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티파니를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2016.08.24
정상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광복절에 욱일승천기 무늬가 입혀진 ‘TOKYO JAPAN’ 같은 문구를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SNS에 올린 사람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걸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티파니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티파니가 싫은 것과 그를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개인의 감정 문제지만, 후자는 그럴 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지 보기 싫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그렇다.

‘TOKYO JAPAN’은 티파니가 사용한 SNS에서 제공하는 위치기반 필터로, 그는 당시 도쿄돔 공연을 마치고 일본에 있었다. 문구는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필터 중 하나를 고른 것이고, 게시물은 올린 지 2~3분 만에 삭제됐다. 티파니가 욱일승천기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는 곧바로 지울 게시물을 굳이 올려 논란만 일으킨 것이 된다. 고의로 욱일승천기 무늬를 사용했다면 티파니는 욱일승천기를 긍정한 것이 된다. 당연히 한국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황상 티파니는 고의가 아니라 단순히 실수를 했거나, 욱일승천기의 의미를 몰랐다가 지적을 받고 바로 삭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런데 그를 지상파 TV에서 사라지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트와이스의 쯔위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을 때 중국에서는 대중은 물론 언론까지 나서 그를 비난했다. 당시 쯔위는 제작진이 준비한 깃발을 흔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쯔위는 영상을 통해 사과문을 읽어야 했다. 물론 욱일승천기와 대만 국기는 그것이 의미하는 역사적 맥락부터 다르다. 하지만 티파니가 문구에 고의로 욱일승천기 무늬를 이용했다거나 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쯔위가 전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한 것이 옳지 않듯, 티파니가 실수 또는 무지로 저지른 일 역시 지상파 TV에 출연하지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쯔위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 티파니가 싫어질 수는 있지만, 싫은 것과 잘못했으니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아니라면, 한국 대중은 역사 문제에 관해 감정이 논리, 근거, 합리보다 앞선다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식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잘못 말했다. 대통령이 연설에서 역사에 관해 잘못된 발언을 하는 것은 그것을 검토해야 할 정부의 수준까지 우려하게 만들 일이다. 하지만 그의 잘못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라거나 직무 정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에서 고의로 연설을 틀렸을 가능성은 희박한 데다, 이 실수에 비해 대국민 사과나 직무 정지는 지나친 요구다. 물론 티파니와 박근혜 대통령의 일은 별개의 일이다. 티파니를 비판한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날 일어난 비슷한 일에 대해 대통령보다 연예인이 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더 큰 단죄를 요구받는 상황을 이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MBN의 한 앵커는 리우 올림픽에서 일본의 승리 소식을 전하며 “티파니 씨 축하합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중이 영향력을 미치기 쉬운 인물에게는 언론마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사회. 이 발언을 속 시원하게만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라면, 정말 위험한 것은 티파니의 역사인식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다. 광복절에 욱일승천기 무늬를 접하는 것은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다. 이런 일을 한 티파니가 싫을 수도 있다. 사건이 논란이 된 뒤 티파니가 쓴 사과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사과할 일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앞으로 티파니의 인기가 떨어진다면, 그건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티파니에게 지상파 TV에 나오지 말라고 요구할 일은 아니다. 중국이 쯔위에게 한 일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티파니가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티파니가 이 모든 일을 고의로 일으켜서 한국인을 화나게 하려고 했다는 증거라도 찾자. 아니라면, 할 수 있는 것은 티파니를 싫어하는 것뿐이다. 딱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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