28
대선주자를 검증하는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이 있었지만, 현재 대선주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압박 면접은 JTBC [뉴스룸] 인터뷰일 것이다. 지난해 탄핵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근 진행 중인 ‘연속대답-2017 대선주자에게 듣는다’에서 앵커 손석희는 그 어느 때보다 타협 없는 날카로운 인터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활자로 옮긴 인터뷰를 보면 확연히 드러나듯, 인터뷰어 손석희의 질문은 그 자체로 보면 화려하지도, 엄청 날이 서 있지도 않다. 단지 그는 서로가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넘어갈 수 없도록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할 뿐이다. 과거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해 “탄핵안 가결은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이라는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라고 질문했던 것처럼. 서로 민망해질 수도 있는 순간을 피하지 않는 손석희의 인터뷰는 대선주자 같은 거물 정치인들을 검증하는 순간 더욱 빛을 발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유승민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대상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간결하지만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며 속내를 이끌어내는 손석희의 화법을 정리해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① 설명할 기회를 주겠다.
② 진짜 질문은 다음 턴이다.


인터뷰어로서 손석희의 장점은 의미가 모호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짐작되거나 해석되는 바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고 되묻기보다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면 안 된다”는 안철수에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탄핵 가결 이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했던 문재인에게 “어떤 뜻이었습니까”라고. 답변이 나온다고 질문이 끝나는 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3월 선고를 믿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안철수에게는 지금부터 얼마 남지 않은 대선까지의 지지율 문제를 파고들고, 박근혜의 명예로운 ‘즉각’ 퇴진을 말한 것이라는 문재인에게는 즉각 퇴진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올 조기 대선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다. 인터뷰이의 답변이 다음 질문을 위한 토대가 되는 셈. 당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십시오. 그리고 그 입장에 대해 이제부터 질문하겠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드리게 되는데요.

① 답변이 납득되지 않는다.
② 누구 때문인지 아시죠?


손석희와의 대담에서 가장 곤욕을 치른 대선주자는 역시 문재인과 안희정일 것이다. 한창 박근혜에 대한 명예퇴진과 탄핵이 이야기되던 시기에 문재인은 조기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그에 따른 조기 대선에 대해서는 정리되지 않은 입장을 보여 손석희의 끈질긴 질문 세례를 받았다. 조기 대선에 대한 발언의 후폭풍을 우려한 문재인의 조심스러움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손석희가 헌법 절차를 존중한다면서도 계속 예외 가능성을 말하는 문재인의 두루뭉술한 답에 끈질기게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드리게 되는데요”라며 명확한 입장 정리를 요구한 건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해당 표현을 통해 인터뷰어는 상대의 그럴싸한 답변에 논리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공중 앞에 투명해지라고 압박의 메시지를 준다. 정적의 ‘선한 의지’를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느냐는 문제로 20분 가까이 진행된 안희정과의 대담도 마찬가지다. 손석희는 “제가 이렇게 질문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다만”이라며, 상대의 선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제거됐을 때의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안희정 본인이 회피 중이라는 걸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런 질문 드려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① 그래도 질문할 것이다.
② 자, 이제부터 팩트 공격 시작합니다.


대선주자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손석희가 “이런 질문 드려서 어떨지 모르지만”이라고 말을 시작한다면, 백 퍼센트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신호다. 더 정확히는 반박하기 어려운 불편한 팩트를 제시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의당이 열려 있고 뜻을 함께하는 누구든 같이 갈 수 있다는 안철수에게 손석희는 해당 멘트와 함께 여태까지 주변에 왔던 사람들이 다 떠났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보수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유승민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표정을 보면 별로 안 미안해한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지지율이 별로 뛰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유승민이 지지 않고 탄핵 인용 후에 진보 대 보수 양강 구도가 되면 자신의 지지율이 오를 거라 자신하자, “자꾸 딴죽 걸어서 죄송합니다”(역시 미안한 표정은 아니다)라며 박근혜를 배신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박근혜 지지층의 표를 어떻게 얻겠느냐고 재차 질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신자 프레임에 대해 그 어느 답변보다 길게 해명한 유승민의 경우처럼, 가장 아픈 곳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공격이 아닌, 상대방에게 주는 절호의 소명 기회일 수도 있다.

자기 논에 물대기 식

 

① 그건 님 생각이고요.

② 이유가 그게 답니까?

 

대선주자 인터뷰의 특상상 너무나 당연히 인터뷰이들은 본인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당위 뿐 아니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해야 한다. 현재까지 지지율 1위를 쭉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정도를 제외하면 여기엔 어느 정도의 희망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팩트를 중시하는 손석희는 이러한 희망적 사고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탄핵 이후 중도 보수 민심이 더불어민주당과 싸워 이길 사람(본인)으로 움직일 거라는 유승민에게,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2위에 오르면 결선에서 여러 정황을 고려해 자신에게 투표해줄 이들이 늘어날 거라는 이재명에게 손석희는 “자기 논에 물대기”이라고 직설적인 반박을 한다. 조금 다른 화법이지만 이번 대선은 문재인-안철수 대결로 갈 거라고 자신하는 안철수에게는 “희망사항 아닐까요”라고도 했다. 기본적으로 손석희와의 대담에선 뭘 얻어가기 어렵기도 하지만, 당장 자신감이라도 잃지 않으면 다행할 일.


그건 제가 답변드릴 내용은 아니고

① 질문은 내가 합니다.
② 당신이 반박할 문제입니다.


유승민은 자신에게 계속 꼬리표처럼 붙는 배신자 프레임에 대해 “제가 배신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손석희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손석희는 단호하게 “그건 제가 답변드릴 내용은 아니”라고 말했다.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다. 유승민의 질문은 의도와는 별개로 일종의 함정이다. 네,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는 순간 그에 대한 논증 부담은 손석희가 지게 된다. 손석희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아니, 그것은 당신이 해명하고 밝힐 일입니다. 이 자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② 납득이 안 됐으니 시간 남으면 다시 물어보겠다.


손석희의 시그니처 멘트. 납득이 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재차 묻는 손석희라고 해도 하나의 이슈로 대담 전체를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은 답변이 미진하다고 판단되더라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할 때마다 나오는 게 “(일단) 알겠습니다”라는 멘트다. 이번 연속 대담 중 문재인과의 대담에서 유독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자주 나왔는데, 예의 “탄핵 기각이 안 되면 혁명밖에 없다”는 발언의 진의와 현재 입장을 최대한 캐물은 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도록 하죠”라는 잠정적 합의를 이루기도 하지만, TV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말에는 “다른 후보 이야기들을 들어봐야겠는데요? 알겠습니다”라며 여전히 의문은 남지만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뉘앙스를 드러낸다. 하지만 안심하진 말도록. 대선은 안철수-문재인 대결이 될 거라고 자신하는 안철수에게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했던 손석희는 바로 마음을 바꿔 “그런데 모르겠습니다”라며 안철수의 오르지 않는 지지율을 지적했다. ‘알겠습니다-모르겠습니다’ [슬램덩크] 송태섭을 능가하는 페이크 무브.
 

시청자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① 여러분, 저는 할 만큼 했습니다.
② 더 자세한 정보는 JTBC 소셜 라이브로 확인하세요.


“일단 알겠습니다”의 심화 버전. 조기 대선 시기에 대한 문재인과의 긴 문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 입장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서의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문재인과 안희정도 출마하면 안 된다는 유승민의 조금은 생떼에 가까운 주장에 대해, 역시 끝끝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안희정의 선한 의지 개념에 대해, 손석희는 최종적으로 “시청자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판단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손석희가 신뢰도 1위 언론인인 건, 믿을 만한 판단을 대신 해줘서가 아니라 본인의 판단은 유보한 채 단지 언론인의 본령에 충실하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끈질기고 첨예하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민감한 쟁점에 대한 인터뷰이의 철학이나 입장, 태도를 좀 더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판단은 그걸 본 우리의 몫이다. 손석희라는 인터뷰어는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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